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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저는 미류책방의 대표 '미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슨 아이돌 소개 같지만 실제로는 나이 50 넘어 30년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창업까지 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 무모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제 출퇴근 하는 일은 그만 할란다" 했는데

2021년 6월 30일, 회사를 그만두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제 출퇴근하는 일은 그만 할란다. 돈 때문에 머리 숙이는 일도 이제 그만~."

퇴사 후 두 달쯤 됐을 때 후배 류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류와는 둘 다 첫 직장에서 만나,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선후배 사이입니다. 류가 밥을 먹다 말고 자꾸 꼬드깁니다.

"선배, 우리 출판사 해요."

내 사업을 한번 해보자, 는 생각을 직장 다니는 동안 안 했던 건 아닙니다. 상사가 쫄 때, 후배가 치받을 때, 하기 싫은 책을 위에서 내리꽂을 때, 야근할 때, 책이 대박 났는데 내 손에 들어오는 건 없을 때, 비가 올 때, 바람 불 때 등등.

하지만 그건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 나오는, 외사촌이 끼고 다니는 백로 화보집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라 쓰고, 공장 다니러) 가는 기차 안에서 열아홉 살 외사촌은 열여섯 살 주인공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난 사진작가가 될 거야." 그러면서 하얀 백로가 가득한 사진 화보집을 보여줍니다. 마치 아득한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백로들의 사진을. 제게 창업의 꿈은 그저 그 백로 화보집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뭐죠? 사진 속 백로가 갑자기 제 눈 앞에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겁니다. 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며 나도 모르게 내 입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어어, 그… 그래……."

막상 출판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출판사 이름을 미류책방으로(미미와 류의 2인 출판사이기 때문에) 짓고, 로고를 만들고, '경험이 미래에게'라는 슬로건도 정하고, 마포에 사무실을 구하고, 심지어 '인알못(스타그램을 잘 모르는 사람)'이던 제가 책방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출판사 차리고 다시 만난 103세 작가 
 
103세 철학자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질문 31가지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글이다.
▲ 미류책방의 첫 책 <김형석의 인생문답> 103세 철학자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질문 31가지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글이다.
ⓒ 미류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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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출판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김형석 교수님의 영향도 컸습니다. 2021년 늦여름 어느 날, 퇴직 인사를 드리러 류와 함께 교수님을 찾아뵈었을 때 일입니다.

교수님은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1년에 200회 가까운 강연과 방송 출연, 칼럼 집필 등으로 아이돌 뺨치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워낙 바쁜 일정이다 보니 곁에서 도와주는 분도 있습니다. 일정 관리하고, 육필로 쓴 원고를 컴퓨터로 옮기고, 춘천이고 광주고 몇 시간씩 운전도 도와주십니다. 이분의 나이는 78세입니다.

그런데 저희들 퇴사 소식을 접하고 이 두 분이 너무 안타까워 하시는 거예요. 안타까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표정까지 어두워지며 저희 둘을 걱정해 주셨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일을 잃어서 어떡하느냐"고요.

이들 두 분이 볼 때는 50이 넘은 저도 그냥 "응애" 수준인가 봅니다. 여전히 현역으로 뛰며 일을 사랑하는 103세 철학자와 78세 비서 할머니를 보며 저도 제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 좋은 나이"라고 해주시는 제 나이에 대해서도요.

우여곡절과 좌충우돌을 거쳐 미류책방은 2021년 10월 15일 첫 발을 뗐습니다. 제일 먼저 교수님께 알렸습니다. 두 분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요. 기뻐하실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아해 주셔서 보는 저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젊은(!) 두 친구가 창업을 한다니 두 분이 뭐 도와줄 건 없나 또 노심초사하세요. "첫 책은 교수님과 하고 싶어요"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두 말도 안 하고 오케이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2022년 2월 3일자로 첫 책 <김형석의 인생문답>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말씀드렸듯 103세 철학자로 유명한 김형석 교수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질문 31가지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글입니다. 20~60대 일반인 100명에게 궁금한 점을 받아 공통된 질문 31가지를 추리고 김형석 교수의 답변을 녹취해 육성을 최대한 살려 기록했습니다.

인생 앞에서 막막할 때 떠올릴 '사랑'

서울 연희동 교수님 댁 2층 햇살 따뜻한 거실에서 진행된 문답은 잠시나마 현실의 시공간을 잊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세기를 살아온 분과 함께 삶과 죽음, 성공과 행복, 운명, 종교, 과학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시간은 그 자체로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은 왜 하나요?" "돈은 얼마큼 있어야 행복한가요?" "죽음의 의미는?" "다 잃고 나서도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과 자녀 교육법, 부부 관계를 좋게 하는 비결까지. 질문은 언뜻 쉽고 간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의 무수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살아보니까 알게 되는 것일까요? 노철학자는 스스로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깨달은 삶의 비밀들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생 후배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교수님이 어떤 정답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살아봤더니 이렇던데, 여러분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요?"라고 다정한 어투로 권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교수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어렸을 때 내가 우리 집에서 장손이니까 누구든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장손, 장손"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나인 줄 모르고 장손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밖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니까 나보고 장손이라고 안하고 형석이라고 부르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래, 나는 장손이 아니고 형석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모르고 남들이 나를 생각하는 대로 살다가, 언젠가 한 번은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 다른 사람하고 꼭 같지 않다.' 그렇게 자기를 느끼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장손, 아들, 딸, 며느리, 회사원, 이런 사회적 역할에서 빗겨나 자신만의 생을 가꿔가라는 이야기를 어쩜 이렇게 어려운 지식이나 현학적 표현 없이 다정하게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마치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인생의 비의를 전수받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제가 생각할 땐 '사랑'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나이까지 쭉 살아보니까요,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남는 게 없어요. 돈 벌어본 것 같고요, 명예 얻은 것 같고요, 자랑스럽게 산 것 같아도요, 마지막에 가서 보면 내가 나를 위해서 산 것은 다 흩어지고 말아요. 없어요.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부끄러움밖에 남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눈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것이 있어요.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은 서로 위해주는 것인데, 위해준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녹취록을 풀면서 자주 울컥했습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제가 만든 책이지만, 참 귀한 책입니다. 가끔 인생 앞에서 막막할 때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조심스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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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책방은 미미와 류의 2인 출판사입니다. 경험이 미래에게 들려주는 수북한 시간들을 담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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