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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 김영현 선생이 81세 되던 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구열에 불타올라 우리의 고대사를 집필했다. 

소남 선생이 젊은 시절 완도에서 사회 계몽운동을 펼친 1920년대 우리나라 현실은 참혹하다 못해 비참한 일제강점기의 극에 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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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우리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서와 모든 유적을 파괴하고 있었다. 전 국토의 유적을 도굴하고 우리의 유산을 모조리 파헤치며 보물 같은 찬란한 것들을 모조리 강탈해 갔던 것.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각자들이 그랬듯이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소남 선생도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진한국마한사辰韓國馬韓史라는 고대사 연구목록이다.

소남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진(辰)은 동방을 뜻하며 한(韓)은 국가의 이름이니 진한은 아시아의 동쪽, 중국의 동쪽에 있는 한국이라는 의미이다. 마한은 진한국의 서부이고 서쪽에 있는 평평한 땅에 있는 개마국을 말한다. 

선생의 주장은 개마국은 고구려이니 고구려가 바로 마한이라는 것. 신라의 최치원이 기록한 그것처럼 소남선생도 마한을 고구려의 본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소남선생이 고구려를 마한이라고 보는 관점은 국내의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한을 경주, 마한을 금마저(전북 익산), 낙랑을 평양, 고구려를 압록강 상류로 보는 역사관과 서로 달라서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연구했던 것인데, 선생은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필에 나선 심경을 그의 저서에 밝히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 마한의 역사가 깨어난다
 
기리영과 인접한 임진강 유역의 육계토성. 마한 신분고국의 흔적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사진출처 : HD 역사스페셜 5회)
 기리영과 인접한 임진강 유역의 육계토성. 마한 신분고국의 흔적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사진출처 : HD 역사스페셜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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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1997년 임진강 일대에 대규모 토성이 발견됐다. 홍수로 인해 드러난 6개의 토성은 임진강을 해자로 삼고 성을 쌓아 올린 흔적이 분명했다. 3세기 이후 토성으로 학자들은 추정했다.

삼국지 마한조에 실린 마한 54국 중 6번째 나라인 신분고국으로 학계는 추정, 6개 토성 성벽의 높이는 2~3m이며, 전체 길이가 1.2km에 이르렀으며 성벽 북쪽은 임진강 건너 '기리영(신분고국)'을 향하고 있었다. 성의 내부에는 주거지가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흥미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각종 철기와 대형토기가 상당수 출토되었다. 

토기마다 팥과 조 같은 곡식이 저장된 흔적이 보였다. 이곳은 곡물 저장고로 군사 유적보다는 방어 인력이 주둔한 곳으로 학계는 추측했다. 

그리고 10개의 주거지 중 8개의 주거지에서 화재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갑옷조각과 각종 철제무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규모 전투 흔적으로 비쳤다. '마한의 강력한 소국인 신분고국이 대방군을 공격하자 대방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자 대방태수 궁준이 전사하였다'라는 기리영전투의 기록을 뒷받침해 주기에 충분한 발견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03년 화성시 기암리 유적 발굴 현장에서는 대규모 제련유적이 발굴됐다. 30만 평 넘는 유적지에는 직접 철을 생산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동안 마한지역은 변한과 진한에 비해 철기문화가 뒤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성 기암리 유적에서는 마한도 변한 못지않게 철기를 생산한 문화 강국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고대사회에서 철의 생산은 대단위 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자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대략 3세기 전후 마한의 세력도 대규모 철을 생산했다는 놀라운 발굴이었다. 

최근 금강 유역 중심으로 3세기 마한의 유적이 대거 발굴되고 있는데, 이 유적에서 공통으로 등장한 것이 이전에 비해 훨씬 크고 강력해진 철제무기이다. 

3세기 말부터 갑옷과 투구 등 철제무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철의 생산으로 삼한의 세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철제무기로 무장한 중심세력들이 주변 세력을 통합하면서 영역을 확장해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음을 많은 유적이 증명해 주고 역사의 기록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대규모 철기 생산이 이뤄진 3세기 이후 조선 대륙은 지축이 흔들리는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철기를 가진 강력한 세력들이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해 나가면서 명실상부한 고대국가로 틀을 마련해 나간 것. 변한의 소국들은 가야로 발전했고, 진한의 소국들은 신라에 병합했다. 

마한은 백제로 통합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후진 지역에서 철을 자원화하여 삼한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에 철을 다량 수출하여 부를 쌓고 보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내면서 큰 정치 세력들이 작은 정치 세력들을 통합하면서 4세기 초 조선 대륙은 고대국가 삼한에서 잉태했고 삼한의 철기문화 속에서 고대국가는 탄생하고 있었다. 

진한국마한사, 우리의 역사를 눈뜨게 하다

우리는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을 때 소남선생은 이곳 완도에서 고대 마한사를 연구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관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진한국마한사> 이 한 권의 책은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파격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관철한 선생의 연구는 과연 혼탁한 역사를 이끌어 온 이 세상을 다시 눈뜨게 할 것인가. 

지금 전남지역에서는 마한문화 연구가 활발하다. 마한 문화권과 탐라문화권 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나주시가 중심이 되어 전남 각 시군의 지자체가 마한유적과 관련한 지역 향토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마한 문화권을 포함한 6개 고대 역사문화권(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마한사 재조명을 위한 영산강 고대문화권 복원개발이 탄력을 받아왔다.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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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가 주측이 되어 마한사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마한사의 중요 거점은 그 틀을 형성한 것 같은데, 항·포구와 관련한 유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마한의 문명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서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 문물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는데, 그때 완도의 바다는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마한의 연구는 다시 완도의 바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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