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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슈츤 운스(Wir schutzen uns 우리가 우리를 지킨다)'

이 문장은 아이들을 속이고, 때리고, 위험에 빠뜨리는 나쁜 어른들을 아이들이 직접 응징할 때 외는 주문이다. 언젠가 딸아이가 이 주문을 외우기에 물어봤더니 판타지 동화 <헌터걸> 시리즈에 나오는 주문이었다.

주문을 외우던 딸 아이는 이제 원슈타인의 랩 따라하기 바쁜데, 딸 덕분에 <헌터걸> 시리즈의 재미를 알게 된 필자는 뒤늦게 김혜정 작가에 푹 빠져 그의 지난 작품들까지 다 찾아볼 정도가 되었다.

작가 김혜정. 십 대 시절부터 공모전에만 100여 차례 도전해 떨어졌지만 굴하지 않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된 사람. 지금도 1년에 책 150권, 영화 100편, 드라마 30편 이상을 보는 이야기 헌터로 살며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오백 년째 열다섯 평면표지
 오백 년째 열다섯 평면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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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최근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새로운 청소년 판타지 소설 <오백 년째 열다섯>을 출간했다. 1년 사는 것도 끔찍한 열다섯 나이를 오백 년째 살고 있다는 그 기구한 인생이 궁금해 서면으로 인터뷰를 청했다.

- <오백 년째 열다섯>은 어떤 작품인가요?
"제목 그대로 오백 년째 열다섯 살로 살고 있는 '가을'의 이야기예요. 나이가 들지 않고 오백년이나 같은 나이로 살아간다니 당연히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겠죠? 야호와 호랑이라는 특별한 종족이 나오는 판타지물이자,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학원물이기도 해요."

- 단군신화 속에서 호랑이와 곰뿐만 아니라 여우가 있었다는 발상이 독특합니다. 처음 어떻게 이 스토리를 구상하셨나요?
"어느 날 문득, 오랜 시간 나이 들지 않고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삼대 모녀가 떠올랐어요. 도대체 왜 삼대 모녀는 나이가 들지 않을까? 과연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숨기며 살아갈까? 누군가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서 도움을 얻게 되었어요.

우리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여우의 이미지는 간사함과 교활함인데, 여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우에 관한 새로운 전설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환웅이 내려왔을 때, 여우는 곰과 범과 달리 인간이 되길 꿈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웅녀의 부탁으로 인간계와 동물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됩니다. 그게 바로 야호족입니다. 야호족을 시기한 범은 호랑족이 되었고, 그 이후 여우에 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린 거죠. 여우는 간사하다, 여우는 교활하다고!"

- 오백 년을 살아도 영원히 어른일 수 없는 존재는 피터팬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님은 영원한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열다섯 살에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어른이 되어 보니 당연히 힘든 것도 있지만 전 좋은 게 더 많았어요. 올해 마흔이 되었는데, 노인의 삶이 궁금해요. 천천히 꼬박꼬박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인간의 일생을 다 경험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멈춘 삶을 살아야 한다면, 가을의 열다섯, 엄마의 서른다섯, 할머니 쉰다섯 중 쉰다섯을 선택하고 싶어요. 쉰다섯 살은 이미 쉰다섯까지는 살아 본 거니까요."

- <다이어트 학교>, <판타스틱 걸>, <하이킹 걸즈> 등 작가님은 언제나 십 대 소녀의 성장 스토리에 주목합니다. 작가님의 열다섯 살은 어땠나요?
"검은색이었어요. 어두워서 검은색이 아니라 온갖 색을 다 가지고 있어서요. 한없이 우울한 보라색, 사랑에 빠진 분홍색, 에너지 넘치는 초록색 등 모든 색이 다 있었는데, 모든 색을 다 합치면 검은색이 되잖아요. 감정의 폭이 엄청 넓었어요. 지나칠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불안해했죠.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제가 아주 반짝반짝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반짝임은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책에 사인중인 작가 김혜정
▲ 소설가 김혜정 책에 사인중인 작가 김혜정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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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백 년째 열다섯> 본문 중에 "우린 껍데기야. 우리 삶은 없어. 항상 누군가로 위장하며 살아. 오백 년째 열다섯 살로 사는 거 진짜 끔찍하다고"라는 가을의 대사는 열다섯을 혹독하게 겪고 있는 아이들이 지르는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작품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을 쓰면서 십 대들에게 '오백년 동안 열다섯 살로 사는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화를 냈어요. 열다섯으로 일 년도 살기 힘든데 오백 년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열다섯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순적인 나이예요. 어리게 행동하면 아이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혼나고, 내가 좀 알아서 하려고 하면 아직 어른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혼이 나죠.

알고 싶은 건 많은데 모르는 것도 많고요. 나를 좋아하고 싶은데 한없이 내가 미워지기도 해요.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해지고 싶은데, 친구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봐 조바심이 나죠. 열다섯을 보내는 아이들이 그 시간을 무사히 잘 견뎌내면 좋겠어요. 조금 더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열다섯의 시간은 꼭 필요하거든요. 열다섯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예요. 그러니 열다섯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 새로운 전학생이 출현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헌터걸>처럼 시리즈를 기대해도 되는 건지요?
"호랑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 저도 아쉬웠어요. 그래서 은근슬쩍 에필로그에 새로운 전학생 이야기를 넣었죠! 전학생이 누군지 말씀드릴 순 없지만 호랑족이랍니다. <오백 년째 열다섯>을 읽은 독자 분들이 후속작을 많이 원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2편을 꼭 쓰고 싶답니다! 아직 풀지 못한 야호족과 호랑족의 이야기가 남아 있거든요."

아무데나 K를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오백 년째 열다섯>은 누가 뭐래도 K 판타지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단군신화, '전설의 고향' 속 빌런인 구미호와 호랑족의 대결 등 근래에 나온 그 어떤 콘텐츠보다 한국적이다.

다행인 건 한국적인 소재 속에도 빛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다. 온전히 인간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온전히 야호족의 후손이라고도 말 못 하는 경계의 선 주인공이, 오랜 시간 되풀이된 전쟁을 끝낼 주체로 성장하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쩌면 언젠가 한 번쯤 그 시기를 겪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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