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 이후 남남 케미스트리를 수려하게 보여주는 데 도가 튼 것 같다. 다시 한번 4년 만에 설경구와 호흡을 맞추며 멋스러운 영화를 만들었다. 차기작 <길복순>까지 예정되어 있어 두 사람이 합이 어디까지일까 궁금케 한다. 미묘한 브로맨스 분위기와 화려한 미장센이 긴장을 유발, 선거라는 숨 막히는 접전까지 더하니 이보다 쫄깃할 수 없다. '이쯤에서 뒤통수를 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배신하지 않는 게 이상한, 그래서 계속 불안감이 맴도는 느낌 말이다.
 
<불한당> 개봉 당시 변성현 감독은 선거 때문에 망했다고 SNS에 울분을 토했었다. 이번엔 오히려 선거를 이용한 마케팅을 적극 활용한 <킹메이커>를 선보였다. 사실 개봉일이 팬데믹으로 밀려서지만 어쨌거나 또다시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감독이 되건 사실이다.

명절에 맞춰 개봉했고 대선의 힘을 받는 유일한 상업 영화로서 롱런할 영화임은 틀림없다. 정치인을 소재로 했지만 매우 세련된 미장센으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정치 영화가 이렇게 스타일리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증뿐만 아닌 풍성한 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앞으로 있을 대통령 선거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두 남자의 서로 다른 방법론과 엇갈린 운명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는데 정치적 색깔이나 다른 의도 보다 어떤 리더를 뽑아야 할지 각기 다른 호소를 하는 듯 보였다.
 
정리하자면 한 공동체, 나라를 위한 리더의 자질과 그 뒤에 존재하는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故 김대중 대통령과 엄창록을 모티브로 했지만 엄연히 영화적인 상상 허구임을 강조했다. <남산의 부장들>과 접점이 있는데, 옳고 그름보다 생각의 차이를 들어보는 진검승부가 주된 이야기다. 세상은 이제 맞고 틀리다 보다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추세가 되었다. 명확한 차이, 선과 악의 대립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상황으로 관객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너무 센 빛에서 나온 짙은 그림자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는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전략가 서창대(이선균)와 모든 일엔 목적과 수단에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의 신념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순위를 가릴 수 없는 뫼비우스 띠 같다. 정치판에서 늘 존재하는 딜레마고 끝낼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빛은 그림자가 세질수록 짙어지게 마련이고 그림자는 빛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형상이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지만 모아질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항상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오로지 그 사람을 향했지만 안타깝게도 타버리고 말았다. 마치 "넌 나를 완성하게 만들어"라던 조커의 말처럼 가까이하고 싶으나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화려한 선거판 뒤에는 수많은 인물이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철저히 태양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존재와 치열한 선거판을 다루며 극적인 긴장감을 살린다. 특히 정치인 보다 빨갱이란 주홍글씨 때문에 악착같이 말투를 고치고 숨죽여 살아야 했던 시대에 희생된 불운한 사람. 머리는 있으나 마음이 없던 사람, 킹이 되고 싶었으나 킹메이커로 만족해야만 했던 사람을 파고든다. 두 사람이 함께여서 가능했던 승리 뒤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의 출발점, 한국 네거티브 공작의 역사도 있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킹메이커>가 던지는 질문은 현재 정치인, CEO, 대통령 등 공동체를 책임지는 리더의 자질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자유롭고 희생을 강요받지 않는 세상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새 지도자가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주제다.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이겨야 할까.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겨야만 할지, 신중히 고민하고 도전해야 하는 법일까. 서창대는 철저히 그림자였고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빨리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둠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은 빛은 존재 이유가 생긴다.
 
혹시 미래의 표심까지 내다 본다면 배우 박정민이 연출한 <언프레임드>의 <반장선거>를 참고하면 좋다. 어린이는 순수할거라는 선입견을 살짝 비틀어 놀라움을 안기는 작품이다. 어른들 못지 않은 교실 속 권모술수와 살기, 암투는 사회의 축소판을 그린 날 선 유머가 압권이다.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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