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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꽤 오래전인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만둘 때 즈음엔 정말 하기 싫어서 몸이 배배 꼬일 정도였다.

그 당시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가요나 팝송 악보로 그나마 나를 피아노 앞에 앉히는 데는 성공하셨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다. 재미없는 교본 곡을 하나 치고 나면, 남은 시간은 가요나 팝송을 치면서 체르니 100번을 겨우겨우 마쳤다. 체르니 30번을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중학교 진학을 핑계로 그만두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악기 하나 정도는 제대로 배워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회인 동호회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친구도 부러웠고, 대학 관현악 동아리에서 첼로를 배운 후배도 부러웠다. 그런 부러움들이 쌓여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첼로 배우기와 드럼 배우기가 늘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나와 달리, 남편은 이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사실 나는 남편이 기타를 배웠으면 했는데(기타 치는 오빠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왜 피아노냐고 물었더니 "그냥 악기 하나 쯤 배웠으면 좋겠고, 피아노가 악기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해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신혼 초 그런 남편에게 성인용 피아노 교본을 사줬는데, 남편은 몇 번 시도해 보다 말았다. 나도 남편을 딱히 가르칠 만한 입장은 안 되어서 그대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남편은 이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남편은 이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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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생긴 일

그런 뒤 아이를 낳고 나서 어느 날인가, 남편이 나중에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 본인도 같이 배우겠다고 했다. 또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건 부수적인 이유였고, 본인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악기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음악과 악기를 가까이 했으면 하는 마음에 제일 처음 데려간 문화센터 강좌가 음악 수업이었다. 아이가 5살 때 입으로 부는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멜로디언을 사주었고, 내가 가끔 쳐 볼 요량으로 샀다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아주 저렴한 전자 건반을 놀잇감으로 꺼내주기도 했다.

'학교 종'이나 '나비야' 같은 동요들을 쳐주기도 하고, 아이가 쳐보고 싶다고 해서 색테이프를 건반에 붙이고 스케치북에 색깔 동그라미 악보를 그려서 가르쳐주면 곧잘 따라하기도 했다.
 
아이는 음악과 악기를 가까이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접 가르친 피아노.
 아이는 음악과 악기를 가까이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접 가르친 피아노.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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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조금씩 피아노를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학원보다는 집으로 오시는 방문 선생님을 알아봤다. 그렇게 아이는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 아빠도 함께 레슨을 받을 수 있는지 여쭤 봤더니 가능하다고 하셔서 피아노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 오시게 되었다. 집에 있던 저렴한 전자 건반은 레슨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아, 적당한 가격의 새하얀 디지털 피아노도 집에 들였다. 아이와 남편이 피아노 배우는 모습을 보니 왠지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첼로와 드럼은 어디에 가서 배울 것인지부터가 왠지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피아노는 이미 아는 악기라서 만만했다.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나도 성인용 교재를 하나 추천 받아 혼자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각 잡고 앉아서 치려니 오른손 왼손이 어찌나 따로 노는지, 낮은 음자리표 악보는 왜 이렇게 헷갈리는지.

겨우 다장조의 쉬운 뉴에이지 피아노 곡이었지만 어린 시절로 타임슬립해서 오선지 칸을 세어 가며 '도미솔시' 하며 읽고 있는데 이젠 눈마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침침한 눈으로 악보에 얼굴을 들이밀고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했다. 그래도 그 낯설음과 삐걱댐이 싫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 내 머릿속에 떠올리는 해야 할 일은 아이 저녁 챙기기, 설거지, 빨래정도 였는데 요즘은 피아노 연습이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 오른손, 왼손을 따로 연습하고, 두 손을 합치는 연습을 해보았다.

뚝뚝 끊기던 음악이 제 모습을 갖추어 나가면서 어느 정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연주하게 되자 묘한 희열을 느꼈다.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설렘과 내 손으로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틈 날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았더니, 정작 돈을 내고 레슨을 받는 아이나 남편보다 내가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더 길었다.

주말에만 피아노 연습이 가능한 남편이 연습량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며 격주로 레슨을 받았으면 하는 기색을 비쳤다. 나는 짐짓 무심한 척, "그럼 이미 돈을 내놨으니 나머지 주에는 내가 레슨을 받을까?"라고 했더니 남편이 좋은 생각이라고 한다. 

이게 뭐라고... 생활의 활력이 됩니다

우리 집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 만큼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을 사수하느라 눈치 싸움도 늘었다.  

"엄마, 나도 피아노 연습할래!"
"엄마 이 곡만 치고..."
"알았어. 그럼 그 곡만 치고 이제 내 차례다~~?"


그렇게 오늘도 나의 피아노 연습 시간을 아이에게 양보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의 경우 실로 오랜만에 학생 신분이 되는 기분도 맛 본다. 선생님 앞에 앉으면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린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면 손보다 마음이 앞선다.

그럴 땐 연습할 때는 매끄럽게 잘 치던 곡도 여지없이 실수를 하게 된다. 다시 마음을 편하게 먹고, 허리 펴고 등을 꼿꼿이 세운 자세로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연습한 것을 차근차근 풀어내 본다.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륵 녹고, 고쳐 주시는 부분은 더 열심히 들으며 머리에 새긴다.

이런 탓에 주말이면 우리집엔 피아노 소리가 늘 함께 한다. 아이에게 피아노 연습했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남편이나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으면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다음 차례를 기다리니까. 우리 부부의 연습 시간을 방해하긴 하지만,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을 하니 남편의 '좋은 자극 주기' 미션은 일단 성공인 것 같다.

온 가족이 함께 시작한 이 즐거운 취미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다. 누가 먼저 연습을 할지 티격태격 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서재방에 들인 피아노 덕분에 적막하던 서재에 생기가 도는 것 또한 기분이 좋다.

장기화 된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와 함께 할 취미 생활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먼지 쌓인 피아노가 있는 집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날씨는 겨울이어도 설레는 마음만큼은 금세 봄처럼 따뜻해질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지영 시민기자의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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