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쇼트트랙 이유빈 선수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이유빈 선수는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에 출전했을 때 자신에게 아쉬운 일로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것을 꼽았다. 그래서인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꼭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꿈이 정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적으로 다가왔다. 원래 계주 멤버로 뽑혔던 올림픽이지만, 다른 선수들의 이탈로 개인전 멤버로 껑충 올라섰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500m가 자신의 주 종목이 된 이유빈(연세대)은 월드컵 메달을 휩쓸었다. 세계랭킹 1위 역시 이유빈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의 마지막 날이었던 16일, 결승에 진출했던 1500m에서 6위를 기록하며 자신의 올림픽 첫 번째 개인전 기록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유빈이 젊기에, 그리고 더욱 욕심이 있는 선수이기에 기대가 된다.

행운처럼 다가왔던 개인전, 놓지 않았던 이유빈
 
결승전 레이스 펼치는 이유빈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이유빈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 결승전 레이스 펼치는 이유빈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이유빈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부상과 재활, 그리고 복귀 과정을 거쳤던 이유빈은 올림픽에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는 도전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3장의 티켓이 걸린 선발전은 최민정·심석희의 양강구도가 단단한 상황인 탓에, 사실상 한 장 남은 티켓을 다른 선수들이 경쟁해야 하는 구도였기 때문.

이유빈은 2021년 5월 태릉에서 열렸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기록했다. 3위를 기록한 선수까지만 얻을 수 있었던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것. 계주 멤버로는 올림픽에 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전 출전을 이루고 싶었던 이유빈에게 아쉬웠던 결과였을 터였다.

지난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이유빈에게 올림픽 개인전 출전은 먼 이야기처럼 들리곤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상위 기록을 차지했던 선수가 징계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된 것. 그렇게 이유빈에게 행운처럼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이 다가왔다. 그런 기회를 이유빈은 놓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유빈은 1500m 종목 월드컵 메달을 휩쓸었다. 10월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베이징 1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개최된 3차 월드컵에서는 은메달을,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에서 열린 마지막 4차 월드컵에서도 1500m 금메달을 따냈다.

그런 활약을 펼친 이유빈은 네덜란드의 슈자너 스휠팅,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 등을 따돌리며 1500m 월드컵 랭킹 1위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그런 모습에 외신에서도 1500m 메달 입상 선수로 이유빈을 지목할 정도였다. 

조금은 아쉬웠던 자신만의 레이스
 
역주하는 이유빈 16일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준결승에서 한국 이유빈이 선두로 달리고 있다.

▲ 역주하는 이유빈 16일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준결승에서 한국 이유빈이 선두로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게 개인전 500m, 1000m, 1500m 출전권을 따낸 것은 물론, 계주에서도 주전 멤버로 출전한 이유빈. 올림픽 본선에 출전한 이유빈은 지난 월드컵에 비해 약간 아쉬운 레이스를 펼쳤다. 대회 초반 있었던 500m 종목에서는 예선에서 준준결승행 티켓을 따내지 못해 아쉬운 탈락을 안아야 했다.

주종목이었던 1000m에서도 불운이 이어졌다. 준결승에서 이유빈이 벨기에의 하너 데스멋 선수와 겨우 0.004초 차이로 3위를 기록하면서 결승 진출의 희망을 품었지만, 다른 조에서 3위를 기록했던 최민정의 기록에 밀려 결승행이 무산되기도 했다. 최민정은 결승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이유빈의 축하를 받았다.

이유빈은 이번 시즌 랭킹 1위에 올랐던 1500m에서는 강한 선수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던 준결승에서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하는 등 개인전 메달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결승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레이스 흐름을 뺏기며 아쉬웠던 레이스를 했던 끝에 6위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물론 이유빈에게 기억에 남을 일도 있었다. 평창 때는 막내 선수로 나서 준결승 때에만 뛰었던 계주에 이제는 레귤러 멤버로 출전해 두 번의 질주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유빈은 준결승에서도, 결승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질주를 펼치며 한국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성장에 끝이 없는 이유빈, 밀라노를 기대해
 
은메달 수여받는 여자 쇼트트랙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14일 중국 베이징 메달 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단상에 올라 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정, 김아랑, 이유빈, 서휘민.

▲ 은메달 수여받는 여자 쇼트트랙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14일 중국 베이징 메달 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단상에 올라 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정, 김아랑, 이유빈, 서휘민. ⓒ 연합뉴스

 
이유빈은 자신의 올림픽 마지막 경기가 끝난 직후 눈물을 쏟았다. 대표팀 분위기가 좋지 못했던 상황에서 천금같은 개인전 출전권을 얻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이제는 주종목이라도 불려도 손색없는 종목에서 자신이 목표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자책과 아쉬움이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유빈은 담쟁이같은 선수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온 첫 시즌 메달을 따내면서 '고등학생 이유빈'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새싹을 피웠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실수했던 좌절에도, 그리고 평창 올림픽 이후 찾아온 불의의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이며 어느새 담장을 덮은 선수다.

두 개의 올림픽 메달은 누군가에겐 이미 부러워할 성과다. 하지만 이유빈은 담장을 넘어 개인전 메달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시 도전한다. 이유빈은 올림픽이 끝난 뒤 "베이징은 선두로 나아갈 수 있는 큰 발걸음이 되었다"고 말했던 바 있다. 준비 부족 등의 아쉬움을 탓할 수 있는 순간을 더 뻗어나가기 위한 자양분으로 삼은 셈.

이미 4년을 통해 세계랭킹 1위를 넘볼 정도까지의 선수로 성장한 이유빈이 다음 올림픽,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된다. 담쟁이가 담장 꼭대기에서 꽃을 피우듯, 이유빈이 8년간 기다렸던 자신의 꽃을 당당하게 피워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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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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