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게 아침은 늘 조용하지만 조금은 부산한 시작이다. 출근길이 멀어진 탓에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깨지 않는 밤의 연장이다. 정확히는 이른 새벽 시간이다. 6시 40분이면 집에서 나서야 하기 때문에 집을 나서기 한 시간 전부터 다른 가족들이 깨지 않게 아주 조용히 하지만 조금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밥을 거르지 않는 나는 혼자 밥 준비까지 하자니 늘 바빴다. 요즘은 이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다행히 아내가 아침상을 준비해주는 덕에 조금은 여유로워진 아침을 보낸다. 이런 아내의 배려가 익숙하다가 가끔 아내가 일어나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오늘같이 조금 더 부산스럽다. 아마 어제저녁 갑자기 잡힌 저녁 약속 때문에 '괘씸죄'에 해당하는 응당의 조치인 듯했다.

덕분에 조금 더 서둘러서 씻었고, 국과 밥 이외에는 별 다른 찬을 꺼내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밥과 국을 내려놓다가 식탁 한편에 반듯이 놓인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고 안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예상은 했지만 아내의 편지였다.

'아르바이트하는 곳 맞은편 매장이 꽃 매장이거든요....(중략).... 하얀 장미가 예쁘더라고요. 오빠 흰 장미 좋아하잖아?'

첫 줄을 읽다가 테이블 우측에 놓인 하얀 장미 한 송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결혼하고 아내에게 처음 받아보는 꽃이었다.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조금은 억누르며 다시 시선을 편지에 둬본다.
 
라넌큘러스의 아름다운 자태
▲ 아내에게 받은 꽃 라넌큘러스의 아름다운 자태
ⓒ 정지현

관련사진보기

 
아내가 쓴 편지 속 이야기는 계속됐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가 준 꽃을 아직도 기억했다. 멋없는 고백에 아내는 못 이기는 척 내게 기회를 줬고, 25년이 넘은 그 시간이 희미하지만 어렴풋이 떠올라 이른 아침 내 감정을 더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맞아. 내가 흰 장미를 좋아했지.'

오랜만에 내가 좋아했던 꽃을 떠올리니 옆에 화병에 꽂힌 하얀 장미가 더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내의 오래전 추억이 내게도 같은 추억으로 떠오르는 게 감사하다. 오래전 난 아내에겐 무얼 해줘도 늘 기뻤다. 아내가 해주는 걸 받으면서도 기쁨을 느꼈지만 아내에게 해줄 때, 아니해줄 수 있을 때가 무엇보다 기뻤다.

계산적이지 않았고, 소위 얘기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부터 아내에게 무언가 해줄 때 기쁜 마음은 같았지만 아내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면 종종 내가 아내에게 배려해준 것들이 쪼잔하게도 생각나곤 했다. 아내에게 받은 손편지와 하얀 장미 한 송이가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아내는 여전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실 어제가 밸런타인데이였다. 연애할 때부터 내겐 밸런타인데이도, 화이트데이도 주는 선물의 종류만 달라지지 내가 아내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주는 이벤트 데이라고 늘 생각했다. 덕분에 식구가 늘면 늘어나는 숫자만큼 초콜릿 개수도, 사탕 개수도 늘어날 뿐이었다.

작년까지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했다. 하지만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매년 주던 초콜릿을 주지 못했다. 그것도 갑자기 저녁 약속까지 잡혀서 함께했어야 할 저녁시간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다. 아마도 아내는 이 이벤트를 준비하며 내가 기뻐할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동한 표정을 아내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곤히 자는 아내를 깨우지도 못하고 미안한 마음만 가득이다. 아쉬운 마음에 두 번이나 읽은 편지와 아내에게 받은 하얀 장미를 카메라와 내 마음에 담았다. 아내의 깜짝 이벤트 덕에 몽글몽글해진 마음을 안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른 아침 날씨인데도 봄 날씨같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어느 SNS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이유 없이 만나면 친구고, 이유가 있어야 만나면 지인이고, 이유를 만들어 만나면 애인이란다. 내게 아내는 이유를 불문하고 늘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다. 나중에 아내가 알려준 사실이지만 내가 받은 흰 장미라고 생각한 꽃은 '라넌큘러스'란다.

그러고 보니 가시도 없고, 장미보다 더 풍성하고 우아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고고하고, 화려한 흰 장미보다 풍성하고, 우아함 그리고 여유가 돋보이는 이 녀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