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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면서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 등록증을 받았다. 업종으로 서점 <봄날의 산책>을 허락받았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보고 싶었던 나의 꿈, 동네책방! 어떤 일을 결정하면 마음에 결기를 세우기에 바쁜 성격에 금방이라도 책방을 여는 줄 알았다.

참 묘하게도 다른 일이 생기면서 내 일상에 변화구가 찾아왔다. 남편이 코로나 백신주사 3차를 맞은 후 백신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증상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늘 함께 있던 남편의 부재로 무엇이나 척척 진행될 것 같던 나의 일상들이 흐트러졌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글쓰기의 멈춤이었다. 책도 보지 않고 단지 유튜브를 보면서 대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도와주세요' 문자 하나에 날아온 선물들 

계획되지 않았던 나의 무력감이 한 달을 채웠다. 설날이 지나고 입춘이 와서야 후다닥 놀라 달력을 보면서 다시 새 다짐을 했다. 책방을 연다고 호들갑떨며 동네방네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내놨는데, 나의 역사에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고 산다고 다짐했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세평도 안되는 방이지만 그래도 책꽂이가 있어야 책을 진열하는 법. 인테리어 하는 후배에게 돈도 안 되는 날품팔이 시켜서 미안하다며 부탁했다. 또 간판업 하는 지인을 만나 가로세로 길이를 재며 어떤 도안을 넣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같은 동네에서 서점업을 하는 후배에게는 어떤 루트를 통해 책을 공급받는 것인지를 상의했다.

어느 날 딸과 책 진열과 판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딸은 추천하고 싶은 판매법이 있다면서 소위 블라인드 책 판매를 말했다. 책이 오면 책방지기인 내가 추천 글을 쓰고, 딸이 예쁘게 포장해준다고 했다. 내 맘 속에 있던 나의 회색빛 우울감이 걷히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디어도 생각나서 작년에 필사시화엽서봉사를 해주었던 문우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들, 책방 오픈이 늦어지고 있네요. 제 맘이 너무 답답하지요. 저를 위해서 그림 한 장씩 그려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책방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그림엽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잘 그리려는 부담 갖지 마세요. 저는 그림에 문외한이니 어떤 그림도 다 멋지게 받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정말 잘 살고 있구나를 느낄 만큼 문우들은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아무것도 꾸며지지 않은 산말랭이 공간에 와서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문우들의 꿈도 담아주었다.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는 말씀에 혼자 외로웠던 맘 속에 눈물이 똑 떨어졌다.

문우 정글님은 책방의 전면을 펜화로 그려서 보내주었다. 본인이 공간을 보고 느꼈던 첫 인상을 그림에 담았는데 그 중 책을 들고 날아오는 갈매기가 정말 좋았다. 이 그림은 건물 뒷면의 빈 공간에 붙이면 말랭이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 같아 좋았다.
 
갈매기가 꽃과 책을 들고 날아오네요. 봄날에 책을 사세요!
▲ <봄날의 산책>엽서- 정글 그림 갈매기가 꽃과 책을 들고 날아오네요. 봄날에 책을 사세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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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 안나님은 책방을 찾아 올라오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주었다. 왠지 책방지기인 나도 화려한 봄날에 이렇게 예쁜 원피스를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책방을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이 그림을 붙여놓으면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저절로 책방으로 올라올 것 같아 맘이 설렜다.
 
산말랭이 책방으로 달려가는 소녀의 원피스에서 꽃이 날리네.
▲ <봄날의 산책> 엽서- 안나 그림 산말랭이 책방으로 달려가는 소녀의 원피스에서 꽃이 날리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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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 구르미님은 가장 먼저 책방 공간에 놀러왔었다. 산말랭이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 좋다고 엄청 부러워했다. 나 대신 언제든지 주인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저녁에 말랭이 마을 전체를 그린 그림 한 장을 보내주었다. 나는 문우들이 보내준 그림 세 장을 모두 인쇄소에 보내면서 그림엽서를 제작해달라고 했다.
 
군산말랭이 마을에서 가장 멋진 파란 구름 하늘 집, 동네책방<봄날의 산책>
▲ <봄날의 산책> 엽서 - 구르미 그림 군산말랭이 마을에서 가장 멋진 파란 구름 하늘 집, 동네책방<봄날의 산책>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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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K도서총판과 도서거래를 위한 계약서를 논의했다. 워낙 작은 책방이라 뭐 특별히 제재를 받을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책 신청하고 구매대금 잘 내면 되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안 팔려서 남는 책은 반품도 받아준다고 해서 맘이 편했다.

그 사이 책꽂이가 생겼다. 좁은 공간이라서 몇 권이나 책을 놓을까 걱정했는데, 벽 한 면에 세워진 책꽂이를 보니 생각보다 제법 많은 책을 진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의 공모사업으로 얻어진 공간이라 외벽에는 일체의 장식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욕심은 내려놓았다.

어제는 간판 제작을 위한 도안을 최종 결정하는 날. <봄날의 산책>이라는 글씨의 모양과 글씨의 위치, 색깔 등 고민할 것이 많았다. 서른여 명의 지인들에게 도안을 보여주고 투표를 받았다. 심리학자도 아닌데 사람들의 평소 모습과 글씨 선택에도 유의미한 연결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작은 일이라도 사람 간의 소통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새봄에, '봄날의 산책'을 엽니다 

주말인 오늘은 사무실에 있는 백 여권의 책을 꺼내서 내가 좋아하고 감동 받았던 책들을 간추렸다. 책방에 선을 보일 4~5개의 섹션에 담을 책들을 생각하며 한 권씩 다시 보았다. 시와 에세이, 인문학과 군산이야기, 글쓰기 책을 분류하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믿고 보는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과 출판사들이 펴낸 시리즈들도 꼼꼼히 보며 목록을 저장했다. 다음주 중에는 새 책들을 받을 수 있도록 주문 신청도 해야겠다.

한 달 가까이 쓰지 않았던 글도 이제부터 다시 써야겠다. 아니 정말 써야 하는 나의 일상이 고개를 쳐들었다. 가장 먼저 써야 할 것은 분명하다. 말랭이마을 책방에 놓일 책이 누군가의 손에 닿을 때, 내가 선택한 한 줄의 글을 보고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멋진 글귀를 뽑아야겠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독서의 즐거움이 나를 기쁘게 하고 감동받았던 글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다. 정말 새봄이 온다. 새봄에 <봄날의 산책>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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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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