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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일정표에는 겨울방학이라고 적혀 있지만, 학교는 새 학년의 시작을 보름 남짓 앞둔 지금이 '대목'이다. 연간 수업과 평가 계획을 세우고 교재를 연구하는 데 눈코 뜰 새가 없고 담임을 맡게 됐다면 학급 운영 계획도 마련해야 할 때다. 교사에겐 긴장 반 설렘 반의 시간이다. 

이맘때는 아이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고3에겐 고2 겨울방학은 여느 학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미 수험생활에 돌입했고, 그들의 책상 위엔 수능일까지 남은 날짜를 적은 'D-day'가 붙어 있다. 채 280일도 남지 않았다며 조급해 하는 낯빛이다.

지난해 중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들에겐 고등학교 시절 다시 없을 진짜 방학이지만 마음만은 고3 선배들 못지않게 바쁘다. 배정받은 학교의 교복을 맞추면서 이제 자신이 고등학생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도 이달 말까지는 긴장 반 설렘 반의 시간이다. 

학년 부장 보직을 맡아 올해 1년 동안 새내기들과 함께 지내게 됐다. 배정된 아이들 225명의 이름과 출신 중학교, 내신성적 등을 대강 훑어보았다. 입학 전후로 전학을 오가는 경우가 더러 있겠지만,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 안팎이 될 듯하다. 근래 큰 폭의 변화는 없다. 

0.5%에서 92.6%까지, 말 그대로 극과 극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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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아이들의 내신성적 분포다. 백분위 기준 0.5%에서 92.6%까지,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건 아니어서 섣불리 예단할 순 없다 해도, 교사로서 수업 운영의 어려움은 각오해야 한다. 

이미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통해 고등학교 전 과정을 섭렵한 아이부터 인수분해는커녕 원의 넓이조차 구할 줄 모르는 아이까지 같은 학교에 배정된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작년엔 학생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Student'의 철자조차 쓰지 못하는 고1 아이도 여럿 있었다. 

만약 그 두 아이가 같은 수업을 듣게 된다면, 과연 교사의 개별 지도가 가능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렇다고 수준별로 반을 나눠 수업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이른바 '낙인 효과'에다 등급을 산출하는 상대평가에서는 필연적으로 공정성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어서다. 

학습 능력이 천양지차인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교실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업이란 불가능하다. 엄연히 진도와 학습 목표가 제시되어 있는데, 교사 한 명이 일대일 개별 지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상위권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초가 필요한 단계형 교과인 수학의 경우 특히 심해서 고등학교 첫 수업 시간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일찌감치 중학교 때부터 '수포자'의 길에 든 경우다. 여기에 공부하기 벅차하는 영어 수업까지 더하면, 그들에겐 매일 한두 시간의 취침 시간이 확보되는 셈이다. 

결과가 불 보듯 환할 뿐더러 해마다 심화하는 양상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업하기 힘들다 해도 명색이 교사로서 그들을 포기하고 갈 순 없다. 총 수업일수를 고려할 때, '수포자' 한 명이 잠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줄잡아 연간 200시간에 육박한다. 

도저히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편이 낫다. 다른 교과 공부든 운동이든 책상에 엎드려 무기력하게 잠을 자는 것보다 백배는 더 교육적인 일이다. 단언컨대,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수업 땐 자고, 시험 땐 찍는 아이들
 
날이 갈수록 '수포자'와 '영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수학과 영어가 공통 필수과목이라는 점이다.
 날이 갈수록 "수포자"와 "영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수학과 영어가 공통 필수과목이라는 점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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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수포자'와 '영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수학과 영어가 공통 필수과목이라는 점이다. 시험에서 0점을 맞고 9등급을 받을지언정 이수하지 않으면 진급과 졸업이 불가하다는 뜻이다. 수업 땐 자고 시험 땐 찍으면서 이수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웃픈'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수업 시간에 잠자는 대신 다른 걸 할 수 있게 허용하기 힘든 이유다. 설령 허용된다 해도 상위권 아이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9등급의 상대평가에서 모집단의 수가 적으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어서다. 곧, 그들에겐 '들러리'가 필요하다.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방도는 현재로선 없지만, 어느 정도 완화하는 방법은 있다. 절대평가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사실 '수포자'와 '영포자'가 나날이 느는 이유는 수업 내용이 버거운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어차피 공부해 봐야 등급을 올리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들에게 절대평가는 애초 자포자기하려는 마음을 되돌리는 최소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50등'은 아득하게 보여도 '50점'은 해볼 만한 점수로 여겨지는 이치다. 수능에 '올인'하겠다며 자퇴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믿는 구석도 검정고시가 절대평가 방식이라서다. 

절대평가라는 말만 꺼내면 전가의 보도처럼 반론이 뒤따른다. 당장 대학 입시에서 무엇을 기준 삼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수능과 내신성적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되면, 대학별로 기준을 따로 정해 선발할 수밖에 없다며 으름장을 놓을 건 당연지사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다. 평가 방식이든 대입 제도든, 수직적으로 서열화한 학벌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100점을 맞아도 동점자가 많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없는 줄 세우기 경쟁 속에 잠자며 시간을 보낼 '들러리'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

며칠 전 중학교 내신성적을 기준으로 학급 편성을 한 결과, 공교롭게도 백분위 92.6%인 아이가 내 반이 됐다. 듣자니까, 그는 중학교 시절 과목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시간을 잠자며 흘려보냈다고 한다. 어쨌든 인연이 닿았으니 그를 위한 학급 운영 계획을 따로 마련해야 할 듯하다.

고백하자면, 그와 같은 친구들의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게, 학년 부장으로서 염두에 둔 올해의 핵심 목표다. 경험으로 미루어, 그들의 감춰진 재능이 낮은 성적으로 인해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적과 자존감이 정비례하는 현실이 꼭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아마 올해도 그는 수업 시간마다 쓰러지게 될 것이다. 그를 일으켜 세울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방과 후에 그와 수학을 기초부터 함께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얼마 전 중2 과정의 수학 문제를 두고도 쩔쩔맨 터라 얼추 그와 수준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자면 내 방과 후 시간이 조정되어야 하고 동료 수학 교사의 도움과 배려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상위권보다 하위권 아이들에 더 관심을 쏟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안타깝지만 지금 학교는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교육관이 여전히 팽배하다. 

명문대 합격자가 학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로 호명되고, 그 숫자가 명문고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렇듯 각박한 현실에서 '들러리'들은 졸업할 때까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투명 인간'일 뿐이다. 난 그들이 소수의 상위권 아이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라고 믿고 있다. 올해 그 첫발을 힘차게 내디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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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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