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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본래는 학습 과정의 일환으로서 학생들이 성적에 따라 피드백을 받고 각자 그에 알맞은 학습을 제공받기 위해서 사용되는, 수업 이해도를 평가하는 지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험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는 목적으로 치러지며 시험 성적은 학생들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시험이 학습을 보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학생들을 등급에 맞추어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교사들은 항상 평균 점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데, 이는 변별력을 갖추어 각 등급마다 학생 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의 난이도는 이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오르내립니다.

수업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문제가 오로지 시험 난이도 조절을 위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 줄이 세워지면 학생들은 성적에 따른 차별을 받습니다. 이른바 '우열반'과 '열등반'은 아직도 많은 학교에 남아있습니다.

마땅히 모든 학생들에게 허용되어야 하는 정독실이나 기숙사 같은 학교시설의 이용은 성적순으로 허용됩니다. 학교는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게 상장과 장학금을 주고, 교사는 간식과 같은 특혜를 줍니다. 반대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강제로 방과 후에 보충 수업을 해야 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습니다.

이때의 보충 수업은 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수업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못한 학생에게 가해지는 처벌로서 기능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은 모범생이 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불량학생이 됩니다. 시험 성적이 성격이나 도덕성 같은 아주 개인적인 면모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적 차별은 학생들이 과도한 학습에 시달리는 데 일조합니다. 학생을 둘러싼 환경은 밤을 새우고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학생을 모범적인 학생 상이라 말하고, 학교는 시험 결과에 따라 나눠진 우등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차별합니다.

학교를 비롯한 교육 환경은 무리한 학습 노동을 조장합니다. 학생들을 짓누르는 과도한 학습량에 휴식권과 행복할 권리는 쉽게 침해당합니다. 노동자의 권리와 그것을 요구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대신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노동 조건에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환경의 학교에서 긴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수능 성적이나 입학한 대학교와 같은 자격을 충족하면 보상을 받고 차별 대우를 받는 게 정당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른바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가 필요하다는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것입니다.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대우함으로서 사회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또한 노력에 따라 다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정의롭기에 능력주의는 도덕적으로도 올바르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사회에서 높은 가치가 매겨지는 능력이 무엇인지, 그 능력을 타고났는지, 그 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환경이 뒷받침되었는지, 전부 우연에 따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부터 성적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고 그것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대학교와 같은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난 후의 보상은 학습을 통해 발전한 자신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사회는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이 아주 당연하게 발생하는 학교 현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학교를 둘러보면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변별력을 위해 난이도가 높아진 시험은, 그리고 난이도가 높아진 시험에 맞춰진 수업은 높은 성적을 내는 뛰어난 학생들을 만들어내는 한편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부진한 학생들도 걸러 냅니다. 우후죽순 '수포자'들이 생겨나지만, 학교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없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많은 졸업생을 이름있는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려 노력할 뿐입니다.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슬로건의 공교육은 실패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적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주체가, 잘못된 체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의 중심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교육의 공공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현재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공교육은 개인의 성취달성, 계급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공교육의 가장 큰 역할은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입시 폐지를 요구하며 발표한 선언문의 내용처럼, "서로 다른 속도를 존중받으며 각자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보장될 때, 이는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태그:#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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