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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색깔의, 심지어 재질과 상표까지 똑같은 사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송수진·강민정 학생은 정말 “짱친”이 맞았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색깔의, 심지어 재질과 상표까지 똑같은 사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송수진·강민정 학생은 정말 “짱친”이 맞았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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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고등학교(교장 양봉철)는 지난 1월 5일부터 3박 4일간 제주도를 방문해 학교통합교과 활동으로 '제주에서 배우다'를 진행했다. 제주의 역사, 인물, 지질, 문학 등 총 8개 탐구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사전 조사 활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심사해 1·2학년 재학생 17명을 선발했다. 탐방은 각 과목 교사들도 함께했다.

탐방을 다녀온 1학년 강민정·송수진 학생을 지난 11일 오후 순창읍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두 학생은 "제주도를 새롭게 알았다"면서 '4·3사건'을 바라본 탐방 감상문을 작성했다. 감상문에는 열일곱 살 소녀 감수성으로 이해하고 감당하기 힘들었을 4.3사건을 바라보는 두 학생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두 학생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이들이 남긴 4·3사건 관련 감상문의 묵직한 울림 때문이었다.

"주제를 선택하고 보니까 저희 2명만 4·3이었어요. 오랫동안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서 작성하고 발표도 했어요. 사실, 제주도는 가족 여행이나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몇 번 가봤었는데 그전에는 몰랐던 내용을 이번에 알게 돼서 뜻깊었어요."

'둘은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두 학생은 서로를 바라보며 "중초(순창중앙초등학교), 여중(순창여중), 순고(순창고)까지 10년째 함께 다니는 '짱친'"이라고 웃었다. '짱친'은 정말 친한 친구인 '절친'보다 더 의미가 강한 말이란다.

두 학생은 감상문에서 남다른 글솜씨를 보여줬다. 평소 글을 자주 쓰는지 궁금했다.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꾸준히 독후감을 써요. 책을 읽으면 항상 형광펜 같은 걸 들고 있거든요. 이 문장이 마음에 들면 밑줄을 쳐놓기도 하고, 어떤 단어나 문장들은 나중에 글을 쓸 때 글감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따로 적어놓기도 해요."(송수진)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에요. 생각나는 대로 쓰다가 마지막에 검토할 때 여러 번 살펴보면서 문장을 가다듬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글쓰기 전에 자료를 진짜 많이 찾아봐요.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 자료에 영향을 좀 받는 것 같기도 해요.(강민정)

 
지난해 10월 20일 전북 부안 역사 인문학 기행 때 강민정·송수진 학생
 지난해 10월 20일 전북 부안 역사 인문학 기행 때 강민정·송수진 학생
ⓒ 강민정.송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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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는 "생명공학이나 간호대"(강민정), "생명공학이나 약대"(송수진)로 비슷하다. 서로 상의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로 나눠지는 선택교과도 똑같다.

두 학생과 대화는 제주 4.3사건으로 시작해 장래희망, 꿈, 공부 등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다. 대화가 무르익자 두 학생은 거꾸로 기자에게 "글 잘 쓰는 비결이 뭐예요?", "어떤 책들을 좋아하세요?" 등의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기도 했다.

고교 2학년 진학을 앞둔 두 학생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 보였다. 생명공학, 간호대, 약대 등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일까. 두 학생의 대답은 해맑았다.

"생명공학이나 약대는 제가 좋아서 가려고 해요."(송수진)

"사람들한테 뭔가 도움을 준다든지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강민정)


두 학생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둘은 서로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박장대소했다.

"저희도 몰랐는데 만나서 보니까 바지도 똑같고 윗옷도 똑같은 거예요. 하하하."

두 학생을 처음 봤을 땐 교복을 입은 줄 알았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색깔의, 심지어 재질과 상표까지 똑같은 사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두 학생은 정말 "짱친"이 맞았다.
 
제주도 탐방 때 순창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제주도 탐방 때 순창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 순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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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송수진·강민정 학생이 작성한 제주도 탐방 감상문이다. 두 학생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4.3의 아픔을 간직한 동백꽃의 섬 제주도
송수진(순창고1)


이번 3박 4일 제주도 기행의 가장 큰 성과를 물어본다면 단연 제주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한반도 아래 조그만 섬이자 많은 사람들의 휴양지인 제주도, 내가 생각하는 제주는 딱 그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내게 '제주란 어떤 곳이냐'고 물어본다면 '4.3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백꽃의 섬'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처음 제주도 기행을 신청했을 때는 단지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방과 후에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선정하고 조사하면서 제주도 기행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점차 진지해졌다.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배경, 인권의 소중함, 4.3사건 이후 제주도의 모습을 담아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국사 교과서에 스쳐 지나갔던 4.3사건의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평화로운 제주의 이면에 놓인 한 맺힌 눈물방울들을 볼 수 있었다.

늘 그렇듯 학살은 합리화될 수 없는 사소한 계기로 점화된다. 그저 나와 타인 사이를 이념의 차이라는 잣대로 가로막고 자국민을 향한 공격을 명령할 때 총탄의 궤적은 섬 전체를 관통했다. 살기 위해, 굶주리기 않기 위해, 사회주의 정당에 서명했던 행동의 대가는 말살이었다. 그들이 과연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더 부합하는 이념을 비교하여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였을까?

서명을 통해 얻은 쌀은 새하얀 독약이었다. 생명의 연장을 허용해준 결정되어 있었던 죽음. 부당함에 맞서 소리쳤던 그들에게 겨눠진 장총. 담백하고 단아한 하얀색 한복은 붉은 물감에 적셔지기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물감이 다 마른 한복은 뻣뻣한 수의가 되었다. 그렇게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들은 죽어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발포를 명령한 군인들에 분노한다. 소련과의 대결 양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씨앗을 멸한 미군에 분노한다. 자신의 세력을 이어가기 위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자국민을 학살한 대통령에 분노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제주의 땅 밑에는 누군가에겐 소중했던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 세계의 저편으로 날아간 그들의 유골을 우리는 정지된 의식(意識/儀式)으로 추모한다. 생존했던 이들은 트라우마와 장애로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생존자라는 가느다란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생존자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온통 붉은 꽃으로 뒤덮인 그날의 제주, 제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조금 더 숭고해져야 하지 않을까?
  
제주도민 아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
강민정(순창고1)


2022년 1월 5일, 우리는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로그램 이전 여러 번의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우리의 태도는 그저 관광과 휴식에 머무르지 않았다.

제주 방문에 있어서 내가 설정한 목표는 '다크투어리즘에 대한 이해'였다. 다크투어리즘이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의미한다. 내가 사전 조사한 보고서의 주제도 '제주 4.3사건'이었기 때문에 나는 제주도민의 아픔의 지도를 따라 걸으며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제주도의 비극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장소는 크게 3곳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 첫째 날에 방문한 알뜨르 비행장이 그 장소들 중 하나이다. '알뜨르'라는 이름은 사실 제주도 방언으로 '아래 벌판'이라는 평화로운 단어이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이름 속에 숨겨진 아픔은 너무 참혹했다. 비행장 곳곳에 위치한 콘크리트와 비행기 격납고들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말해 주었다. 전쟁의 흔적이 담겨있는 그곳에서 나는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알뜨르 비행장 바로 옆에 위치한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또 한 번 비극을 경험했다. 섯알오름 학살터에는 '백조일손'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백조일손이란 시체가 뒤엉켜 있고, 제대로 수습이 된 것이 없어 수 백 개의 손이 누구의 손인지 모르기 때문에 제주도 그 자체의 가족, 조상이라 명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나는 찢길 대로 찢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고 싶었다. 학살터 옆에는 파악된 희생자 명단과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무신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고무신을 보고 희생자들이 죽음을 예상하고 가는 길을 알리려고 던졌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추모비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경건하게 두 손을 모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장소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이다. 4.3 평화기념관은 광복 전후 냉전이 사회에 끼친 영향부터 4.3사건의 배경과 전개, 그 복잡한 이야기를 전시의 형태로 잘 구현한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무장대를 피해 산에 숨어 지내야 했던 제주도민들의 암담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전시의 끝에는 방문객이 4.3사건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평화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나도 메시지 작성에 참여해 끔찍한 과거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며 재미를 남기는 여행 대신, 역사적 명소를 찾아가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여행을 선택하였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도 역사의 잔해를 현장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라도 역사의 아픔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2월 16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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