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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태경씨.
 포항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태경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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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개인적 경험부터 먼저 한 토막.

6년 전이다. 모친과 일본 북부를 여행했다. 70대 노인에겐 이국(異國)의 낯선 음식이 편하지 않기 마련. 그래서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은 삿포로 시내의 한식당에 갔다.

한국에 비한다면 별 볼일 없는 김치찌개임에도 맛있어하는 모친에게 물었다. "엄마가 한 것만 못하잖아요." 돌아온 대답이 흥미로웠다.

"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뭔 줄 아냐? 남이 해준 음식이야."

일생 엄마와 아내가 해준 요리만을 먹어본 아들과 남편은 알 수 없는 사실이다. 나 역시 그런 아들 중 하나였다.

경북 포항 죽도시장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적지 않다. 그중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수제비 골목'. 수제비와 칼국수, 여기에 둘을 반씩 섞은 칼제비가 주된 메뉴다. 가격도 싸다. 한 그릇에 4000원이니.

그 골목엔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에도 손님이 적지 않다.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수제비나 칼국수를 맛있게 먹는 풍경이 매일 그려진다고 한다.

손님의 대부분은 대형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 식재료를 구입하는 게 익숙한 젊은 주부가 아닌 60대 이상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다. 이들은 일생 '남의 밥'을 해주는 데는 익숙하지만, '남이 해주는 음식'은 자주 맛보지 못한 사람들.

새벽부터 일어나 차가운 바람 부는 시장에서 식구들에게 먹일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생선과 채소를 고른 후 맛보는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 어쩐지 입맛이 다셔지기보단 찡한 마음이 앞선다.

포항 주부들의 소울 푸드 죽도시장 수제비

옥호(屋號)가 포항수제비인 가게는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한편에 조그맣게 자리했다. 시어머니가 20년 전에 시작했고, 며느리 이태경(50)씨가 8년 전부터 함께 했다.

몸이 편찮은 남편을 챙겨야 하는 시어머니의 형편을 알고 일을 돕기 시작한 이태경 씨도 이젠 수제비와 칼국수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제대로 된 국물 맛을 낼 줄 아는 베테랑 상인으로 진화 중이다.

"아침 7시부터 수제비를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이 씨는 위와 같은 답을 들려줬다. 모르던 걸 알게 된다는 건 언제나 크든 작든 충격이다.

혹시 내 모친도 경남 마산의 어시장에서 제사상에 올릴 조기와 나물을 구입한 후엔 수제비나 칼국수 한 그릇을 달게 먹었던 게 아닐까?

- 죽도시장에 수제비 골목이 생긴 건 언제인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으니 적어도 40년쯤은 되지 않았을까? 현재 여기서 영업하는 수제비 가게는 우리 집을 포함해 딱 열 곳이다."

- 가게를 여는 건 언제이고 마치는 건 몇 시인지.
"아침 7시 조금 넘으면 문을 열어 해가 지는 6시에 마친다. 주말에는 조금 더 일찍 나온다. 평일엔 시장을 찾는 주부들이 주된 고객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이 골목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젊은 커플과 관광객들이 많다. 주 5일제가 일반화됐지만 우리는 가게들이 합의해 돌아가며 일주일에 하루만 쉰다."

- 수제비 가게를 하기 전에는 뭘 했었나.
"마흔 살 넘어서까지 쭉 주부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시장에 나오는 게 쑥스럽고, 손님을 응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가한 시간에 밥을 먹을 때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웃음) 그런데, 그런 부끄러움과 어색함은 8년이란 시간이 해결해줬다."
 
정성스럽게 만든 국물에 수제비를 뜯어 넣는 이태경 씨.
 정성스럽게 만든 국물에 수제비를 뜯어 넣는 이태경 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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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였던 손님이 결혼해 아기 데려 오기도

사실 수제비나 칼국수가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뜯거나, 칼로 썰어 뜨거운 국물에 넣어 먹는 어찌 보면 간단한 음식.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가게들은 여기에 양념장과 잘게 썬 매운 고추, 맛깔스런 깍두기를 곁들여 내놓는다.

양이 모자라다고 말하는 손님에겐 국물은 물론 수제비도 더 준다.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두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2천 원이 남는 것.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힘겨워하는 서민들의 '소박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2~3년 전 3500원이던 음식 가격은 몇 해 사이 겨우 500원이 올랐다. 반면 수제비와 칼국수의 주재료인 밀가루는 최근 몇 달 만에 20% 이상 인상됐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어려운 상황일 것이 분명하다.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은 글자 그대로 골목(실외)에 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시장 거리에 자리했다는 이야기. 가게 주인들은 겨울마다 매서운 추위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태경 씨는 웃는 얼굴이다.

- 겨울엔 고생스러울 것 같은데.
"물론 춥다. 하지만, 손님이 많이 오면 추위도 잊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어느 해 명절엔 수제비와 칼국수를 100만 원어치 팔았다. 한 그릇에 3500원 하던 시절이니 300그릇 가까이 판 거다. 그럴 땐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지금은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져 죽도시장이 한산하다. 가게도 예전만 못하다. 다시 손님들로 북적이는 좋은 때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장사를 하다 보면 가슴 뿌듯한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아가씨 손님이 연애를 시작해 남자친구와 함께 오고, 시간이 지나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올 때면 웃으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손님이 데리고 온 아기들이 우리 가게 수제비를 좋아하면 더 즐겁다. 그런 게 사람 사는 정인 것 같다."

-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하루 12시간을 바깥에서 지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손님 수제비 그릇이 깨끗하게 비어있고 '설거지 할 것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해주면 내가 음식 만드는 사람이라는 게 행복하게 느껴진다. 체력이 따라준다면 앞으로도 10년쯤은 더 일하고 싶다."
 
죽도시장의 아침을 깨우는 주부들의 힐링 푸드 수제비.
 죽도시장의 아침을 깨우는 주부들의 힐링 푸드 수제비.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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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재료가 빚어낸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북아메리카까지 여행하며 요리에 관한 글을 쓴 언론인 시노다 고코는 자신의 책 <요리와 인생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맛본 소박한 요리를 잊지 못한다. 그 음식들은 혀끝의 기억만이 아니라, 마음을 포함한 오관의 체험으로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 인간이 세계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음식을 통해 세계를 음미하는 건 누구나 가능하지 않을까?"

포항수제비를 지키고 있는 이태경씨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전엔 음식을 잘 하지 못했다"고. 그랬기에 시어머니로부터 수제비와 칼국수 반죽을 제대로 하는 방법과 7가지 재료로 맛있는 국물을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열심히 배웠다.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얻게 된다. 그게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다. 이제 이태경씨의 수제비와 칼국수는 아들의 친구들까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음식이 됐다. 시노다 고코의 표현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소박하고 맛있는 한 끼'가 된 죽도시장 수제비.

"꿈이 뭐냐고요? 나뿐만 아니라 시장 사람들 모두가 지금보다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고생하는 만큼 수입도 높아지고, 살림살이도 활짝 피어나고요.(웃음)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코로나19가 어서 사라져서 마스크 벗고 수제비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이태경씨의 꿈 역시 수제비처럼 소박했다. 그래서 더 진솔하고 간절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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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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