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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세계일주자인 민영익, 서광범, 변수를 태운 트렌턴호가 뉴욕항에서 지구 반대편 조선이라는 왕국을 향해 출항한 것은 1883년 12월 1일이었고 조선의 제물포 항에 닻을 내린 것은 이듬해인 1884년의 5월 31일이었습니다. 꼭 반년이 걸린 것이지요. 그 사이 우리가 들렀던 곳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서양의 아조레스 섬(포르투갈령)-리스본-지중해의 입구 지브롤터(영국직할령)-마르세이유-리옹-런던-파리-마르세이유-나폴리-로마-포트 사이드Port Said(이집트)-카이로- 수에즈 운하-아덴(예멘 수도)-봄베이-실론-싱가포르-홍콩-나가시키-제물포.

몹시 애석한 일은 조선인 중 누구도 여행기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나의 기억을 복기해 봐야겠군요.

뉴욕항에서 대서양을 횡단하여 유럽으로 가려면 그 중간에 떠 있는 아조레스Azores 섬을 들르게 됩니다. 새가 엄청나게 많은 섬으로 유명한 아조레스는 포르투갈령의 군도인데 뉴욕항에서 4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요. 거기까지 꼬박 보름가량 걸렸고 항해는 내내 순조로왔습니다. 아조레스에서 우리는 미국 영사관의 다브니Dabney영사와 그 가족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휴식도 취하고 구경도 하면서 섬에서 며칠 묵은 뒤 우리는 18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브롤터Gibraltar로 향해 나아겠지요. 갑자기 푹풍이 일었습니디. 악천후 속에서 우리는 뱃머리를 오던 길로 돌려 리스본으로 대피했지요. 설상가상으로 함선의 스크류가 고장나고 말았어요. 배에는 중장비가 가득 실려 있었고요. 우리는 심란한 상태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리스본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 때 나는 민망스러운 걸 보고 말았습니다. 민영익 공의 참담한 민낯이었지요. 나는 그 모습을 부모님 앞 편지에 남겼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리스본에서 쓴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배멀미를 지독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난생 민명익처럼 겁에 질린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 그의 표정은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그는 승선하기 전까지는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황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의 무용담을 내게 말하곤 했지요. 저는 그에게 옛날 황해 바다 무용담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그는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황해? 페이비!(Whanghai? Paby!)'라고 얼버무리더군요. '베이비'는 그가 가장 잘 아는 영어이죠.


민영익이 자기를 마르세이유Marseille에서 내려 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거기에서 우편 증기선으로 갈아타고 조선에 가겠다는 거였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고, 신랄한 어조로 쏘아주었습니다. '아무리 폭풍이 무섭다기로소니 조선 왕의 전권대신으로서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손님으로서 체통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말에 그가 조용해지더군요."

만일 민영익이 트렌턴호에서 하선하겠다고 우긴다면 그건 나로서는 몹시 낭패스러운 일이 되었겠지요. 민영익은 특별 대우를 받아 함장 전용실에 묵었고 조선 사절들에게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해군부 특별 예산에서 지출했지요. 더구나 나 조지 포크 해군 소위를 동행시키는 이례적인 배려까지 아끼지 않았지요. 전례 없는 그런 대우가 모두 아더 대통령의 각별한 호의로 이루어진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사절이 그걸 내팽개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편, 서광범과 변수의 태도는 전혀 달랐어요. 풍랑 속에서도 침착을 유지하고 의연한 모습을 흐트리지 않더군요. 나는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다행히 폭풍은 가라앉았고 우리는 12월 28일 오후 6시에 지브롤터에 입항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음 날 그곳에서 짤막한 쪽지를 부모님께 보냈지요. 140년 전 나의 손글씨를 보실래요?
  
조지 포크가 지브롤타에서 부모님에게 보낸 1883년 12월 29일자 편지 .
▲ 조지 포크 편지 조지 포크가 지브롤타에서 부모님에게 보낸 1883년 12월 29일자 편지 .
ⓒ 미의회도서관 소장; 김선흥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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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항은 스페인 남단에 있지만 영국 직할령입니다. 그곳의 우리 영사가 영접을 나왔고 그의 안내로 우리는 명승고적을 관람했습니다. 마침 영국의 에딘버러 공이 군대를 사열하는 광경을 관람할 수도 있었지요. 

며칠 후 지브롤터를 떠나 마르세이유항(프랑스)으로 향했지요. 순풍이 불어주어 항행은 순조로왔습니다. 유명한 마르세이유 항에 다다랐을 때에는 새해 1884년의 1월 6일이었습니다. 다행히 민영익은 하선하겠다는 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트렌턴호는 마르세이유에서 연료와 음식물도 보충하고 수리, 정비도 할 겸 3주간 정박했습니다. 우리는 마르세이유를 사나흘 관광한 뒤 1월 10일 리옹Lyon역으로 이동했지요. 헌데 역에서 그만 도난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지 뭐예요. 나와 민영익의 가방을 받아 든 짐꾼이 종적을 감춰 버린 것입니다. 

내 가방 속에는 세면도구와 옷가지며 책자, 자료, 사진 등속이 들어 있었고 민영익의 가방에는 그가 그처럼 소중히 여기던 사모관대가 들어 있었지요. 도둑을 잡기 위해 현지 미국 영사, 프랑스 역무원 및 경찰이 총동원되었지만 도둑이 한 수 위였습니다. 그 때 사라진 민영익의 사모관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분실물을 포기한 채 찜찜한 기분으로 기차에 올랐지요. 장거리 이동 끝에  내린 곳은 칼레역이었습니다. 칼레Cales는 프랑스 북부 항구로서 도버해협을 끼고 영국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유서깊은 곳이죠. 칼레 역에서 여객선으로 갈아타고 도버해협을 건넜지요. 대영제국의 심장 런던에 발을 디딘 것은 1월 16일이었습니다. 

런던에서는 랑함Langham호텔에 투숙하여 일주일을 보냈지요. 랑함 호텔은 1865년에 건립된 이래 오늘날에도 건재하고 있는 유서 깊은 호텔이지요. 140년 전 민영익 일행이 바로 랑함 호텔에 투숙한 최초의 조선인인 셈이군요. 

우리는 런던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여러 활동을 하였습니다. 우선 시내의 명승고적을 두루 관람했지요. 윈저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수정궁, 국회의사당, 하이드 파크, 동식물원, 터소우 밀랍인형관 그리고 대영박물관.

특히 대영박물관은 조선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나는 민영익 일행에게 영국이 인도, 중국, 이집트로부터 문화재를 약탈해 온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조선인들의 반응을 살폈지요.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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