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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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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을 모두 이룰 마술 지팡이?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케인스가 호출되었듯, 기후위기는 다시 케인스를 불러내고 있다. 바로 그린 뉴딜(녹색성장, 기후케인스주의)이다. 문재인 정부도 막대한 재원을 들여 한국판 뉴딜을 통해 거대한 전환을 이룩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노동자 임금인상,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과세, 독점 금지 강화 등의 개혁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통제하면 경제 성장이 회복되고 모두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케인스주의적인 그린뉴딜이나 자본주의 개혁으로 자본주의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사이토 고헤이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그린뉴딜은 현실도피에 불과하고, 신자유주의를 개혁해 '올바른 자본주의'로 만들자는 주장은 '공상주의'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이윤을 늘리기 위해 수단을 불문하고 경제성장을 결코 멈추지 못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연과 에너지 및 노동력을 수탈하고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린뉴딜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은 그대로 둔 채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니 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동경하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자본주의의 황금기야말로 오히려 예외적인 '짝퉁 자본주의'이고, 현재의 자본주의가 실은 '진짜 자본주의'이기에 그가 주장하는 '개혁'과 자본주의 유지는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원을 꿈꾸었고, 자본주의를 신뢰한 낙관론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케인스주의로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기에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다만 그린뉴딜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모든 버전의 그린뉴딜에 대해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버니 샌더스가 주창하고 오카시오코르테즈도 제안한 그린뉴딜은 기술 중심적·시장주의적 접근을 하지 않고, '경제성장'과 'GDP'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후위기를 "기후정책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종적·경제적 정의를 진전시킴으로써 역사적 부정의와 불공정을 근절하는 기회"라는 점을 역설한다.

또 노동자, 유색인종, 원주민 등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참여, 풀뿌리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압박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착취적인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로부터 탈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전환기적 전략으로서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김상현, 그린뉴딜 다시 쓰기 – 녹색성장을 넘어, 창작과 비평 2020 봄 통권 187호 참조 https://magazine.changbi.com/q_posts/109384/?board_id=2943). 따라서 '강한' 버전의 그린뉴딜은 대안적인 '성장' 정책이 아니라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 '탈성장 코뮤니즘'의 가능성

(약한) 그린뉴딜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 없다면 대안은? 경제 규모 축소(scale down)와 속도 둔화(slow down), 즉 탈성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사상적 근거로 만년의 마르크스를 불러낸다.

아니 마르크스라니? '생산력을 키워 기술을 발전시키면 무한한 부(富)를 소비할 수 있다'는 식의 '생산력 지상주의'와 유럽중심주의적 진보사관에 갇혀있다고 비판받는 마르크스가 아닌가. 즉, 자연을 합리적으로 지배해 끝없는 진보와 번영을 누릴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미발간 연구 노트까지 포함한 '마르크스 앵겔스 전집(MEGA)'을 연구한 지은이는 마르크스가 만년에 생태주의와 촌락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산력 지상주의와 유럽중심주의와 결별했을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며 궁극적으로 도달하려 한 지향점이 '탈성장 코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와 관련한 중요한 에피소드가 있다. 베라 자술리치 같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말년의 마르크스에게 촌락 공동체에 희망을 거는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인민주의자를 비판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뜻밖에도 체르니셰프스키는 훌륭한 사상가며 그의 생각에 자신도 동의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이 편지는 감춰졌고 망각되었다(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 /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 / 홍기빈 옮김 참조).

그러면서 저자는 '풍요를 낳은 자본주의'와 '결핍의 사회주의'라는 세간의 통념을 뒤집고 자본주의야말로 결핍을 낳고 코뮤니즘이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와 결별한 '근본적' 풍요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해도 열리지 않는 취업문과 치솟는 집값에 좌절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코뮤니즘의 '근본적 풍요'란 주어진 부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어디서 그런 사례를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기후 변화를 매개로 수많은 운동들이 연대해 경제·문화·사회를 아우르는 커다란 시스템의 변혁을 추구하는, '두려움을 모르는 도시' 바르셀로나의 기후비상사태선언과, 사파티스타, 비아 캄페시나, 남아공의 "we can't breathe!"처럼, 제국주의의 역사를 반성하고 자본주의의 부정적 유산과 결별하자는 글로벌 사우스의 운동을 소개하면서 그 가르침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자본주의가 낳은 '인공적 희소성'을 커먼의 '근본적 풍요'로 바꾸자고 한다.

가능할까? 저자는 '3.5퍼센트'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고일어나 진심으로 저항하면 반드시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가의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기후변화에 관심 있고 열심히 참여할 3.5퍼센트의 사람은 어떻게든 모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새로운 상상력과 간절함으로
 
‘전 지구적 기후행동의 날’인 지난 2020년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 지구적 기후행동의 날’인 지난 2020년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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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지 않다.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썼고 주장도 간명하다. 그럼에도 '그게 가능할까? 그렇게 쉬울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지금과 다른 세상, 자본주의가 아닌 문명을 생각할 수 없는 상상력의 빈곤 탓에 생기는 것 아닐까.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어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우리를 지배해 온 자본주의의 역사는 짧고 자본주의 이전이 결코 미개와 야만, 빈곤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근대화를 위해 우리가 잃어버린, 공생공락의 소박하고 자족적인 민중 공동체의 마르크스식 버전이 바로 탈성장 코뮤니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탈성장 코뮤니즘은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일본에서 학술상을 받은 것은 물론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력 정치인도 인용할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 중에 자본주의를 발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탈성장을 주창하는 사람은 없다. 곧바로 색깔론 공격과 함께 경제를 포기하는 공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성장하지 않는 경제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맞아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고 자연을 파괴해 좋은 삶의 조건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이 가능한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에 달려있지 않을까.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소수의 부가 아니라 모두의 공존을, 경쟁과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를, 이윤이 아닌 소박한 필요 충족의 삶을 꿈꾸는가? 이 책은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이론적 근거가 되어 줄 것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다다서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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