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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병원생활 중에도 항상 공부를 하였고, 힘든 와중에도 밝게 웃던 은찬이.
 병원생활 중에도 항상 공부를 하였고, 힘든 와중에도 밝게 웃던 은찬이.
ⓒ 이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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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소아혈액종양내과나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많이 아파봐서 아픈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혈병이 세 번째 재발했던 2020년 2월,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열두 살 은찬이가 했던 말입니다.   

제 아들 은찬이는 2014년 여섯 살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6개월 표준항암치료를 마쳤지만 병은 재발하였고, 더 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았음에도 재작년 2월 또 다시 재발했습니다. 

뇌출혈, 패혈증 같은 응급상황으로 중환자실을 오가기도 했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며 생사를 오갔던 시간들까지 6년째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왔던 아이에게 '세 번째 재발'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텐데, 은찬이는 어른보다도 어른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그 와중에도 '나와 같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병상에서도 고3처럼 묵묵히 공부했습니다.

백혈병이 세 번째 재발한 당시 국내에는 아이를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긴 치료로 쇄약해진 은찬이의 몸은 풍전등화와도 같아 다시 이식을 받는 것도, 독한 항암치료를 계속 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해외에는 은찬이와 같은 아이들의 82%가 치료되는 '킴리아'라는 신약이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첨단재생바이오법 시행 전이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고,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여서 해외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은찬이는 국내에서 킴리아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되는 2020년 8월이면 방법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지만, 해가 바뀌어 2021년 3월이 되어서야 겨우 킴리아는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그마저도 바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첨단바이오신약인 킴리아를 사용할 수 있는 기반사항 등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았고, 약의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아 신약이 허가된 이후에도 아이는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지 모를 공무원과 전문가 분들이 책상 앞에서 약을 사용할 수 있는 사항들을 허가하고 약가를 정하느라 저울질을 할 동안, 우리 은찬이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완치를 꿈꾸던 아이
 
2021년 10월 1일. 또 다른 은찬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바람으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2021년 10월 1일. 또 다른 은찬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바람으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 이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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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기다리던 1년 4개월 동안, 제 발로 걷던 아이는 휠체어 신세를 지다가 결국엔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는 몸이 되었고, 뇌로 전이되어 잘 보이던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면서 그 좋아하던 공부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처참한 모습이 될 때까지 여러 병원의 수많은 의료진들이 아이에게 매달려 킴리아를 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게 해보려고 노력했고 아이 역시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저는 끝까지 해볼 거예요."

저에게 분명히 말했던 은찬이는 결국 긴 시간을 버티고 버티다가 약을 만들기 위한 세포채집을 몇 시간 남겨두고 의식을 잃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을 팔아서라도 킴리아를 꼭 쓸 수 있게 해줄게. 조금만 더 버텨줘." 

은찬이와 이렇게 약속하고 집까지 팔아 약값을 준비했지만, 아이와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엄마 생일이면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고 생일 노래를 불러주던 아들이 이제 없어서 생일이면 아들의 지난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곤 합니다.

"건강한 나무처럼 건강하게 나아서 제가 완치되는 날 환하게 웃으세요. 엄마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이 세상에 좋은 것 모두 드릴게요. 엄마 사랑해요."

비용과 절차보다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생명이 우선

은찬이를 살릴 수 있었던 약값은 4억 6천만 원입니다. 지금은 이 비용을 지불하면 약을 사용할 수 있어 그나마 형편이 되는 가정에서는 집을 팔거나 조부모의 집까지 팔아서라도 비용을 마련하지만, 그나마도 준비하기 어려운 가정이 더 많습니다. 그런 가정의 부모들은 그저 빨리 건강보험 적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병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급성백혈병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6개월을 견디기 힘들다보니 건강보험 급여화가 되기를 기다리던 여러 아이들이 별이 되거나 다른 병으로 전이가 되어 킴리아를 쓸 수조차 없는 상황에 놓이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식방에서 이식을 기다리며 엄마와 함께...
 이식방에서 이식을 기다리며 엄마와 함께...
ⓒ 이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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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에 빨리 건강보험 적용을 해달라고 건의하면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죽어갑니다.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이 절차를 거쳐 논의에 논의를 거듭할 동안을 아이들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병을 고칠 약이 있다는 희망이 '비용' 때문에, '절차' 때문에 좌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킴리아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킴리아와 같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신약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약을 기다리다가, 긴긴 절차를 기다리다가 잘못되어 남은 가족마저 평생 아픔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는 이들이 없어야 합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수많은 허가와 절차들 때문에 은찬이처럼 약을 기다리다가 죽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특히 효과가 분명하고 대체제가 없는 생명과 직결된 신약만큼은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해 환자의 생명을 먼저 살려 놓고, 비용 관련 부분은 건강보험 급여화 절차를 최종 완료한 후에 '사후 정산'하는 제도를 꼭 만들어주세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 1월 5일 은찬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해서는 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동시에 심사·결정을 하여 식약처 허가 후 신약이 시판되는 즉시 해당 환자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임시적인 약값으로 우선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 건강보험에 신속하게 등재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생명이 가장 소중합니다.
생명을 먼저 살린 후 논의해 주세요.
 
▲ 재작년 생일에 은찬이가 불러주었던 축하곡이 마지막 노래가 되었습니다.
ⓒ 이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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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킴리아, #은찬이, #약제, #신약,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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