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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음력 정월 쥐날(上子日)에 논이나 밭 두렁에 불 붙이는 한민족 정월의 민속 놀이로 밤중 농가에서 벌어지는 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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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면 마을마다 들로 나가 밭둑이나 논둑의 마른 풀에다 불을 놓아 태우며 노는 쥐불놀이는 1년 내내 병이 없고 모든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선조의 풍습이다. 정월대보름날 쥐불을 놓는 까닭은 잡초들을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이나 쥐를 박멸해 풍작을 이루려는 마음이 컸고, 쥐불의 크기 따라 풍년이나 흉년 등 마을의 길흉화복 점치기도 했다. 

보름 때면 동네 아이들은 빈깡통으로 불통을 만들고 못으로 깡통 이곳 저곳에 구멍을 뚫어 철사끈을 달아 그 안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가득 채운 후 불을 붙였다. 철사로 끈을 매어 큰 원으로 빙빙 돌리면 타는 불이 타원을 이루며 허공 속에서 긴 곡예를 펼치며 장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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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논둑 마다 선발대로 미리 도착한 이이들에 의해 놓은 쥐불은 뱀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듯 번져나갔다. 푸른 달 빛 아래 빨간 불이 깜박이며 타들어 가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 계속 돌리며 앞 논둑을 향해 망아지처럼 달려갔다.

평소 같으면 불장난한다고 야단을 맞았을 동네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 깡통에 불 붙여 정월 대보름달을 연상시키면서 원을 그리며 돌려 불의 기세가 크면 좋다고 박수를 치며 자정까지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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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동네와 쥐불싸움도 했다.

싸움에 패하는 마을은 1년 내내 염병을 앓고 농사도 흉년이 든다는 속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1년 중 가장 크다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아이들은 서로 모여 잠시 뒤에 있을 쥐불 싸움의 작전계획을 짰다. 만약에 싸움에 질것에 대비하여 한참 형들도 뒤편 후미진 곳에 매복하여 두었다.

드디어 마을 간 쥐불을 놓아가며 서서히 쥐불 싸움꾼들이 몰려오는데, 초등학교 애들이 앞에서고, 좀 큰 애들이 뒤서고, 더 큰 학생들이 맨 뒤에서 깡통을 돌리고 가느스름한 지팡이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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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 서로 엉켜 치고 받으며 순식간에 논바닥은 아수라장을 이루면 이때 큰 학생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오면 어느 한 쪽은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쳐 버렸다. 

도망가는 적을 따라가다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유년시절의 추억.

사랑방에 모여 놀다가 한밤 중엔 이웃집 잡곡밥을 슬쩍해다 양푼에 맛있게 비벼먹던 기억도 참 좋은 추억.

다음 날 쥐불놀이 하다가 논에 쌓아둔 볏짚을 다 태우고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설빔으로 해준 고운 옷에다 불똥을 내 엄청 혼이 난 추억들. 지금은 민속촌이나 고궁에 가야 이것을 볼 수 있으니 새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 정월대보름 인터넷 카페 완도바라기 가족회원들이 신지명사십리에서 쥐불놀이를 했다. 한 해 동안 재앙을 불에 태워 없애고 코로나가19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각종 신기한 불꽃을 연출하며 신지명사십리 바닷가를 환하게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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