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공주 구시가지에서 공산성 방향으로 가는 인도 / 왼쪽 아래 기와 담장이 공산성 주차장 끄트머리
 공주 구시가지에서 공산성 방향으로 가는 인도 / 왼쪽 아래 기와 담장이 공산성 주차장 끄트머리
ⓒ 전병철

관련사진보기

  
공주 구시가지(금강 남쪽)에서 공산성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 시내버스 터미널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조금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새로 조성한 주차장이 나타나는데, 주차장이 시작하는 지점 언덕에 6개의 비석이 인도 옆 위쪽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거꾸로 강북에서 금강대교를 지나 무령왕 동상이 세워진 공산성 앞을 더 지나면 왼쪽에 새로 조성한 주차장이 시작하며 주차장 맨 끝 기와지붕 담장이 끝나는 곳 바로 옆, 인도보다 약간 높은 산자락에 6개의 비석이 줄지어 서 있다.  
 
왼쪽부터 유하, 조운철, 성이호, 박중양, 김관현, 홍종협 / 공주 금성동 선정비군 안내문
 왼쪽부터 유하, 조운철, 성이호, 박중양, 김관현, 홍종협 / 공주 금성동 선정비군 안내문
ⓒ 전병철

관련사진보기

 
6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면 왼쪽에 '공주 금성동 선정비군'이라는 제목으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주 금성동 선정비군
 
공산성 서문 입구의 비석군과 마찬가지로 공주와 인연을 맺은 관리들의 공적비들로 여러 곳에 있던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우영장 류하 치병선정비는 ① 군사분야의 공적으로 조선 숙종때 건립되었고 충청관찰사 조운철영세불망비는 1800년경 근무했던 공적을 기려 1848년 세워졌으며, 충청관찰사 성이호 영세불망비는 세정관리,재민구호의 공적을 기려 1876년에 건립되었다.

충청남도장관 박중양 불망비는 ④ 공주고보 창건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충청남도 장관 김관현 흥학 선정비는⑤ 잠상업 장려로 1930년에 건립되었고, 중추원의(대한제국) 홍종협 기념비는무말소와 소작료 탕감 등의 공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1931년에 건립하였다.

이중 박중양․김관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위직을 맡는 등 친일행적이 밝혀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탄받는 인물이다.

① 류하 | ② 조운철 | ③ 성이호 |④ 박중양 |⑤ 김관현 |⑥ 홍종협
 
그런데 안내문을 잘 살펴보면 번호 위치나 띄어쓰기 등에 오류가 많고 문장 흐름에 어색한 곳(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도 박중양과 김관현에 대한 공적 설명이 서로 뒤바뀌어 있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로잡아 다음(파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과 같이 고쳤으면 어떨까 싶다.
 
공산성 서문 입구에 모아놓은 비석군과 마찬가지로 공주와 인연을 맺은 관리의 공적비로써 여러 곳에 있던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우영장 류하 치병선정비는 군사 분야의 공적으로 조선 숙종 때 건립하고, 충청관찰사 조운철 영세불망비는 1800년경 근무했던 공적을 기려 1848년 세운 것이며, 충청관찰사 성이호 영세불망비는 세정관리, 재민구호의 공적을 기려 1876년에 건립하였다.

충청남도장관 박중양 불망비는 잠상업 장려로 1927년에, ⑤충청남도장관 김관현 흥학선정비는 공주고보(공주고등학교) 창건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30년에 건립하고, ⑥대한제국 중추원 의관 홍종협 기념비는 채무 말소와 소작료 탕감 등의 공적을 기리고자 1931년에 건립하였다.

이 가운데 박중양과 김관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위직을 맡는 등 친일행적이 뚜렷한 민족반역자로서 지탄받아 마땅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안내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설명한 박중양과 김관현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박중양 불망비와 김관현 공덕비는 6개의 비석 가운데 비석을 보는 방향 왼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있는데, 박중양과 김관현 둘 다 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 것처럼 우연인지 비석마저도 서로 약간 기울어진 채로 사이좋게 어깨를 마주하며 서 있다.

그리고 박중양 불망비는 '본도장관박공중양불망비(本道長官朴公重陽不忘碑)', 김관현 선정비는 '본도지사정4위훈3등김공관현흥학선정비(本道知事正四位勳三等金公寬鉉興學善政碑)'라고 중앙에 세로로 크게 새겨져 있다. 또 두 비석 모두 상하좌우로 4자로 된 2개의 문장이 각각 새겨져 있으며, 뒷면 또는 옆에 날짜가 적혀 있다.

먼저 박중양 불망비를 자세히 살펴보자. 조선시대 도(道) 행정업무를 총괄하던 관찰사(觀察使)는 일제강점기 '도장관(道長官)'이라고 하였다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道知事)'로 불렀다.

박중양은 1910년 10월 1일부터 1915년 3월 31일까지 대한제국 마지막 관찰사이자 일제강점기 초대 충청남도장관을 역임하였다. 박중양은 충청남도장관으로 있을 때 잠상(蠶桑: 누에와 뽕나무)업을 장려하여 성과를 낸 업적을 보여 이에 그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정묘년(1927)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김관현 선정비는 조선총독부로부터 1926년 정4위(正四位) 관등과 1920년 훈3등(勳三等) 훈장을 받은 김관현이 1921년 2월 12일부터 1924년 12월 1일까지 충청남도지사를 지낼 때인 1922년 공주공립고등학교(현 공주고등학교)를 세우는데 큰 공적을 남긴 것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소화 5년(1930)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서로 어깨를 마주하며 서 있는 두 비석 // 박중양 불망비 / 김관현 송덕비
 서로 어깨를 마주하며 서 있는 두 비석 // 박중양 불망비 / 김관현 송덕비
ⓒ 전병철

관련사진보기

 
[앞면]
본도장관박공중양불망비(本道長官朴公重陽不忘碑)
충청남도장관 박중양의 업적을 잊지 않는 비

유공선정 민불능망(惟公善政 民不能忘)
아, 공의 선정을 생각하면 백성이 어찌 잊으랴!

특거기요 일왈잠상(特擧其要 一曰蠶桑)
그 중요한 것을 특별히 들면 첫째가 양잠이니

공시권유 민혹원자(公始勸諭 民或怨咨)
공이 처음 권장함에 백성이 혹 원망하였으나
급기획리 금내견사(及其擭利 今乃見恖)
그 이익을 얻자 지금은 은혜로 여긴다오.

[뒷면]
丁卯十月 日立
1927년 10월 세움

[앞면]

본도지사정4위훈3등김공관현흥학선정비(本道知事正四位勳三等金公寬鉉興學善政碑)
본 충청남도지사 정4위 관등과 훈3등 훈장을 받은 김관형이 학업을 진흥시키며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는 비

공리자도 염진육영(公莅兹道 念軫育英)
공이 도지사로 부임하여 육영의 인재양성을 염원하여

고보창학 불환거영(高普剏學 不患擧贏)
공주고보를 세우는데 재정을 근심하지 않았네.

분려규획 흘용유성(奮勵規畫 迄用有成)
설계와 경영에 온 힘을 기울여 완성에 이르렀으니

약기위적 용시후생(略記偉蹟 庸示後生)
대략 큰 공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노라.

[뒷면]
昭和五年二月二十日 立
1930년 2월 20일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초대 충청남도장관을 지냈다. 이후 일본인이 2대, 3대 도장관을 맡다가 1919년 8월 도장관이 도지사로 바뀌었는데, 초대(1대)와 2대 충청남도지사는 일본인이 맡다가 제3대 충청남도지사로 김관현이 임명되었다.

일제강점기 도장관과 도지사를 같이 취급하면 제3대 충청남도지사는 제6대 충청남도지사가 되어 김관현을 제3대 충청남도지사 대신 제6대 충청남도지사로 부르기도 한다.

공덕 잊지 않겠다는 비석 대신 단죄비 설치해야
  
초대 충청남도지사 박중양(朴重陽)과 제6대 충청남도지사 김관현(金寬鉉)
 초대 충청남도지사 박중양(朴重陽)과 제6대 충청남도지사 김관현(金寬鉉)
ⓒ 공주학아카이브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 초대 충청남도지사(장관)를 지낸 박중양과 제6대 충청남도지사를 지낸 김관현은 당시 도지사를 지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제에 협력한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들은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부의장, 참의를 맡는가 하면 각종 의원 등을 맡아 가며 친일반민족행위에 앞장섰다.

비록 박중양과 김관현이 충청남도지사로서 양잠을 장려하여 공주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공주고등학교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주어 공주 사람에게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민족반역자로서 살아온 자이다. 이런 자가 도지사 업무를 잘 수행하여 은혜를 베풀었다 하여 그 공덕을 잊지 않겠다는 비석을 세워줬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빛나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교육도시이자 역사문화도시로서 독립유공자를 많이 배출하기도 한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 공주 공산성 주차장 옆에 민족반역자로서 친일반민족행위에 앞장선 박중양과 김관현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아직도 버젓이 서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박중양 불망비와 김관현 선정비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비록 비석 안내문에 "박중양·김관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위직을 맡는 등 친일행적이 밝혀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탄받는 인물"이라고 설명하곤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처단하는 단죄비(斷罪碑)를 따로 설치하거나 적어도 안내문에 그들이 친일행위를 하며 벌인 죄를 보다 자세하게 밝히는 내용이 들어갔으면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안내문이 되고, 그래야 교육도시이자 독립운동의 고장이기도 한 공주가 제대로 된 역사문화도시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