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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일이 다가오면서 TV토론이 열리고 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되고 있지만, 농업·농촌 문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 발표된 정책 구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를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가 대선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농업·농촌 이슈를 짚는 연속기고를 보내왔다.[편집자말]
사진은 2021년 9월 30일 전남 보성군 득량만 간척지의 논이 수확 철이 다가오면서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
 사진은 2021년 9월 30일 전남 보성군 득량만 간척지의 논이 수확 철이 다가오면서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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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농촌을 살리겠다고 얘기한다 해서 농촌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다. 농촌이 스스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5.16 쿠데타 직후 저질러진 반(反)민주적인 조치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풀뿌리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지방자치단체였던 읍·면

시계를 1960년으로 돌려보자.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지방선거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광역지방의원, 기초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을 뽑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하루에 몰아서 선출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때 뽑았던 기초지방의원은 현재와 다르다. 지금은 농촌지역에서 군의원을 뽑지만, 1960년 선거까지는 군의원을 뽑지 않았다. 대신에 읍의원, 면의원을 뽑았다. 군(郡)이 아니라 읍(邑), 면(面)이 기초지방자치단체였기 때문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도 군수를 뽑는 게 아니라 읍장과 면장을 뽑았다.

이렇게 기초지방자치를 한 이유가 있다. 농촌의 경우 읍·면 정도가 지방자치를 하기에 적합단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적을 보더라도 웬만한 읍·면의 면적이 서울의 자치구보다 넓다.

다른 나라도 농촌지역에서는 우리의 읍·면 정도를 지방자치의 단위로 하고 있다. 독일의 게마인데(Gemeinde), 스위스의 코뮌은 농촌지역에선 우리의 읍·면 정도다. 인구가 1천 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도 많다. 일본의 경우에도 비록 통합을 해 숫자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농촌지역 기초지방자치는 우리의 면·읍 정도인 정(町)·촌(村) 단위에서 하고 있다.

이처럼 5.16 이전에 하던 게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형태였다. 비록 초기여서 문제점도 많았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란 본래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정착되기 마련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빼앗은 읍·면 자치권
 

그런데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쿠데타 세력이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만든 기구였다.

1961년 10월 1일 시행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에서 읍·면을 없애고 군(郡)을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로 규정했다. 즉 읍·면의 자치권을 없애고, 기존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던 군을 지방자치단체로 만든 것이다.

직선으로 뽑던 읍장, 면장을 군수가 임명하는 임명직으로 바꾸었다. 읍·면이 갖고 있던 재산도 군으로 귀속시켰다. 그렇게 한국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면·읍이 사라졌다.

이것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심각하게 잘못된 결정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기구가 이전에 국회에서 만든 지방자치법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것이다. 농촌지역의 기초지방자치 모델에서 완전히 벗어난 '군 단위 지방자치'를 탄생시킨 점도 문제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 읍·면 자치를 복원하지 않고 군 단위 자치를 유지했다. 그래서 지금도 읍·면은 군의 하부행정조직으로 되어 있다. 읍장과 면장은 군수가 임명하는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읍·면에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가 있지만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별로 없다. 농촌지역에서도 군청에 모든 권한과 예산이 몰려 있다. 지역 내에서의 중앙집권체제다.

한편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은 선출직이던 마을 이장도 읍장·면장 임명직으로 바꿨다. 그야말로 풀뿌리까지도 관이 지배하는 체제로 바꾼 것이다. 이것 역시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렇기에 마을총회에서 이장을 뽑더라도 임명장은 읍장, 면장에게 받는다. 평소에는 마을총회에서 선출한 이장을 관례적으로 임명하지만, 마을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간에 갈등이 생기면 이장 임명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사례들도 발생한다.
 
사진은 1991년 3월 15일 경기도 하남시 신장국교에서 열린 기초의회 의원선거 유세장에 2명의 후보가 다정하게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1991년 3월 15일 경기도 하남시 신장국교에서 열린 기초의회 의원선거 유세장에 2명의 후보가 다정하게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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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이전의 마을민주주의 회복해야
 

이런 구조가 농촌지역의 어려움을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농촌지역에서 생활과 생산이 이뤄지는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 읍·면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농촌지역이 활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면에 있는 학교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을 때, 면이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학교는 교육청 소관이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사업예산도 군청에 가서 따와야 한다.

또 면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시설이 들어와도 면장은 아무 권한이 없다. 인·허가를 군청에서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세우는 발전계획 역시 군청에서 세우다보니, 면은 '대상화'가 된다. 면에 사는 주민들도 모르는 서류상의 계획이 나오기 쉽다.

지금 군(郡)에서 결정되는 하향식의 사업들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개발사업, 선심성 사업, 일회성 사업들이 많으며, 지역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농촌지역, 특히 면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려면 읍·면의 자치권 회복이 필수이다. 읍·면의 상황에 맞게 인구대책도 세우고, 교육·주택·의료·복지·문화·환경 대책들을 수립해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읍·면의 자치권 회복은 단지 면장, 읍장을 선거로 뽑는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즉 자치입법권·자주조직권·예산편성권·도시계획권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읍·면은 그런 권한이 없고, 그야말로 하부행정조직에 불과한 실정이다. 임명직인 읍장, 면장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기 어렵고, 읍·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순환보직이다. 그러니 읍·면의 특성을 살린 지역비전을 수립하고 주체적인 계획을 수립·추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읍·면의 자치권부터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60년 이상 유지돼 온 5.16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읍·면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전환하되, 읍장·면장이나 읍·면 의회의 구성방식은 각 읍·면이 기본조례로 정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적은 읍·면의 경우에는 주민총회가 많은 것을 결정하게 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몇가지 권력구조 유형을 제시해서 각 읍·면이 선택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의 모든 읍·면을 동시에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면, 주민투표를 통해 찬성하는 곳부터 먼저 전환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가 무척 낯설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일부 군인들의 쿠데타로 인해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잃어버린 지 61년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쿠데타의 잔재 아래에서 살 것인가?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말로만 '농촌을 살리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5.16 쿠데타로 빼앗긴 농촌지역의 풀뿌리민주주의부터 회복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태그:#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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