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50. 아름다운 숫자다. 100의 딱 중간이니 숫자의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아쉬울 것 없다. 숫자 '오(5)'와 알파벳 '오우(O)'의 조합이라 멋대로 생각하니 자동으로 '오~!' 감탄사가 나온다. 50이라는 숫자로 엉뚱한 생각에 빠지는 걸 보니 난 이 숫자가 상당히 맘에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숫자가 나이와 연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나, 100세까지 무탈한 삶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니다. 더욱이 생활고에, 건강을 잃은 노년이라면 100세는 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아름다운 숫자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 50이 되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지만 하늘의 뜻은커녕, 나 자신의 마음도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부캐를 과시하며 생의 이모작, 삼모작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삶이 너무 융통성이 없었나 싶어 위축되곤 한다.

'메타버스', '암호화폐(가상 화폐)', '자율 주행' 등 미래 사회를 그리는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급속히 학습 속도가 느려진 나는 용어들을 따라잡기도 버겁다. 천문학적인 부의 축적이 성공의 척도라며 너도나도 재산 증식 방식에 열을 내는 시대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인 나에게는 답답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출 수도 없거니와 그랬다가는 내 삶은 사라질 것 같았다. 나만의 속도로 나이 들어가고 싶었다.

나만의 속도로 늙어가고 싶어서
 
겨울 산 길. 산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2시간 30여 분은 오롯이,?홀로?나와?만나는 시간이었다.
 겨울 산 길. 산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2시간 30여 분은 오롯이,?홀로?나와?만나는 시간이었다.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성인이 된 후, 아홉수(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에는 마음이 소란스러워지곤 했다. 미혼인 상태로 맞이했던 29세가 그랬고, 본격적인 중년을 앞두었던 39세가 그랬다.

생의 전환기라는 나이를 앞둔 49세에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 준비 없이 생의 장년기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지키며 50 이후의 삶을 나만의 속도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두 가지 '속도 느린' 일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북한산 산행'이었다. 50 이후 상당한 기간 이어질 장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 그것은 장년기를 맞이하는 모든 이들의 소망일 것이다.

작년 8월부터 매주 일요일 아침, 북한산성 입구에서 출발하는 북한산 산행을 7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북한산성 입구까지 40여 분의 운전 시간과 산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2시간 30여 분은 오롯이, 홀로 나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습관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3개월이 넘어가니 몸에 밴 습관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을 움직이게 했다.

산행은 문을 열고 세상과 마주해야 얻어지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쨍한 새벽 공기, 앞사람이 밟고 간 눈길 위에 난 발자국, 천천히 산을 오르는 노년의 욕심 내지 않는 결기,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 차가운 얼음 사이로 흐르는 청명한 계곡의 물소리, 가끔 산행에 함께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과 시간, 사람들 속에서 마주하는 세상은 '실재적'이다. 메타버스에서 암호화폐로 살 수 없는 실재(實在)하는 세상은 주로 문 밖에 있었다.

두 번째는 '미술 레슨'이다. 매주 토요일 한 시간 반씩 성인 취미반 미술을 배운 지 3개월째.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운다고 유명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후손에게 길이 남길 명작을 그릴 리도 만무하다. 그래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 <내 사랑>(원제 Maudie, 2016)은 내 최애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샐리 호킨스가 열연한 '모드' 역의 실제 인물인 '모지스' 할머니를 알고부터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다.

모지스 할머니는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국의 국민화가가 되고 101세까지 1600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들 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이라니, 나이 탓하던 게으름이 무색해진다. 

그녀보다 25년이나 먼저 시작하니 국민화가는 못 되어도 언젠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날도 오겠지. 아직은 유화 물감 색 이름 익히기도 어렵고, 연필화를 배우며 한 시간 반 동안 선 긋기만 하다 보면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상태가 되곤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되면,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림을 그리고 소박한 이야기를 담아 그림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까마득한 꿈이지만 인생의 전환기에도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하다.

50이 되어서야 찾은 셀프 행복
 
'모지스' 할머니를 알고부터 늦은 나이에?그림을?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다.
 "모지스" 할머니를 알고부터 늦은 나이에?그림을?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날카로운 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은 <라이프 트렌드 2022>에서 2022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셀프 행복'을 소개한다. '셀프 행복'이란 스스로가 자기에게 행복을 부여하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더욱 각박해진 세상에서 믿을 게 자기밖에 없어져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청소년기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성인이 되어서는 자립을 위한 직업을 갖느라, 결혼 후엔 가족을 챙기느라 스스로 행복한 방법조차 모르고 살았다. 난 50이 되어서야 북한산을 오르고 그림을 시작하며 '셀프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라도 셀프 행복한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은 주변에 행복한 에너지를 나눠줄 '행복의 잉여분'이 있다고 믿는다. 50, 셀프 행복을 찾기 좋은 나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