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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은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편집자말]
대선이 한 달이 채 안남았다.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한 공약과 자기 주장을 펼치느라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 편을 가르고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들이 이어져 우려스럽다.

그들은 대중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에만 주목할 뿐 그 너머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현상과 수치가 아닌 그 속의 구체적인 개인을 알 때 말과 선택, 결정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혐오와 배제의 말이 쉽게 흘러나올 수 있는 이유는 구체적인 개인의 자리를 그려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갈등의 프레임만 만들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에는 무심한 대선 후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다큐멘터리 PD이며 번역가로 활동해온 김현우 작가가 쓴 <타인을 듣는 시간>(반비, 2021)이다.

이 책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자신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는 작가의 직업적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독서와 연결되었고, 그가 만드는 다큐멘터리처럼 타인의 경험을 전달하는 논픽션을 읽으며 타인을 잘 이해하기 위한 그만의 방향을 찾으려 했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
 
타인을 듣는 시간
 타인을 듣는 시간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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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 책은 저자가 신발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학교폭력 가해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을 풀어낸 에세이이자, 거대한 서사 속에서 개인 삶의 맥락과 차이를 섬세하게 짚어낸 열세 권의 논픽션에 대한 서평이다.

저자는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고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라는 다큐를 찍었던 경험을 엮어 소외된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협소함을 성찰한다. 언어의 부족은 이해의 가능성을 좁히고 혼돈을 낳지만 다름이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이해와 상관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함께 사는 사회의 토대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코타키나발루의 고무 농장에서 30년 넘게 고무 채취를 해온 할아버지, 슬로바키아의 운동화 공장에서 평생을 일한 할아버지들을 인터뷰했던 경험을 헨미 요의 <먹는 인간>을 엮어 풀어내기도 한다.

'운동화'가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를 의미할 수 있으며 '소박한'이나 '만족'이라는 단어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는 발견을 통해 언어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그런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세심한 노력이 서로에 대한 결례를 줄여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혐오 범죄를 경험한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해 쓰인 희곡 <래러미 프로젝트>(모이세스 코프먼·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와 연결해서는 타인의 자리로 몸을 옮겨 그 감각을 경험하려는 노력 없이 타인에 대해 안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고무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한 여성을 인터뷰했던 경험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 여성은 열다섯 살에 결혼해 아이 다섯을 낳고 몸이 불편해진 남편을 대신해 자신의 몸무게와 다를 바 없는 고무 덩어리를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잘 되기만 바란다는 그녀에게 저자는 당신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은 없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모르겠습니다"였다. 시내에서 떨어진 밀림 속 허름한 목조 주택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부양하는 그녀의 삶을 '좋은 삶'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저자가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떠올려 보라고 질문한 것이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웃고 마는 그녀를 보며 작가는 이 인터뷰가 실패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녀와 며칠이라도 더 시간을 보냈더라면 섣부른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타인의 삶을 나의 맥락으로만 바라볼 때 때로 무례하거나 무력한 말이 나온다고. 그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의 맥락에서 타인을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해 없이 환대하기 
 
이해 없이도 환대는 가능하다.
 이해 없이도 환대는 가능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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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김현우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다름'이라는 전제다. 저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싫어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말에 담긴 '차이'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차이를 무시할 수 있는 건 편협한 둔감함이다. 타인의 다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둔감함,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타인이 맞추길 강요하는 둔감함일 테다. 저자는 "탓해야 할 것은 타인이 지닌 낯선 특징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어야 한다"(38쪽)고 말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우리'라는 말로 묶어 둔감해지지 말 것을, 어떤 단어에 대해 내가 아는 의미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을, 나의 맥락 안에서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만 생각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조언한다.

상대의 몸의 경험, 감각의 경험을 내 몸과 감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을, 섣불리 자신이 이해했다고 생각한 바를 말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라고 청자의 윤리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타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의 맥락으로 동일하게 감각할 수 없는 한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해가 반드시 동의를 의미하지 않고, 관대해지라는 뜻도 아니라는 걸 책에서 배운다. 이해란 내가 타인과 얼마나 다른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 다름을 인식할 때 타인은 내 안에서 새롭게 탄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구체적인 자리가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타인의 자리를 온전히 인정하면서 '우리'가 아닌 상태에서도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지킬 수 있는 개인들이 늘어날수록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존중과 공존을 위한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지속적으로 묻고 들어줘야 할 것이다.

저자와의 북토크에서 김현우 작가가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은 이것이다. "이해가 환대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이해와 상관없이 타인을 환대하는 것이다." 타인은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리고 환대는 불가능하거나 대단한 무엇이 아닐 것이다.

환대는 희미한 친절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환대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환대란 '당신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남은 선거 기간에는 배제와 혐오가 아닌 인정과 포용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더 활발히 묻고 들으며 공존과 환대를 위한 비전을 만들어가는 선거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타인을 듣는 시간 -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

김현우 (지은이), 반비(2021)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태그:#타인을듣는시간, #다름을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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