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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누워 마음으로 유람하는 골짜기.승부역에서 걷다보면 분천역을 1.7키로미터 남겨두고 와유곡이 있다.
▲ 와유곡 가만히 누워 마음으로 유람하는 골짜기.승부역에서 걷다보면 분천역을 1.7키로미터 남겨두고 와유곡이 있다.
ⓒ 제천단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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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늘이 시작을 알린다. 플랫폼을 가득 채우는 찬바람과 함께 기차가 멈춘다.

"다음 도착지는 승부역, 승부역입니다."

오늘 내 발길이 닿을 곳은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이다. 낙동정맥트레일은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에서 부산광역시 다대포 몰운대에 이른다. 산줄기의 이름인 '낙동정맥'과 트레킹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지칭하는 '트레일(Trail)'이 합쳐진 말이다. 경북의 봉화에서 청도에 이르기까지 10개 시군의 낙동정맥 주변을 잇는 역사· 문화 자원을 연계한 숲길이다.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 승부역'

역 안내 표지판을 읽으며 세평의 의미가 궁금하다. 주변이 산으로 감싸 눈에 들어오는 하늘이 크지 않다는 것을 '세평(3坪) 하늘'로 표현했다. 세평 하늘은 아담한 하늘이구나! 긴장된 몸을 달래주기 위해 허리를 펴 하늘을 올려보니 세평의 하늘이 만석꾼 부럽지 않다. 높고 선명하다.

승부역을 나와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은 승부역에서 배바위 고개, 비동마을을 거쳐 분천역까지 9.9㎞ 코스다. 숲길 시작을 백호 조형물이 반긴다. 호랑이 기운을 받았으니 오늘 컨디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꽁꽁 언 계곡은 산골마을의 혹독한 겨울을 실감나게 한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마스크 안을 채우는 입김은 눈썹을 하얗게 서리로 만든다. 겨울이 한 발짝 물러섰다고 생각했는데 산골 오지 마을은 여전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어느새 산바람이 익숙해졌는지 종종 걸음도 성큼성큼 씩씩해진다. 산길 옆 계곡이 물줄기 그대로 얼어 꽃잎을 만들었다. 얼음 꽃밭이다. 적막하지만, 뽀드득 뽀드득 발소리가 친구다.
 
승부역에서 배바위고개를 오르는 길은 음지라서 얼음길, 눈길이다.
▲ 배바위고개 오르막길 승부역에서 배바위고개를 오르는 길은 음지라서 얼음길, 눈길이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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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아 언 길이 빙판이 되었다. 더군다나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준다. 숲길과 어울리는 통나무 다리를 건널 때면 뗏목을 타는 아이마냥 기분이 좋다. 배바위 고개 오르막은 추위를 잊게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계단에 다리 힘이 풀린다. 때마침 들려오는 새소리가 에너지를 주고 기분까지 좋게 한다. 

아빠 새가 엄격한지 새소리는 담장 밖을 넘지 않는다. 소곤소곤 작게 소리내지만 울림은 산속을 가득 채우는 깊이가 있다. 숨고르기가 필요할 때 배바위 고개에 도착했다. 배바위 고개는 1968년 11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우리 군경에 쫓겨 월북을 기도하던 일당들의 이동경로라고 한다.  

6.25 당시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는 이 산골마을이 무장공비 이동경로였다니.
비동마을로 향하는 길은 따뜻한 양지다. 쌓인 눈이 햇빛을 만나 반짝반짝 빛난다. 바람없는 양택에 자리를 펴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걷는다. 햇볕에 살짝 녹은 계곡 얼음 사이 틈으로 물소리가 들린다. '개울 속 물고기의 하늘도 세평일까?' 그렇다면 물고기도 만석꾼이 될 수 있겠구나!

'비동(肥洞)'은 옛날 화전민이 살던 곳이다. 땅이 기름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해가 잘 들어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집집마다 수문장이 있는데 본업에 얼마나 충실한지 낯선 사람을 보면 틈을 보이지 않고 짖어댄다. 충견임이 틀림없다. 마을을 벗어나자 탁 트인 낙동강이 흐른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걸으면 새소리, 기차소리가 들린다.
▲ 와우곡 송림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걸으면 새소리, 기차소리가 들린다.
ⓒ 제천단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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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지루한 아스팔트 길이지만 송림과 암반이 굽이굽이 펼쳐지는 절경이다. 낙동정맥트레일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다. 좁은 1차선 다리는 국민학교 때 우리동네 학교 가는 길 같다. 분천역이 가까워지자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산타 모형물이 들어온다.

한국, 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의 산물이다. 분천역의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단장했다. 역 주변은 산타 눈썰매장, 당나귀 꽃마차, 산타 우체국, 이글루 소원지 등으로 꾸몄다. 모든 길은 우리의 삶과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존재한다. 음지에 떨며 가다보면 어느새 양지가 찾아온다. 이렇게 걷다보면, 새로운 희망이 우리를 반겨주리라.
 
세평하늘길은 낙동정맥트레일과 일부 겹친다. 곳곳에 잘 정비된 표지판이 든든한 우군이다.
▲ 행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 세평하늘길은 낙동정맥트레일과 일부 겹친다. 곳곳에 잘 정비된 표지판이 든든한 우군이다.
ⓒ 제천단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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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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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지방신문에서 25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다짐합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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