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관련사진보기

 
정의구현사제단은 11월 20일 오후 7시를 기해 전국 12개 교구에서 동시에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참석한 성직자ㆍ수도자ㆍ신자는 무려 7천여 명에 이르렀다. 날이 갈수록 참여자가 많아졌다. 전국 각 교구에서는 사제단이 준비한 〈새 질서 마련을 위한 '제3시국선언'〉이 일제히 낭독되었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서울의 기도회에는 1천 5백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황인성 주교를 비롯 20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한 미사 후 성모 동굴 기도, 철야기도 순서로 21일 새벽 6시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사제단에서 일련 번호를 매기면서 발표한 '시국선언'은 내용이나 문장에서 그때마다 종교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3시국선언'의 몇 대목을 소개한다.

새 질서 마련을 위한 '제3시국선언'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구조와 체제의 모순 때문이라면 그때 우리는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선포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행동이 불가피하게도 여파를 몰고 오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행동이 복음에 입각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원칙을 구실로 가난을 제거하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모순이요 자기 배신일 것이다.

억압과 무지와 의식의 조작 때문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먼 장님처럼 까맣게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탄압으로 말미암아 항의는 커녕 발설도 못하고 계속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과 보도의 자유에 입각하여 부당하고 불의한 사실이 사실대로 보도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왜곡, 조작된 보도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억울한 사정을 대변하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관철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굶주림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결핍과 수요를 만족시켜 주는 기적일 수 없다. 공갈과 협박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스스로의 자유와 존엄성을 비굴하게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신성 불가침의 생존권을 부여하셨다. 그러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면서 불의를 강행하는 자는 그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모두 하느님 나라를 거스르는 자다.

하느님 나라는 정치적 권력행사로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기존 정권도 하느님 나라의 이름과 기준에 따라 비판받아야 하며 여기에서는 그 합법성 여부는 고사하고라도 어떠한 민주정권도 면제될 수 없다. 

권력, 폭력, 그리고 금력과 의식의 조작을 포기하고 하느님이 몸소 베푸신 인간의 위대한 소명에 인간다운 응답을 보내 드릴 수 있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유라는 여백과 여건을 인간들에게 마련해주셨다. 그분이 병자를 고치시고 부마가 들에게서 악마를 추방하고 가난한 사람들, 창녀와 세리들을 벗으로서 환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이처럼 비정치적인 처신을 끝까지 고수하였건만 그의 반대자들은 이를 정치범화시켜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셨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분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승리는 관념의 승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은 비극의 주인공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

예수님의 승리는 그분의 소신이 관념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평생 소신과 죽음에 이르는 그분의 신의를 정당화시켜 주셨다는 것까지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부활의 참된 뜻이다. (주석 5) 


주석 
5> <암흑속의 횃불>, 174~176쪽.(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