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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전시회가 밀집한 군중으로 인해 그림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인기라지요. 사진 같은 묘사, 그런데 그런데 거기에 담긴 건 현실 너머의 '무의식'의 세계라는 아이러니한 조합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봅니다. 

그림책에도 '달리'처럼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활용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소피 반 데르 린덴의 <앨범- 글, 이미지, 물성으로 지은 세계(아래 앨범)>는 미국의 데이비드 위즈너와 노르웨이의 스티안 홀레를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활용한 작가로 정의합니다.
 
시간 상자
 시간 상자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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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만난 '시간'

데이비드 위즈너는 '구름'을 통해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그림책 <구름 공항>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작가입니다. <시간 상자> 역시 휴가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수중 카메라를 통한 '초현실적인 시간 여행'을 그려낸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이 그림책으로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ALSC)가 수여하는 칼데콧 상을 세 번째 수상했습니다. 

휴가지의 소년은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서 네모난 통 같은 고전적 형태의 '수중 카메라'를 만납니다. 주인을 찾을 길 없는 카메라, 그 안에는 필름 한 통이 들어 있었어요. 현상된 사진들을 본 소년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물고기들과 함께 유유히 헤엄치는 태엽이 달린 물고기 로봇, 푹신한 소파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문어 일족, 거북이 등 위 작은 이들의 왕국, 해마 숲속에 착륙한 외계인 등, 살바도르 달리의 <아메리칸 드림>이나 <불타는 기린> 저리 가라 할 수중 판타지입니다. 

그런데 초현실적인 수중 세계 사진 말고 또 다른 사진도 있습니다. 또래 소녀가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궁금해진 소년은 가져온 현미경에 사진을 들이밀어 봅니다. 배율을 높일수록 컬러였던 사진은 흑백으로 변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을 만큼 시간을 거슬러 많은 아이들이 소년처럼 '시간 상자'를 만났던 것이지요. 이 책의 원제는 해변에 밀려온 표류물을 뜻하는 flotsam이지만 그보다는 번역을 하며 붙인 제목 '시간 상자'가 절묘하게 책의 내용을 잘 드러냅니다. 
 
시간 상자
 시간 상자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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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도 시간 속의 다른 아이들처럼 그렇게 사진을 찍고, 시간 상자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바다로 돌아간 카메라는 해마와 돌고래, 바닷새, 파도 등의 힘을 빌어 길고 긴 여행 끝에 또 다른 해안가의 소녀에게 도달합니다.

한 장 한 장 사진 같은 그림, 하지만 선명한 그림을 통해 작가는 황홀한 바다와 시간의 판타지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 어떤 그림책보다 '시각적'인 면이 강조되는 글자 없는 그림책이지만 그 그림들은 그 어떤 글밥이 많은 그림책들보다 '서사적'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너머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묘사해낼 수 있을까요?

<시간 상자>가 바닷가에서 얻게 된 사진으로 부터 길어 올린 상상력이라면, 스티안 홀레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는 '사진'을 콜라쥬 방식으로 활용하여 작가의 서사를 강화시킨 작품입니다. <앨범>은 이에 대해 데이비드 위즈너와 같은 맥락의 작업을 하지만 '낯설어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없이' 더 극단적으로 구성을 실험한다고 평가합니다.

무엇이 낯설어 보이는 것일까요? 2007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라가치 상을 수상한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아래 어른이 되면)는 <시간 상자>와 마찬가지로 휴가철 여름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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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두려움 

그림책의 화자는 가르만입니다. 8월 말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노르웨이, 가르만은 여름이 끝나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처음 '학교'를 다닌다는 것, 가르만은 걱정이 많습니다. 가르만이 부러워하는 한네와 요한나는 자전거도 탈 줄 알죠, 벌써 글도 읽고, 어려운 낱말도 쓸 줄 안답니다. 

그런데 가르만의 걱정에 아랑곳없이 가르만네 일상은 늘상 여름이면 오시는 할머니 세 분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림책은 걱정이 많은 가르만과 가르만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엇물려 직조됩니다. 학교가 가는 게 걱정인 가르만에게, 할머니는 '뱃속에 나비가 팔랑거리냐'(노르웨이어 표현으로 설레이거나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고 물어보지만, 그런 할머니의 말을 아직 어린 가르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그렇게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한 가르만의 생각을 x선에 투영된 뱃속의 나비로 표현해 내고, 반대로 나이가 들어 쪼그라들어가는 할머니들은 잔디밭의 곤충이 됩니다. 가르만의 '어린' 생각이 '그대로' 표현된 그림책, 하지만 그래서 생각은 판타지가 되고, 판타지는 보는 이의 '상념'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학교 갈 걱정이 늘어난 가르만은 어른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겁이 나는 게 있냐'고. 그런데 겁이 나고 두려운 건 입학을 앞둔 아이만의 몫이 아닙니다. 루트 할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쓰게 될지도 모를 노인용 보행기가 두렵습니다. 죽으면 하늘의 예쁜 정원으로 갈 거라던 보르그힐 할머니에게 두려운 건 살아있는 이들과의 이별입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만 두려운 게 있는 게 아닙니다. 곧 연주 여행을 떠날 아버지는 가족만 남은 집이 걱정입니다. 엄마는 학교에 갈 가르만이 큰길을 제대로 건널까가 걱정이지요.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말합니다. '아마 세상에 겁나는 게 없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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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을 지나 하늘나라로 떠나겠지. 하지만 우선 지렁이가 사는 땅에 묻혀 흙이 되어야 해.' 가르만의 혼잣말입니다. 그렇듯, 우리의 삶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지상의 삶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삶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걱정이 함께 한다는 걸 <어른이 되면>은 세대를 관통하여 알려줍니다.

가르만의 시절을 지나, 아빠와 엄마의 시절을 너머, 할머니의 계절로 마무리되는 시간, 그게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두려움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책은 말합니다. 한여름의 꽃들이 한껏 만개한 그림책은 꽃이며 잼이며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올여름도 좋았어'라며 떠나는 할머니들로 마무리됩니다.

<시간 상자>와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는 사진처럼, 혹은 사진을 활용한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 '묘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가 보이는 '현실' 너머'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 너머'의 상상력을 통한 현실에 대한 '거리두기'가, 우리가 매몰되어 살아가는 현실에 '객관성'을 회복하도록 만듭니다. 

시간 상자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시공주니어(2018)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스티안 홀레 (지은이), 이유진 (옮긴이), 웅진주니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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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그림책, 다시 길을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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