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밤 12시면 간식 먹고 다시 과외 받으러 가야 해요."

1년 내내 지쳐 보이는 얼굴로 옆자리를 지키는 선배에게 들은 정보다. 고3 자녀를 둔 선배는 그렇게 1년을 버티고 있었다. 난생처음 수험생이 겪는 세상이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간식 먹고 집 나간 아이의 일과가 새벽 2시에야 끝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찍은 이후 하향 추세다. 2018년에 1.0명이 깨졌고 2020년 기준 0.84명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중 꼴찌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재정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06년부터 5년 단위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14년간 185조 원 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지출 규모만 보면 2018년 26조 3000억 원, 2019년 32조 3000억 원, 2020년37조 6000억 원에 이른다. 거기다 2007년부터는 아빠들에게도 아이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도 했지만 한번 벗어난 수치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의 나라, 특히 육아 문제의 선진 모델인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은 각종 수당과 제도를 통해 합계출산율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스웨덴(합계출산율 1.76, 2018년 기준)의 경우는 저출산 정책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스웨덴 경제성장률은 유럽연합 28개국 평균(2.0%, 2018년 기준)보다 높은 2.4%를 나타냈다.

같은 문제에 같은 처방전을 쓰고 있는데 왜 이런 상이한 결과가 나오는 걸까?

물론 수당과 제도의 질적 차이는 있다. 스웨덴의 경우 480일의 유급휴직과 80% 가량의 소득대체율, 거기다 2016년부터 남성 의무 휴직제를 60일로 확대하여 실시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노력의 결과가 합계출산율의 회복을 일궈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질적 차이는 인정하지만 그래도 우리 정부가 취한 저출산 정책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과 우리 나라 모두, 여성들의 고학력 증가와 사회진출 증가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육아와 가사노동에서의 성별 불균형의 지속 등이 저출산 문제의 공통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진단에 맞춘 처방이 스웨덴의 경우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좀 더 복잡한 상황이 존재한다. 높은 집값, 청년 취업난, 육아휴직에 부정적인 직장문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그들과 다른 독특한 상황이 존재한다. 바로 능력주의와 학력주의의 팽배에 맞물리는 어마무지한 사교육비의 발생이다.

2020년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약 9.3조 원이다. 1인당 일반교과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9년에 41.8만 원, 2020년 43.6만 원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교대 장형진 교수 연구팀이 서울 고교생 학부모 246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고교생 월 평균 사교육비는 113만 원으로 조사되었다.

한 달에 '100만~200만 원'을 쓴다는 응답은 41.2%를, '200만 원 초과~300만 원 이하'는 6.1%, '300만 원 초과'는 0.9%로 나타났다. 참고로 응답에 참여한 학부모들의 자녀 학교 유형에는 외고와 과학고 등의 특수목적고 6개교, 자율형사립고 11개교, 일반고 68개교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과 관련된 유의미한 자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매일경제>가 취업포털 '사람인'과 함께 2030 미혼 직장인·구직자 1600명에게 '결혼과 출산 의향'을 물어본 결과물이다. 여기서 응답자의 80.9%가 자녀 출산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출산기피 이유로는 ▲ 자녀를 키우기에 소득이 적어서(28.1%), ▲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서(19.9%) ▲ 자녀에게 충분히 잘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18.6%) ▲ 한국의 치열한 경쟁과 교육 제도 아래서 키우기 싫어서(12.8%) 등을 꼽았다.

두 자료에서 보듯이 사교육비의 현황은 유럽 어느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상황이며, 이것이 결혼과 출산 기피 이유 중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예비 부모들은 능력주의와 학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그런 부담을 자신 있게 질 수 없다면 애초에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경험을 되물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맛보지 못하며 사는 예비 부모들의 불만과 저항일 수 있다. 자신이 겪은 경험치를 토대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학력주의에 대한 집착은 공식적으로는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다. 부모의 경제력이 더 좋은 조건의 유치원 입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한 경주는 특목고(과학고, 외고, 국제고, 영재고 등)에서 일단락되고, 여기서 밀린 대다수는 대학입학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미친 듯이 또 한번 질주한다.

이 경주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타고난 우위(재능과 부모의 경제력)를 점하고 있는 학생들도 결승점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밀릴 수 있다는 초조함 때문이다.

대학입학이라는 지점에서 끝난 서열화는 평생의 계급장이 된다. 여기서 좋은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은 평생 수혜를 받으며 산다. 취직, 승진, 결혼 등 각종 분야에서, 사회적 합의라도 된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인정과 특혜를 누린다.

수혜 대상인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받고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패배자라는 잠재적인 낙인을 찍힌 채 산다. 그리고 평생 열등감에 자신을 옭아매며 자책한다. 이런 현실을 경험한 예비 부모들의 고민은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 사는 부모들과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뽀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두 자녀를 둔 부모가 그 자랑스러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참 큰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해요."

물론 부러운 현실이다. 그들이 누리는 지위, 경제력, 고급스러운 인간관계 등등.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 위치와 연봉으로 서열화하여 큰 일, 작은 일을 구분하는 것 때문에 마음 속에 묻어둔 열등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미친 듯한 경쟁과 능력으로 인한 선 긋기, 또 그로 인한 폐해를, 때마다, 순간마다 그렇게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비혼, 저출산, 어찌보면 이것은 행복해지기 위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 긋기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받는 품격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발적인 선긋기인 셈이다. 

경쟁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대학을 평생의 계급장인양 덧씌워 평가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덜 긴장하고, 덜 부담을 느끼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또 그럴 때 늦은 밤, 지친 아이를 위해 간식 준비하는 엄마의 고단한 삶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