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들은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7년 11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재계서열 30위 안에 있는 대기업 중 11개 기업이 부도처리됐고 원-달러 환률이 2000원에 육박하면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진 것이다.

IMF 금융위기는 국가적으로도 큰 위기였지만 각 가정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회사가 부도나면서 하루 아침에 실직하는 가장들이 늘어났고 청년들은 엄청난 취업난에 시달렸다. 가족들에게 미처 실직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매일 아침 오락실로 출근하는 웃픈 가장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한스밴드의 <오락실>)가 발매됐고 2018년에는 IMF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국가부도의 날>)도 개봉했다.

오는 12일에 첫 방송되는 tvN의 새 주말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IMF금융위기로 인해 주인공의 펜싱팀이 해체되는 이야기가 그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꿈도 돈도 심지어 가족마저 빼앗겨 버리는 우울한 시대에도 청춘들은 언제나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동경하는 '청춘'을 출연하는 작품마다 기대 이상의 연기로 캐릭터를 120% 살려내는 배우 김태리가 연기할 예정이다.

<아가씨>로 세상 놀라게 한 '괴물신인'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통해 관객들에게 '괴물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통해 관객들에게 '괴물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 CJENM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재학시절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연기의 매력에 빠지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김태리는 극단에 들어가 막내로 지내면서 연기와 무대를 배웠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김태리는 연극과 단편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다가 한 영화의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다. <올드보이>와 <박쥐>로 두 번이나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였다.

사실 김태리 같은 신인배우가 박찬욱 감독처럼 명성이 높은 감독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면 단숨에 대중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가씨>의 오디션 공고에는 '최고수위노출,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능'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김태리는 다시 없을 기회에 용기를 가졌고 무려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숙희 역에 캐스팅됐다(박찬욱 감독은 오디션 5분 만에 김태리의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한다).

2016년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된 <아가씨>는 동성애 코드와 김민희의 분륜 논란 등으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전국 428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여기에 박찬욱 감독의 명성 덕분에 176개국에 선판매됐고 북미에서도 200만 달러가 넘는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아가씨>는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과 함께 영국 아카데미를 비롯해 해외의 26개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아가씨>의 최대수확은 역시 상업영화 데뷔작을 치른 신인배우 김태리의 발굴이었다. 김태리는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하녀로 접근하는 소매치기 숙희를 연기하며 때로는 어수룩하고 때로는 대범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아가씨>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조진웅은 김태리가 대한민국 여성배우의 계보를 잇게 될 것이라며 박찬욱 감독이 발굴한 '괴물신인'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김태리는 <아가씨>를 통해 '인생역전'을 이뤄냈다. 김태리는 <아가씨>로 청룡영화제와 부일영화상, 디렉티스 컷 시상식 등 6개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2017년 1월에는 연극배우 시절에 찍었던 독립영화 <문영>이 극장개봉을 하는 경사(?)도 있었다. 비록 흥행이라 부를 만큼의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많은 독립영화들이 극장에 걸려 보지 못하고 잊히는 점을 고려하면 <문영>은 '김태리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시대에 꿈을 빼앗긴 펜싱 국가대표 연기
 
 김태리는 런닝타임 내내 먹방만 하는 <리틀 포레스트>로도 전국 150만 관객을 동원했다.

김태리는 런닝타임 내내 먹방만 하는 <리틀 포레스트>로도 전국 150만 관객을 동원했다.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아가씨>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김태리는 차기작으로 장준환 감독의 < 1987 >을 선택했다. < 1987 >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한병용의 조카 연희 역을 맡은 김태리는 1987년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의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하는 인물을 잘 표현했다. 2018년 2월에는 1년 동안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찍었던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채식먹방'의 매력을 전파하기도 했다.

2016년 <안투라지> 특별출연을 제외하면 드라마 출연이 없었던 김태리는 2018년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을 첫 드라마로 선택했다. 20년에 달하는 이병헌과의 나이 차이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김태리는 양가집 규수에서 의병으로 변신하는 고애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태리는 <아가씨>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4편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김태리는 일약 스타배우로 급부상했다.

작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에서 승리호를 진두지휘하는 장선장을 연기한 김태리는 오는 12일 첫 방송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미스터 션샤인> 이후 약 3년 5개월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펜신신동으로 8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지만 IMF로 팀의 해체를 경험하는 나희도를 연기한다. 김태리는 극 중에서 18세부터 41세까지 23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김태리 외에도 남주혁이 IMF 금융 위기로 집안이 초토화된 스포츠 기자 백이진을 연기한다. 걸그룹 우주소녀의 보나로 더 유명한 김지연은 언론이 만든 나희도의 라이벌이자 최연소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유림 역을 맡았다. 이 밖에도 <모범택시>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를 연기했던 최현욱이 개성과 스타일이 남다른 태양고의 인플루언서 문지웅을, 김혜은이 스포츠스타 출신의 펜싱 코치 양찬미를 연기한다.

1990년생 김태리는 상대역으로 나오는 1994년생 남주혁보다 4살 연상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반대로 나희도가 백이진보다 4살 어리게 나온다. 길어지는 후반작업과 코로나19 등 변수들로 인해 드라마가 먼저 방영되지만 김태리는 이미 작년 4월 최동훈 감독의 신작영화 <외계+인>의 촬영을 마쳤다. 경력에 비해 작품 고르는 눈이 뛰어나 좀처럼 실패작이 없는 김태리는 자신의 첫 청춘로맨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김태리(왼쪽)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벼운 느낌의 청춘드라마에 출연한다.

김태리(왼쪽)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벼운 느낌의 청춘드라마에 출연한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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