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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시장 조사를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부속가게 일을 하고 있는 죽도시장 이화부속 이승건 대표가 직접 염색한 레이스를 들고 있다.
 20대 초반 시장 조사를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부속가게 일을 하고 있는 죽도시장 이화부속 이승건 대표가 직접 염색한 레이스를 들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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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슬픈 기억'을 잊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해마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며 '주목받는 아시아의 용(龍)'으로 커가던 한국이 밑을 예측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해.

부득불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며, 국민 다수가 일찍 터뜨린 샴페인의 병을 다시 닫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 시절 신조어로 등장한 것이 있으니 언필칭 '아나바다 운동'이다.

흥청망청 사용되던 것들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캠페인. 그때부터 아까운 줄 모르고 쉽게 버리곤 했던 옷을 리폼(Reform·낡고 유행에 뒤떨어진 의류를 새롭게 고치는 것)하는 게 유행처럼 한국에 번졌다. '아나바다' 중 아껴 쓰고, 바꿔 쓰자는 항목에 해당하는 운동이었다.

'부속가게'가 의도치 않은 호황을 맞았던 시기다. 헌데, 부속가게가 뭐지? 이런 의문을 가질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경상북도 포항 죽도시장에서 옷을 만들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속가게를 운영하는 이승건(39)씨가 간명한 답변을 들려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옷을 구성하는 단추, 지퍼, 레이스, 안감, 실 등을 판매하는 곳이죠. 의류를 만들어 입는 분들이나, 퀼트(Quilt)를 취미로 가진 손님들이 우리 가게의 주요한 고객들입니다."

20대 초반부터 고민해온 옷과 옷 관련 용품과의 '동고동락'

이른바 썩 잘 만든 '기성복'이 지천인 세상이다. 아주 비싼 명품이 아니라도 꼼꼼한 바느질과 세련된 디자인, 여기에 유행의 흐름에 발맞춘 옷이 주위에 널린 게 2022년 오늘.

하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지금 중년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호롱불 혹은, 삼십 촉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나일론 양말을 눈 부비며 꿰매던 어머니를 보고 살았다.

큼직한 점퍼나 허리가 넉넉한 치수의 바지를 사서, 그걸 몇 년에 걸쳐 자식들에게 입히며 낡으면 꼼꼼한 바느질로 새 옷처럼 만들어주던 그 어머니들은 아직도 여전히 부속가게를 드나든다.

죽도시장에 2개밖에 남지 않은 부속가게 중 하나인 이화부속 이승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양장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옷과는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질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이 대표에겐 있었던 것.

비교적 일찍 결혼해 중학생 아들을 둔 이 대표가 다니던 직장을 접고 옷과 옷에 관련된 물품과 함께 울고 웃어온 것도 벌써 17년. 20대 초반부터 시장 조사를 하며 생각해온 그 '동고동락(同苦同樂)'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 부속가게를 운영하겠다고 결심한 동기나 계기가 있었나.
"늘 예쁜 옷을 보며 자랐다. 2008년에 결혼을 했다. 그때 회사를 다녔는데 월급이 150만 원 정도였다. 혼자서야 살지 못할 돈이 아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돈으로 생활을 해결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생겼다. 남아 있는 40~50년 인생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그런데, 그걸 한다고 해도 많지 않은 급여로 육아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직업을 찾고 싶었다."

- 단도직입으로 묻자. 그래서, 월급쟁이보다는 나은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나았다. 그런데..."

- 갈수록 좋아지는 게 아니라,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인지.
"처음 부속가게를 시작할 땐 죽도시장에 같은 업종의 가게가 4개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2개가 사라졌다. 지금은 죽도시장을 통틀어 2개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2010년 정도까지는 가게가 잘 됐다. 하지만, 저렴하고 잘 만든 기성복이 많이 나오다보니 갈수록 부속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햇수로 3년째다. 가장 큰 거래처인 세탁소와 옷 수선집이 적지 않게 문을 닫았다. 정말이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승건 대표. 이 대표를 돕는 아내는 미용사다.
 아내와 함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승건 대표. 이 대표를 돕는 아내는 미용사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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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삶의 활로(活路)'를 찾아갈 수밖에...

아무도 청하지 않았건만 2020년 벽두 소리도 없이 무서운 기세로 우리 땅을 침공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5개월째 세상을 공황에 빠뜨리고 있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이 수천 년간 축적해온 병균에 대한 다양한 저항법들 모두를 무력화시키고 있으니.

어떤 나라보다 소상공인이 많은 한국은 생물학적 공포와 함께 경제적 피폐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승건 대표의 이화부속이라고 그 격랑을 피해갈 방법이 있을까? 당연지사 없다. 매출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70% 급감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 이 대표에겐 아직 어린 아들과 딸이 있고, 속된 말로 남은 인생이 '구만 리' 아닌가.

-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결국은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한다는 장사의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부속가게의 주요 거래 물품 중 하나가 레이스다. 손님들은 다양한 색깔의 레이스를 원한다.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평범한 색의 레이스는 공장에 맡겨 만들어도 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선 여러 색채의 레이스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고민 끝에 책을 사서 읽으며 공부하고, 염색 약품을 구입해 수차례 실패를 거듭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색깔의 레이스를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

-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젊은 나이다. 힘든 시절을 이겨낼 용기를 주는 분들이 주위에 있을 것 같은데.
"10년 가까이 찾아주는 내 아버지 연배의 단골손님이 있다. 아내분은 옷 수선을 하고, 남편분은 개인택시를 한다. 그분들이 와서 힘들어하는 날 보고 차 한잔 마시자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들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성실함을 잃지 말고 버티면 좋은 시절이 다시 올 거야'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됐다."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맨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이 또래보다 오래여서일까? 이승건 대표는 예스럽게 표현하자면 점잖고 진중하다. 잘 웃지 않고, 목소리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 대표의 딸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다. 그럼에도 아빠의 일을 곧잘 돕는다. 주말이면 가끔 이화부속에 나와 의류 관련 소품들을 정리하거나, 포장하는 일을 한다.

"일을 도와주면 정확히 계산해서 작은 돈이라도 줍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어릴 때부터 애들에게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싶은 내 나름의 교육 방식이죠."

이쯤 되면 두말할 것 없다. 의젓하고 합리적인 '젊은 아버지'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며 오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이승건 대표 부부.
 어려운 시절이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며 오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이승건 대표 부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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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맞추는 수선가게로 이어나갈 터

모든 어려움에는 해법이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갈수록 어려워지는 부속가게의 운영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을 앞에 둔 이승건 대표의 답변은 이랬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부정할 수 없이 힘든 상황이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어려움이 당장은 풀리지 않겠지만,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가장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초발심(初發心)을 다시 떠올립니다. 내가 회갑이 되고,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바뀌는 시대와 세대에 맞춰가며 가게를 오래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의 마음가짐과 태도라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까. 코로나19 사태의 차가운 바람도 따스한 아버지이자, 쉬이 흔들리지 않는 이 대표의 진정성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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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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