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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약자에게 가혹합니다. 법의 바깥으로 내몰린 삶도 존재합니다. 유권자가 가장 대접 받는 대선 시기, 유권자로 주목받지도 호명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만납니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꿈꿉니다.[기자말]
얼마 전 페이스북을 보다가 성산업 종사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거리집회 사진을 접했다. 모든 정당이 한창 '대선모드'에 돌입하고 있을 때였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후회했다. "나라도 저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과거에 그렇고 그런 직업을 가졌었다'는 루머는 이제 전 국민의 귀에 들어가 버렸다. 지라시처럼 떠돌던 이야기가 레거시 미디어에서조차 등장하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김씨가 한 인터뷰에서 '쥴리설'을 직접 언급하면서부터였다. 둑이 풀린 듯 '쥴리'에 대한 보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쥴리를 입에 담는 정치권 인사들을 보며, 내가 걱정하고 분노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진짜 '쥴리들' 때문이었다. 쥴리를 입에 담으며 조롱하고 키득거리는 이 정치판을 보면서, 실제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 중 대다수는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린 여성 청년들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가 그들에게 줬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한번 쥴리는 평생 쥴리를 벗어날 수 없고 영원토록 모욕 당하리라'는 것? 정치는 당신들의 존재를 하등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목소리는 대체 어느 정치세력이 대변할 것인가

정치권의 쥴리 공방 사이에서 진짜 쥴리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내게도 부채감이 쌓였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는 겁이 나서 말하지 못했었다. 보수진영에서도 진보진영에서도, 여초 진영에서도 남초 진영에서도 공격당할 소재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대체 어느 정치세력이 대변할 것인가?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심한 혐오와 폭력에 노출된 약자임이 분명한데.

성매매냐 성노동이냐. 이런 용어 논쟁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뭐라고 부르든 이들은 '일 하는 사람들'이고, 대한민국의 시민이고, 이들을 상대로 한 살해와 강간을 멈춰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권의 아무도 이 문제를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하는 상황이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것도.

지난 1월 30일 저녁에 이들을 만났다. '왹비(별명)'는 소위 '룸'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나이를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바다'는 1995년생으로, 마사지 업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함께 활동하는 2002년생 '유자'도 함께 자리했다.
 
주홍빛연대 차차 간담회. 사진 가운데는 필자.
 주홍빛연대 차차 간담회. 사진 가운데는 필자.
ⓒ 강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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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의 영향이 있나요?

바다: "하루 손님이 반 이상 줄었어요. 문 닫은 가게들도 많고, 그러면 거기서 일하던 언니들은 생계가 문제가 되니까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몰래 영업하는 가게로 가거나 더 수위가 높은 업종으로 가게 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왹비: "저는 유흥업소, 소위 룸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일하니까 2차를 가지 않으면 일 자체는 불법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밤 9시면 시작하는 시간인데 영업제한이 있다보니까 몰래 영업하는 곳들이 많죠.

몰래 영업하다가 걸리면 아가씨들이 번 돈은 경찰이 범죄수익이라고 다 뺏어가요. 코로나로 인한 손실대책도 우리는 받을 수가 없어요. 재난지원금 신청받을 때도 이름이랑 주민번호, 직장명을 써야 한다고 해서 일하는 언니들은 대부분 신청하지 않았어요. 근로계약서도 4대보험도 없으니까, 우리는 분명 있지만 '없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죠."

- 제도 바깥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위험한 상황도 많았을 것 같아요.

왹비: "유사성행위나 삽입성행위가 없는 유흥업소의 경우는 합법이에요. 그런데 유흥업소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다가 폭행이나 성폭력을 당해도 경찰에 잘 신고를 못해요. 경찰이 '너 2차 한 거 아니냐'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로 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불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받는 것이 훨씬 어렵죠.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요. 합의된 수위 이상을 요구하고 강간을 하는 식인데, 우리가 당하는 강간도 강간이거든요. 그리고 돈을 제대로 안 내고 가는 경우도 많은데 경찰에 신고를 할 수가 없어요."

바다: "손님들이 어떻게든 정해진 것 이상을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저 같은 경우도 손님이 힘으로 하려고 했던 경우가 있었고요. 업주도 보호를 해주지 않았어요."

- 신상공개나 불법촬영이 두려운 적은 없었나요?

왹비: "연락을 안 받고 일을 안 나오면 업주가 신상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일들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업소에서 업주가 불법촬영을 한다는 소문이 쫙 돌았는데, 몰래 카메라 설치해서 일하는 장면을 다 찍은 다음에 VIP 고객들에게 제공을 했대요. 그런 일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죠."

바다: "신상 유포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초반에는 손님 휴대폰이 혹시 녹화나 녹음을 하고 있는지 신경을 썼는데 매번 그렇게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요."

경찰, 빚, 인권 그리고 정치

- 성산업 종사자들에게 경찰은 어떤 존재인가요?

바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찰 단속을 받았어요. 경찰 단속을 피해서 도망가서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경찰이 제 손목을 낚아채고 일하던 건물로 끌고 들어갔어요. 저에게 조서를 쓰라고 하고 지켜보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상세하게' 쓰래요.

그런데 쓰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 행위들을 하나하나 보는 앞에서 쓰라고 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경찰이 저를 윽박질렀어요. '너 여기서 OOO 하지 않았냐', 그러면서 그대로 쓰라고 했어요. 제가 다 쓰고 나니까, 앞으로 자기 연락을 잘 받으라면서 안 받으면 저희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어요."

왹비: "지금의 경찰 단속이 성매매를 차단하는 데 큰 효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매매특별법이 생기고 성매매가 불법이 되었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건, 경찰과 업주가 유착관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성구매자들은 경찰 단속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걸려도 초범이라고 존스쿨 교육만 받는 거고, 원래 업소에 와서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벌금 얼마 내는 것도 그렇게 큰 게 아닌 거죠. 경찰은 여성들에게만 무서운 존재예요."

- 여성들이 빚의 늪에 빠지는 이유는 뭔가요?

왹비: "일을 하기 위해 들여야 되는 돈이 많거든요. 옷, 헤어, 메이크업, 출퇴근이 다 돈이 들어가고, 직업상 술을 마셔야 하다 보니까 건강이 나빠져서 돈 들고, 일하는 환경이 안 좋다 보니까 정신질환이나 성병을 얻게 되면 일을 쉬게 돼 돈을 못 벌어서 빚이 쌓이는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법적으로 합법인 유흥업소 아가씨임에도 불구하고, 제2금융권 대출조차 거절당했어요. 대출심사할 때 직업이 뭐냐고 해서 저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더니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3금융권에서 빌렸는데 이자가 높죠. 보통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직업 증빙이 어려워서 3금융권이나 일수로 빌리게 되고, 이자가 높으니까 빚의 늪에 빠지는 것 같아요."

- 성산업 종사자들의 존재가 여성인권을 저해하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자: "그런 게 페미니즘이라면 저는 페미니스트 하지 않을래요. 이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계선 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타인을 재단할 때, 그러면서 나쁜 말들을 뱉어낼 때 저는 너무 슬퍼요."

바다: "그 사람들은 이런 일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저희도 쉽게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여러분을 대변하는 정치를 상상해본 적 있나요?

바다: "일단 정치라는 게 거리가 많이 멀죠. 성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회와 단절된 채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보 자체를 얻거나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까 정치에도 관심 갖기가 어려운 거예요."

왹비: "정치가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다 보니까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권'이라는 말도 뭔지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요. 쉽게, 가장 낮은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정치가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 정치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나요?

바다: "이 일을 굳이 택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걸 그만둘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 여기서 인간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왹비: "그냥, 이 사람들이 강간당해도 되거나 죽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도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주홍빛연대 차차 간담회.
 주홍빛연대 차차 간담회.
ⓒ 강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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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지를 마련해주지 못한 사회의 책임

간담회 말미에, '혹시 정치권 뉴스 중에 쥴리 논란을 들어보셨나' 물어봤다. "이 사회가 성매매 여성에게 성매매 그만두라고 하면서, 막상 그만두면 다 뒤를 캐서 낙인찍고 '너 성매매한 여자잖아' 하면서 다른 일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엄청 화가 났다"라고도, "너무 익숙한 혐오라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라고도 했다.

2020년 7월, 경남의 한 모텔에서 성매매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했고, 결국 재판부는 가해자가 "건전한 사회공동체 일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감형을 해줬다. 지난해 5월엔 한 남성이 성매매 중 여성을 살해하고 단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의 살인범죄 대상은 모두 '노래방 도우미'였다. <한겨레21>이 분석한 2016년부터 2021년까지의 여성살해 500건 중 49건은 성매매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경찰이 단속을 빙자해 성매매 종사자를 성폭행하거나, 경찰을 사칭하고 단속을 하겠다는 협박으로 강간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2015년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단속을 할 것처럼 위협해 성폭행한 경찰은 단 징역 1년 6개월형을 받았고, 2019년에는 한 남성이 경찰을 사칭해 성매매 단속을 하겠다는 위협을 통해 성폭행을 하고 금품갈취 시도까지 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범죄 위협 앞에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존재를 불법으로 여기는 '제도'와 '낙인' 때문이다. 성산업에 종사하게 된 그들의 선택 뒤에는, 그들의 삶에 다른 선택지를 마련해주지 못했던 사회의 책임도 있다.

성산업 종사자들이 살해와 강간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합의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판매를 비범죄화해야 실태 파악도 가능하고 정책적 지원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다. 피의자로 취급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폭력을 겪은 성산업 피해자들이 경찰을 찾을 수 있다.

성산업에 얽힌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부정의의 문제를 모두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해와 강간을 당하고 있다면, 어제도 오늘도 벌어졌고 내일도 벌어질 일이란 걸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진보'라는 것의 의미를 약자 편에 서는 일이라고 이해하는 나의 생각이 옳다면, 이들의 어깨 위에 얹힌 낙인을 기꺼이 함께 감당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고백도.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민진씨는 청년정의당 대표입니다.


태그:#강민진, #성매매, #성산업, #여성,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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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진입니다. 현재는 청년정의당 대표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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