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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탓으로 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데 얼마 전 파주중앙도서관(관장 윤명희)에 다녀왔다. 도서관이 살림살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며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러 다니고 있는 내게, <우리 동네 한의사>란 책을 펴낸 한의사 권해진 원장이 '이곳에 가면 도서관이 품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문을 연 파주중앙도서관은 2020년 초 생활SOC 사업 공모에 뽑혀 새 단장했다. 'SOC'는 Social Overhead Capital을 줄인 말로 사회간접자본을 가리킨다. '생활SOC'는 마음 놓고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밑틀을 일컫는다.

코로나 시국에 탈바꿈하여 지난해 말에 문을 다시 연 도서관에 들어서니 계단을 앞에 두고 오른쪽과 왼쪽이 탁 트여 새뜻했다. 책꽂이가 높다랗지 않고 사람 눈높이에 맞도록 야트막하고 바깥이 내다보이는 널따란 창이 많아서 그런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쉼터 같았다. 

파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다 
 
 1층 열람실
▲ 파주중앙도서관  1층 열람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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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벽에 붙은 '공간 스토리'라는 안내판에 1층은 '연결·공존 & 우리를 이야기하다'라고 적혀있었다. 2층은 '역사·울림 & 어제를 기억하다'라고 이름 붙은 디지털기록관이고, 3층은 '몰입·발견 & 오늘을 마주하다'로, 오늘에 사는 '나'와 만나는 곳이었다.

또, 4층은 '몰입·발견 &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다'로 깊이 생각하고 배우면서 자라는 '나'를 빚는 곳이고, 5층은 '영감·창조 & 내일을 만들다'로 떠올린 생각을 실제 삶으로 빚어 내일을 만들어가는 곳이란다.

이 가운데 깊은 감동을 준 곳이 두 군데였다. 도서관에 있으리라고 여겨지지 않는 곳들이다. 1층 오른쪽으로는 '일상의 기억, 파주의 기록으로 탄생하다' 전시장이 있다. 요즘 펼쳐진 그림은 운정역이다. 이제는 전철역으로 탈바꿈해 많은 이들이 오가지만 본디 운정역은 혼자 일을 하던 역장님이 승객과 안부를 주고받을 만큼 자그마했단다.

이 전시에 이어 '삽다리 돌아갈래!'란 동패리 사람들 사진과 이야기가 소복하고, '안녕, 돌곶이'라고 심학산 자락 돌곶이가 품은 이야기 따위가 고스란하다. 그 옆으로 교하·운정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아온 식구들 이야기가 반긴다. 이걸 보고 2층으로 올라서면 오래된 재봉틀을 비롯해 손때 묻은 살림살이가 가지런하다.

오래도록 파주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여느 사람들이 엮은 터무니다. 손때 묻어 정겨운 살림살이를 보고 오른쪽에 있는 디지털기록관에 들어서면 파주는 빼어난 한두 사람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살림살이가 두루 어울려 이뤘다는 걸을 알 수 있는 역사가 소복하다.
  
 보통 사람 살림살이, 역사로 남기다
▲ 일상의 기억, 파주의 기록으로 탄생하다  보통 사람 살림살이, 역사로 남기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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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만고만한 여느 사람들이 엮어가는 나날살이를 가려 담아 파주중앙도서관이 빚은 책들도 있다. 삼팔선을 넘어와 하우스 보이로 살던 어른 이야기를 비롯해 오래도록 파주 사람들 머리를 깎아온 가위손 이야기까지 파주 사람 숨결을 담은 <파주에 살다, 기억하다>와 재개발로 사라져 가야 하는 고샅길에 깃든 살림살이가 고스란한 <그리운 금촌, 보고플 율목> 1·2권이 그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골목골목에 깃든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파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던 70년도 넘은 지씨네 기름집 이야기며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선 이층집 이야기들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여느 사람 숨결이 고스란한 책들을 보다가 프랑스에 사는 작가 목수정이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이에게 사주거나 빌려다 줄 책을 고르려고 도서관이나 책방을 살폈는데 눈을 씻고 봐도 위인전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프랑스 사람들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하고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어 리스펙트(respect)가 누군가를 우러르며 따르는 날줄을 이루는 사이라면, 그와 비슷한 프랑스어 레스펙테respecter는 씨줄을 이루는 사이를 일컫는 말로, 그 사람이 하는 말과 생각을 믿는다는 뜻이 담겼다고 했다. 그래서 자유·평등·우애를 내세우며 시민운동을 펼친 프랑스 사람들답다고 생각했는데, 파주중앙도서관이 여느 사람들이 펼친 살림살이를 엮어 터무니로 남기다니 놀랍다.

도서관에서 재활용품 되살림이라니
  
 플라스틱 병뚜껑이 독서링으로 되살아나다
▲ 재활용품을 도서관에서 만나다  플라스틱 병뚜껑이 독서링으로 되살아나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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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을만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5층엔 우유팩과 멸균팩, 버려진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으는 곳이 있었다. 그 옆에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도 있다. 다달이 넷째 주 토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이 사출성형기 덕분에 쓰레기가 되어 생태계를 망칠 뻔했던 플라스틱 병마개가 독서링으로 되살아나는 마법이 일어난다. 독서링은 책을 읽을 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엄지손가락에 끼워 책갈피를 누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연장이다.

이날, 넷째 주 토요일은 '그린에피 그린데이'로 도서관 5층에 제로웨이스트 시장이 들어서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면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싶은 사람을 맞는다. 그린에피 그린데이에 식구들이 손잡고 한 달 동안 모은 페트병 뚜껑과 종이 우유팩을 들고 도서관을 찾아 생태와 환경을 아우르는 책을 읽고, 플라스틱 병뚜껑 탈바꿈도 보고, 포장재가 없는 비누 따위를 한두 개 사 오면 어떨까.

그래도 도서관에서 재활용품 되살림이라니, 생뚱 맞다고 여길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삶이 되어 나오지 않는 앎은 가짜라는 것을. 우리는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저 길을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운전하는 법을 달달 외우고,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맞았다고 운전할 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 배운 것이 짓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앎이 이루어진다. 길은 걷는 사람에게만 열린다.
  
 종이컵이 있지만 쓰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지구별을 살린다.
▲ 종이컵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  종이컵이 있지만 쓰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지구별을 살린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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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중앙도서관에는 이 밖에도 살림살이가 소복하다. 식수대 옆에 '종이컵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란 글이 붙어있다. 텀블러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눈빛이 흔들릴 테다. 화장실 세면대 옆에 종이수건 옆에도 어김없이 '종이타월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라고 적바림했다.

책을 빌릴 때도 '청구기호 출력 대신 사진 찍기'라고 붙어있는데, 맨 아래 '정답은 없지만 방법은 있습니다'라고 적힌 글이 곱다라니 눈에 들어온다. 도서관에 놓인 메모지나 도화지도 모두 행사 때 쓰던 이면지를 되살려놨다. 사람 눈높이에 맞아 눈길을 시원하게 만드는 야트막한 책꽂이들은 그전에 있던 높다란 책꽂이를 잘라 되살려내고, 5층 되살림 코너에 있는 가구와 구조물도 콘크리트와 폐플라스틱을 섞어 만든 것이다.

삶과 죽음이 맞선 말이듯이 살림에 맞선 말은 죽임이다. 그렇듯이 살림살이란 산 것이 죽지 않도록 하거나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일을 일컫는다. 우리 어머니들은 '너를 살릴 때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림살이를 했다. 살림살이란 살림을 몸에 새겨 길을 들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짓이다. 그런데 파주중앙도서관은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우리를 흔들면서 책에 있는 길을 우리 나날살이에 들여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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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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