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런 판결이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나를 감옥에 가두어 주십시오."
"오늘이 우리 용균이 장례를 치룬 날인데 법원이 나와 용균이를 또 죽이니 이제 나는 어떻게 살란 말 입니까?"
 

지난 10일 오후 4시 20분경,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형사3단독 박상권 판사가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와 관련한 1심 선고에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인 김미숙씨는 재판장을 향해 울먹이며 몸부림을 쳤다.

판결이후 무죄를 선고 받은 김병숙 전 사장은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법정 앞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빠져 나갔다. 

최소한 고인과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이라도 해줄 것을 기대하며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잇달은 질문에도 김 전 사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앞서 지난 2018년 12월 10일, 당시 24살 비정규직 청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주)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 운송 컨베이어벨트를 나홀로 점검하다 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이날 1심 법원인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형사 2단독 박상권 판사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당시 김 사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원·하청 관계자들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았다.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한국서부발전에는 벌금 1000만 원, 한국발전기술에는 벌금 1500만 원이 각각 선고됐다.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은 자신들의 근로자가 아닌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안전보호조치를 갖추지 않았다"면서도 "경영을 책임진 김병숙 전 사장이 업무상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마디로 원청의 책임자는 현장을 모른다며 당시 취임 10개월이 지난 김 사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날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재판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판결은 법원이 노동자들한테 죽으라고 내모는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비통해했다. 24세 청년의 목숨 값이 고작 벌금 2500만 원이라는 판결을 접하면서 노동계와 정치권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약속했고, 정치권이 논의 끝에 당초 취지에 벗어났지만 30여년 만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다.
    
판결 후 김용균 재단은 입장문을 통해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이미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재판부의 법해석으로는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새로 만들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라며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고 해도 전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판사 출신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법원이 생명의 소중함을 너무 가볍게 본 판결"이라며 "법원이 무엇보다 엄격한 잣대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잘못을 따져야 하는데 그렇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를 3년 2개월 동안 주목하며 취재해왔으나 지역적인 한계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기자는 생각한다. 지금 이시간에도 고 김용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명이 태안화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웃으며 퇴근하는 안전한 일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바른지역언론연대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고 김용균 노동자, #김용균 재단, #중대재해처벌법, #태안화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