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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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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로 정식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각의를 열어 2023년 세계유산 등록을 목표로 사도광산을 추천하는 안을 승인했다.

사도광산은 1600년대 에도시대부터 금 생산지로 유명한 광산 중 하나로, 일본의 자랑거리에 속한다. 일본이 자가의 문화유산을 세계 문화유산 등록 추진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동원 돼 목숨을 잃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사도광산, 일본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 http://omn.kr/1x6r4 ).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문제 어떻게 봐야 할지 조언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과 전화로 연결했다. 다음은 정 대표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 문화유산 등재를 역사 왜곡의 장으로 삼는 듯"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 정혜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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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조선인이 끌려가서 목숨을 잃었던 사도광산을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하기로 결정했는데 어떻게 보세요?
"저는 이걸 단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단일한 사안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 2015년에도 메이지 산업 유산을 등재할 때 시작된 사안이라고 보는데요.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걸 가지고 역사 왜곡의 하나의 장으로 삼는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 90년대는 (일본이) 역사 교과서로 역사를 왜곡했잖아요. 그건 일본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거죠. 근데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게 세계 시민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역사 왜곡의 장을 넓혀서 여기서 유네스코 등재가 되면 교과서에도 반영할 수 있으니, 굉장히 효과적인 역사 왜곡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리하게 사도광산을 등재하기로 추천한 것 같고요. 또 사도광산 자체가 이 사람들한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거든요. 만약에 사도광산 등재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걸 또 내세우든지 또는 '한국에 이렇게 방해를 해서 못했다'란 식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든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역사 왜곡 한다는 것을 우리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일본은 왜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걸까요?
"일본이 식민지와 침략 전쟁의 역사에서 스스로 극복하는 역량이 없다고 봐요. 그걸 극복하려면 자신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진상파악하고 그걸 가지고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다시는 재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1945년 8월에 항복함과 동시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어요. 예전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역사 자체를 묶어버리는 그 단계부터 시작해서 봉인 왜곡 미화 단계로 나갔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본인들 스스로 돌아오기가 힘들 거예요."

- 사도광산은 약간 생소한 느낌도 있거든요. 어떤 곳인가요?
"사도광산은 1460년에 처음 금을 채취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때는 금이 가루로 된 사금이에요. 그러다가 1542년에 처음으로 은광맥을 발견 하게 돼요. 그리고 1601년에 금광의 금맥이 발견되어서 금광산이 됩니다. 그래서 쭉 에도막부에서 은행으로 막부의 은행으로 사용한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긴자나 킨자 이런 게 있었는데 그게 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거고요. 그 이후에는 1868년에는 이제 메이지 정부에서 이거를 인수를 해서 쭉 자기네 소유로 갖고 있다가 1896년에 이제 미쓰비시 합자 회사가 인수를 해요. 지금까지 이제 미쓰비시 그룹의 소속이고요. 1989년까지 광석을 채굴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러니까 지금 그리고 현재도 미쓰비시 그룹의 소속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사도 강사는 주식회사 골드 사도라는 곳이 갖고 있거든요.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미쓰비시 그룹의 소속입니다."

-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강제징용 되었다던데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된 자료가 있나요?
"지금 일본에서 일본 미쓰비시 광업이 직접 작성한 자료가 있거든요. 거기에 의하면 지금 1945년까지 조선인 1519명을 동원한 걸로 나와 있어요."

- 지금 사도광산 가보면 강제징용 흔적이 있나요?
"강제동원 흔적은 있죠. 갱이 있고요. 그다음에 숙소가 있었던 자리도 있고요. 그다음에 식당 자리 같은 데도 있고요. 조선인이 동원됐었던 갱을 지금 등재하겠다는 거예요."

- 그 흔적이 남아있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더라도 관광객이 와서 볼 테니 강제징용됐던 알려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흔적에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었다고 안 쓰면 오는 사람들이 모르죠. 지금 군함도가 그러지 않습니까. 흔적이 있으면 뭐 합니까. 흔적에다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되는데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오는 사람인지 모르죠."

- 정부에서는 '사도광산 민관합동 TF'를 구성해서 막는다는 것 같은데 이같은 대응은 어떻게 보세요?
"현재 사도광산 단일한 사안에 대해서 대응을 하고 있는데요. 그 방향에 대해서 그래도 굉장히 전방위적인 대응을 하고 있고,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광산의 유산 등재 가능성? 일본의 외교전... 예측 어려워"

- 현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어느 정도로 보세요?
"지금 그걸 예측하기가 상당히 힘든 게 등재를 하려면 두 가지 단계를 거치거든요. 하나는 이코모스라고 전문가 그룹이죠. 여기에서 조사해 의견서 내는 게 있어요. 그게 내년 5월까지 제출합니다. 거기서 등재를 권고하기도 하고 아니면 반려를 권고하기도 하고 아니면 탈락 의견을 낼 수가 있어요. 근데 그건 의견에 불과한 거고 그 의견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아니에요. 

또 여기서 등재가 안 된다고 평가 한다 하더라도, 내년 7월에 열리는 WHC(세계유산위원회)에 일본이 외교전을 펼쳐서 결과를 뒤집을 수가 있어요. 21개국 나라가 위원국인데 한국은 올해 위원국이 아니에요. 그러나 일본은 위원국이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유리하다고 볼 수 없어요. 그래서 내년 7월까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추천 방침 발표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추천 방침 발표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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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들하고 같이 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던데 어떻게 보세요?
"그걸 제가 계속 제안을 하는 사안인데요. 뭐냐 하면 일본에서 원하는 것은 한일 관계로 국한하는 거예요. 예전에 군함도 때도 연합군 포로와 중국 포로가 있었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한 건 잘못했지만 한국인에게 한 건 식민지였기 때문에 차별이 없었다.'란 주장을 지금까지 하거든요. 하지만 사도광산은 연합군 포로도 중국 포로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완전히 한일 간의 문제로 국한시켜 '한국은 콤플렉스가 있어서 저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몰아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유럽 국가라든가 아니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많은 국가에 있는 연구자나 전문가들하고 같이 연대를 해야 된다고 봐요. 2014년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미 한 적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봅니다. 당시에 전쟁과 관련되었었던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국가들 그리고 또 전쟁에 참전 또는 포로가 있었던 호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가 있어요. 그런 학자들이 모여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역사적 교훈을 우리가 축적하는 국제 네트워크를 시급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 그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지금 바로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국회에 발의가 되어 있는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어서 박근혜 대통령 때 없앤 정부기관이 있어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인데요. 그게 강제 동원의 진상을 규명하는 유일한 정부 기관이었어요. 그것을 빨리 문을 열어서 피해 조사도 하고 전체적으로 강제동원에 대한 역사를 조사해서 사도광산 이후에 계속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도 대응해야 됩니다."

- 아마 한일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아닐까 싶은데요.
"위원회 존속 동안에는 한일관계가 나쁘지 않았는데, 문 닫은 다음에 한일관계가 이렇게 겁니다. 결국, 한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진상규명 기관이 필요합니다. 이게 있어야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한국 내에서 피해 국기 진상 규명도 안 하면서 무슨 남의 나라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냐고 일본에서 얘기할 거 아닙니까. 한일 관계가 나빠졌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한일 관계를 좋아지게 하려면 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 해야 되는 거죠.

-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지에 관심을 가지시는 일이죠. 거기서부터 출발을 해야된다고 봅니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도 강제 동원이 뭔지 잘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이영훈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 책을 내면 20만 명이 넘게 책을 사는 거거든요. 만약 정확히 내용을 아신다면 사겠습니까?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지 관심을 갖는 건 어느 국민이나 다 할 수 있잖아요."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남긴다면요.
"강제동원 문제는 76년 전에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는데, 현재 진행형이자 우리의 미래의 발목을 잡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문제를 외면하기보다는 우리 문제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가 얼마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고에서도 많이 느끼는 거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피해자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동일한 사건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강제동원 피해도 마찬가지고요.

세월호 사건으로 예를 들어보면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진상을 알아야 돼요. 두 번째 단계는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또는 가족들이 너무나 힘들겠고 안타깝다는 공감대를 가져야 됩니다. 세 번째 단계가 이런 일이 다시는 안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로 지혜를 모을 수가 있어요.

일제 피해자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그 단계를 거쳐야 되는데 우리는 76년 동안 그 단계를 못 거쳤어요. 그러니까 동일한 사안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어두웠던 역사니까 우리는 볼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됩니다.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가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세계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WBC 복지TV 전북방송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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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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