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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정초 설날부터 대보름까지는 널뛰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윷놀이, 돌싸움,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일 년 중에 가장 신명 나게 펼쳐지는 시기였다. 들녘에 메뚜기가 사라진 것처럼, 이제는 농촌 마을에도 이러한 세시풍속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세시풍속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윷놀이는 아직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윷놀이는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데도 좋은 전통 놀이다. 정월 대보름인 2월 15일, 섬진강 상류에 있는 임실 상가 윷판 암각화 유적지를 찾아가 보았다.
 
윷판 암각 유적지
 윷판 암각 유적지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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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은 이 마을을 '웃데울'이라고 한다. 마을 위쪽 저수지를 바라보며 윷판 암각화 유적지가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이며 선사시대 유적지라고 한다. 이 윷판 유적은 2002년 무렵부터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윷판 유적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여 한국 윷의 문화사와 윷판 암각화에 담긴 천문사상 등의 의미를 찾고 있다.

이 윷판 유적은 2016년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133호로 문화재 지정이 되었다. 농로에서 저수지 방향으로 내리막 지형의 20여 미터쯤 경사진 바위 표면에 윷판 암각화가 조성되어 있다. 윷판이 완전한 모양으로 29개의 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암각화가 23개이고, 조금 불완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는 암각화가 16개라고 한다. 윷판의 점으로 보이는 것이 90여 개 있다.
 
암각화 윷판
 암각화 윷판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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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형 윷판
 암각형 윷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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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9m 길이 35m의 넓은 바위에 촘촘히 새겨진 윷판 모형을 명확히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 윷판 바위에 비석을 세운 듯한 흔적도 남아 있고, 고누판도 한 점이 있다. 암각화 바위 옆에 전망대가 설치되었고, 제법 우람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가 유적지를 지키고 있으며, 키 작은 조릿대가 주위에 자라고 있다. 저수지 주위는 과수원이나 밭이어서 여느 농촌의 풍경이다.

한국 고유의 문화, 윷놀이 

윷놀이는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친숙한 우리의 고유 놀이문화다. 세계 어느 곳에도 우리나라의 윷판과 같거나 유사한 도형을 지닌 놀이가 없을 정도로 개성을 지닌 한국적인 놀이문화라고 한다.

백제 때에 윷놀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나 이색의 목은집에도 윷놀이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 우리의 역사와 함께한 놀이문화임을 알 수 있다.

윷판 암각화에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운행과 변화를 살피려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 문화사에서 별자리와 연관하여 그 변화하는 모습을 도형화한 것은 우리나라의 윷판 암각화가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윷은 장작윷과 밤윷이 있고, 윷가락을 만드는 나무는 박달나무, 향나무, 탱자나무, 대추나무 등 다양하다. 콩이나 팥을 쪼개서 만든 콩윷도 있었고 도토리조차 반으로 나누어 활용하기도 했다. 작은 윷판 방석, 큰 짚 멍석, 바위 암각 윷판 등 윷판도 다양하여, 윷놀이는 다양한 모양으로 우리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윷놀이에서 윷가락을 던져 펼쳐지는 도개걸윷모의 전개가 수학적 확률을 전제하지만, 윷가락의 나무 재질이나 윷이 펼쳐지는 윷판에 따라서 우연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모와 윷 같은 사리가 나왔다가 낙이 되어 무효가 되기도 하는 예상 밖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여 윷놀이 내내 흥미롭다.

윷가락을 던지며 솜씨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말을 쓰는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말을 쓸 때 말잡이는 옆 사람의 훈수를 참고하고 참여자들이 협의하며 왁자지껄하다. 윷가락을 던져 사리가 나오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윷가락에는 흥겨움과 신명이 우러나는 노랫가락이 실려있었다.

윷놀이는 실내, 마당, 마을 정자나무 아래, 동구 밖 어디서나 가능했던 생활 밀착형 놀이문화였다. 지금도 여느 단체 모임에서 윷놀이로 화합을 다지며, 으레 떡국이나 다과로 잔치가 이어진다. 처음에 도가 나오면 복이 있다, 첫모 방정에 새 까먹는다, 도긴개긴, 넉동 다 나갔다, 도 아니면 모다, 사람 팔자는 윷짝 같다, 윷은 놀기보다 말을 잘 써야 한다... 이렇게 윷놀이와 관련된 속담이나 삶의 지혜도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윷판 암각 유적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윷판 암각화 현황판
 윷판 암각화 현황판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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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상가 윷판 유적지를 살펴보면서 이곳에 윷판을 조성하고 윷놀이를 하며 그 옛날의 흥겹고 신명 났을 선사시대의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 있는 윷판 유적이 있는 이곳이 너무도 평범한 환경 속에 있어서 의외이기도 하다. 왜 이러한 곳에 이런 의미 있는 암각화 유적지가 조성되었을까?

이곳에서 가까운 하가마을은 '아랫데울'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의 섬진강으로 펼쳐진 구릉지에서 2만 년 전의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지역이 선사시대부터 활발한 삶의 터전이었고 세력 있는 공동체의 거주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임실 상가 윷판 유적이 조성된 바위는 사암으로 보인다. 퇴적암인 사암은 강도가 그리 강하지 않아서, 바위 표면에 29개 구멍을 파서 윷판을 조성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공동체의 행사가 있을 때 필요한 만큼 윷판을 새롭게 새겨서 활용할 수 있는 넓은 바위를 찾아와서 이렇게 윷판 암각화 유적이 조성되지 않았을까?

이곳 임실 상가 윷판 유적의 핵심은 윷판 암각화다. 완전한 모양의 윷판부터 불완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과, 윷판의 일부분인 점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수량으로 적지 않다. 불완전한 윷판을 일부러 처음부터 그렇게 조성했을 이유는 없다.

완전했던 윷판이 세월의 풍화로 마멸되어 불완전한 형태로 변했고, 그 위에 다시 윷판을 새기고 하면서 현재의 이러한 전체 모습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윷판 바위에 오랜 세월에 풍화 침식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의류와 선태식물인 이끼가 부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바위 표면에 윷판 29개의 옴팍 파인 구멍에 이끼가 자리를 잡고 윷판도 있다.

임실 상가 윷판 암각 유적지 가까운 곳에 의미 있는 관광 명소가 함께 있다. 천년의 연꽃 향기를 머금은 듯한 진구사지 석등, 월면리 섬진강 물돌이동, 옥정호 붕어섬과 조치 고개 아래에 있는 영화배우 장진영 기념관이 있다. 이들 관광 명소를 함께 찾아보면 보람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이곳 윷판 암각 유적지를 살펴보고 돌아와서도 왜 이곳에 이러한 유적지가 있게 되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지역의 향토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 좋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상가 윷판 암각 유적지는 조선 시대에 임실현의 북서쪽 지역에서 임실현 중심으로 왕래하는 통로의 고갯길 일부였다는 것이다. 윷판이 새겨진 바위 위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바닥이었으니,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면서 윷놀이를 즐겼을 수 있겠다.

몇십 년 전까지도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이 윷판 바위를 오르내렸다고 한다. 윷판 유적지가 고갯길이었다면 윷판 유적지 바위가 사암이니 더 쉽게 풍화 마모될 수 있다. 수수께끼가 풀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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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가까운 고갯길을 걸으며 기사를 엮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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