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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①] "누굴 찍을지 정했다"는 윤여준, 그가 말하는 이재명과 윤석열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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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이란 이름이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선거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기자 출신으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세 명의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일했던 그는 김영삼 정부 환경부 장관을 끝으로 행정부 일을 마친 뒤 여의도로 갔다. 2000년대 초반 한나라당의 대선 캠페인과 총선, 지방선거 전략을 주도했고, 2012년 문재인의 국민통합공동위원장, 2014년 안철수의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 등으로 주요 선거국면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제는 모든 타이틀을 버리고 남양주의 산자락 밑에서 "달다"고 할 정도로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는 만 83세의 노정객(老政客)을 세상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 향후 국정운영 방향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윤 전 장관은 이때 '대통령이 된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뉴노멀시대 준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 사회과학책 안 본다. 암만 봐도 해답도 없고, 정서가 너무 황폐해져서 못 쓰겠다"며 요즘 고 송기숙 소설가의 <녹두장군>을 10권째 탐독 중이라는 그가 대선 정국에서 '뉴노멀시대'란 단어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오마이뉴스>는 1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윤 전 장관을 만나 물어봤다.

"해괴한 선거라고도... 뭐 이런 대통령 선거가 있나"

- 대선이 3주 남았다. 흔히 '비호감 대선이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제 주변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이 대개 마음을 정했다고 봐야하는 시간인데, 지금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이상하더라고. 누구한테 선거 결과 예측을 물어봐도 말하기 어려워한다. 여론조사기관 종사하는 사람도 대부분 '정말 장담 못하겠다'고 한다. 유력 후보 두 사람의 부인이 똑같이 과거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말썽이 생겨서 한동안 주요 이슈가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두 분 다 대국민사과를 했는데 '뭐 이런 대통령 선거가 있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볼 수 없었던... 어떤 양반은 '해괴한 선거'라더라."

- 누구도 선거 결과 예측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대체로 윤석열 후보가 우세한 분위기다. 이미 판세가 넘어갔다는 이들도 있다.

"저도 큰 틀에서는 윤 후보가, 격차가 많진 않더라도 약간의 우세 국면이 이어져가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판단은 든다. 그런데 결과를 장담할 정도의 우세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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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선에선 '미래 비전 경쟁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1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소위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온다는데, 우리는 왜 이런 얘기가 안 나오냐'고 했는데.

"대선은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것이지 않나. 당연히 미래 얘기를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이 공존할 정도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엄청나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바꿀 거다.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이 와서... 오죽했으면 세계가 뉴노멀이 온다고 다들 그러겠나. 

그런데 우리는... 우리 경제구조가 수출에 의존하니까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적 변화에 예민해야 하지 않나. 이 시기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뉴노멀시대를 준비해야 할 첫 번째 대통령이다. 그러면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고민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어느 후보도 그 얘기를 안 한다.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본인이 생각하는 뉴노멀, 지금 한국이 꼭 고민해야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이 30년 동안 (세계를) 풍미하면서 나라마다 똑같이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가. 급격한 경제적 격차, 또 그 격차가 사회적 격차로 이어졌다. 이 격차를 이대로 두고는 어느 나라도 평화롭게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도 굉장히 격차가 심한데,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격차를 해소는 못해도 완화는 해야할 것 아닌가."

"불평등 심각... 역사 거꾸로 가는데 후보들이 말 안한다"

- 하지만 주요 후보들이 불평등이란 의제를 전면에 내놓고 있진 않다.

"안 꺼낸다.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다'고 해봄직한데, 이게 위험부담이 많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나라가 워낙 이념대결이 첨예하고, 거기에 다시 불을 붙이는 폐단이 생길까봐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얘기들을 안 하더라."

- '폐단'이라는 건 이념대결로 발생했던 문제들을 뜻하는가.

"그렇다. 그런데 불평등과 직접 연관된 것이 교육문제다. 전에는 교육이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는데, 지금은 신분세습 통로가 됐다. 그래서 부는 부를 세습하고 빈곤은 빈곤을 세습한다. 그러면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막혀버리는데, 이게 엄청난 문제를 가져온다. 우리나라도 상당히 심각한 정도까지 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신분사회가 됐다는 것 아닌가. 이게 말이 안 된다. 역사가 거꾸로 갔다. 광범위한 서민계층이 이 불만을 참지 않을 테니 굉장한 심각한 문제인데 이런 문제도 안 건드리고 있다. 불평등이 구조화하지 않았나. 이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든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든, 해소까지는 몰라도 말하지 않고선 국정운영이 원만하게 되기 어려울 거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항상 씨름해야 될 우선적 과제 중 하나다."

- 그런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을 2011년 저서에서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통치능력)'라고 표현했다. 2022년 3월 9일 뽑힐 대통령에게는 어떤 스테이트크래프트가 필요할까.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시대가 바뀌는, 과거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이 시대적 환경 속에서 우리 국가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흔히 말하는 비전이 그런 거겠죠. 그걸 국민에게 제시해서 국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역량을 모을 수 있다. 후보 때 그걸 안 했으면 당선된 다음에라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또 그걸 위해서 어떤 정책을 쓸 것인가 제시해야 하고, 정책 구현을 위해선 제도를 바꿔야 하니 제도 관리 능력을 보여줘야한다. 그리고 좋은 인재를 쓰는 것. 이건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그 다음에 외교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분단 구조를 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상품을 수출해야만 사는 나라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한반도 평화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도 있어야 한다."

- 정말 많은 걸 갖춰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 한 사람이 다 갖추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 전문가를 쓰면 되는데, 대통령이 전문성을 가질 수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 전문가 의견을 들어서 이해할 만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 전혀 모르면 뭐가 어떤지 어떻게 판단하나. 최종 판단은 (대통령) 본인이 하는 것인데. 문외한은 곤란하다."

"민주적 가치 내면화 없는 대통령,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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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논의가 사라지고 진영대결만 남은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정을 원만하게 수행할 방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을 굉장히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데 국민통합은 따로 어떻게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의회민주주의 운영과정과 원리를 잘 지키면 저절로 이뤄진다. 하지만 정당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그게 안 될 때 표결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헌법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통령은 권력을 잡고 나면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집권당을 다수당으로 만들려고 대통령이 음성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야당이 극렬하게 저항해서 국회가 파행된다. 한두 번 겪었나. 아니, 지금 문 대통령이 소속한 민주당이 야당일 때 국회에 전기톱이 나오고 쇠망치가 나왔다(2008년 12월 1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한미FTA비준동의안 상정 당시 – 기자 주). 피장파장이다. 그러니까 국민통합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지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착각을 한다. 헌법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라고 하는데, 그건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할 때 자격이고 내부적으로는 행정부 수반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하면 마치 자신이 삼권분립 우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제가 보기엔 거의 예외가 없다. 김영삼·김대중 같은 분들은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였지만, 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제가 그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스스로 찾은 답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되려면 소위 민주적 가치가 내면화해서 그냥 저절로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이분들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활동할 때 다 전체주의 시대에 살아서 그럴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아이러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했나 살펴봐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이 6명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조리 다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평가받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거의 임기가 끝나가는데 '성공한 대통령' 소리 듣기는 틀렸고."

"'촛불혁명'이라던 문 대통령, 지금까지 모습은..."

-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갈라치기'를 했다고 줄곧 비판해왔는데, 어떤 점이 제일 아쉬웠는가.

"'촛불혁명'은 헌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혁명이 아닌 데도 국민들이 그 이름을 수용했다. '혁명적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 스스로는 '촛불정권의 광화문 대통령'이라 했다. 그러면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게 무엇인가. 민주주의, 민주적 가치의 회복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어떤가.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으로 하려고 했고. 이 역설을 나중에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다."

- 그런데 윤석열 후보가 현재 1등이고, 정권교체 여론도 높지만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 수준이다. 오늘(17일) KBS 라디오 최강시사 인터뷰에선 '대통령 지지층만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나. 갈라치기를 해서. 그런데 방송을 마치고 나니까 생각난 게, 지금 코로나 위기국면 아닌가. 위기국면에선 국민은 항상 불안감 때문에 정부나 대통령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 심리적 요인도 있을 것 같다."

- 의원내각제에는 찬성하는가.

"저는 언젠가는 내각제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는 국민 요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들이 결과에 대해 국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 5년 단임제는 이 두 가지를 다 지킬 수 없다. 한 번 하고 나갈 사람이니까 국민이 뭐라고 하든 내 맘대로 한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아닌가. 국민이 아무리 반대해도 해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대통령은) 5년 하고 나가버리니까 책임을 다 묻지 못한다. 그러면 그 대통령이 소속됐던 당에 물어야 하는데 (2012년 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했나. 당의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다 바꾸면서 '우리는 야당입니다' 행세를 했다. 심판대상을 없애버리는 거다. 사실 의회정치 하는 나라가 그러면 안 되는데, 다반사로 한다. 그러니까 반응성도 책임성도 없다. 저는 그래서 5년 단임제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4년 중임제가 장점만 있진 않지만, 반응성과 책임성 면에선 낫다고 본다.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안 된다고 본다. 국정의 기본은 경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첫째, 민생을 다루는 게 경제다. 둘째, 국가 안보 때문에도 경제가 중요하다. 경제력이 있어야 군사력을 가질 수 있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어야 외교력을 가질 수 있다. 힘없는 나라는 외교력이 안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 국방도 역할을 하려면 경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하는 이원집정부제는) 말이 안 된다."

"청년들 586에 실망... 그래도 '이준석식 공정'은 위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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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불평등 이야기도 했는데, 지금 청년세대에겐 '공정'이 화두다. 

"젊은 층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준 것은 음... 지금 민주당의 소위 586이라고 부르는 민주화운동세대들의 행태에 굉장히 실망했더라. 그 결과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그러면서 공정의 가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표면에 내거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석한다."

- 어떤 분들은 이게 공정이 아니라 '내가 손해보기 싫다'를 포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정말 똑똑한 사람이 많다. 제가 같이 얘기하면서 얼마나 배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20대까지는 거의 기회를 못 갖지만 30대 초중반은 새로 사귀어서 우연히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확연히 다르다고 느낀 점은, 지금 40대 초반까지도 개인이 최우선 가치다. 앞으로 나올 세대들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특성을 보일 거다. 위정자가 되겠다는 분들이 그런 세대 간 가치관·행동양식의 변화를 상당히 예민하게 살피고, 그걸 감안해 정책과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 

-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내 것을 지키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제가 젊은이들이 그런 주장을 할 때마다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것도 좋은데 공공성이란 국가의 핵심가치와 부딪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라. 모든 게 균형이 중요한 것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 개인의 가치를 최존중하되 공공성이란 국가적 가치와 부딪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다 수용하더라."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한 경쟁'이라면서 할당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특히 능력주의(meritocracy)를 공정한 가치로 내세운 것 아닌가. 얼핏 들으면 맞다. 그런데 한 번 보자.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격차로 이어져서 빈곤이 빈곤을 세습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받아들일까? 메리토크라시라는 게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기반에선 기득권 수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표가 얘기한 취지는 알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저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기득권 논리로 가는 줄 알 텐데, 저건 위험하지 않나'란 생각을 해봤다."

-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들은 이준석식 공정에 많이 호응하고 있다.

"아휴 그렇더라. 특히 안티페미니즘에 열광하더라. 깜짝 놀랄 만큼 강했다. 페미니즘만 나오면 우선 분노부터 하고, 그게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다. 논리로 설득가능한 수준이 아닌 것 같더라."

- 비슷한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러스트 벨트(rust belt, 낙후된 공업지대)의 분노다.

"그렇다. 불평등에 대한 눈을 뜨면서 분노가 표출됐다. 오죽했으면 트럼프가 재선하겠다는 것 아닌가(웃음)."

- '그래서 이대남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사람들이 나뉜다.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식으로 적극 호응하는 반면 이재명 후보는 '일단 듣자' 했다가 비판받기도 했는데.

"글쎄요. (여가부 폐지론은) 여가부가 하는 일이 무엇이어서 폐지하자는 것인지, 정부가 여성문제를 챙기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20대 남자들이 분노하는 건 나름대로 근거는 있다. 당장 어렵지 않나. 그러니까 분노가 표출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지금도 완전히 남초사회랄까. 통계로 나오는 것이니까.

이 오랜 관습을 일거에 뒤집을 수는 없다. 조선조 500년을 관통한 관습인데. 그래도 지금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 여성의 입장에선 너무 느려서 답답하겠지만 좀 인내심을 갖고 계속 촉구하되 기다릴 필요가 있다. 또 20대 젊은 남성들에게도 어머니도, 여자 형제도 있지 않나. 불만이 있더라도 여성들이 잘못해서 여가부가 생긴 것은 아니지 않나. 나름대로 정부가 (성평등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해서 부처를 만든 것이니 좀더 포용성을 보였으면 좋겠다."

"점점 늘어나는 딜레마... 나라면 지금 대통령 안 한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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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자들도 좀더 포용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설득을 해야겠죠. 20대 남자들은 자기가 손해보는 것은 여자 때문이고, 정부가 여자를 우대한다고 생각하니까. 왜 오해인지 설명하는 노력을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 정부도 하고, 정당·사회도 하고. 그리고 가능한 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그런 일이 안 생길 텐데... 덮어놓고 나무랄 수도 없고 참 딜레마다. 그런데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딜레마적 요소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전에는 비교적 단순했는데 지금은 이해관계가 다양해져서 훨씬 갈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만큼 딜레마가 많다는 얘기다."

- 갈수록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의 갈등조정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많은 인내와 설득이 필요하다. 덮어놓고 참으라고 할 수 없으니까 말로 설명하려면 논리와 이론으로 설명해야 하고. 그런 면에 대한 깊은 고민, 사고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깊은 사고와 고뇌에서 나오는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 노력을 하고 소양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 저는 웃으면서 '나 같으면 지금 대통령 하라고 해도 안 한다'고 말한다. 이번 대선 후에 굉장히 중요한 고비 하나를 넘게 될 거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또 합심하면 고통을 잘 이겨내니까 잘 넘길 거다. 국민들이 이해하면 어렵더라도 협력하지 않나. 그러니까 잘 설득하고, 그 설득의 진정성이 전달되면 '나만 어렵나. 다 어려운데 참고 견디자'는 생각을 국민들이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잘 될 것인가... 저는 참 걱정이다." 

태그:#윤여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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