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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기타와 플루트 연주 소리, 우리들의 노랫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연습 없는 즉석 노래라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음엔 미리 연습해서 더 잘해보자며 최선을 다해 노래한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라 이미 만족스러운 상태이긴 했으나, 노래를 하다 보니 기분이 더 좋다. 이번 설, 우리 가족들의 모임 풍경이다. 갑자기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동요가 떠오른다.

설 전날이자 아버지 2주기였던 날, 가족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 일이다. 밖에서 먹을지 집에서 먹을지, 집에서 먹을 거면 무엇을 만들지 등을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제사를 지내는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예전부터 명절 준비가 덜 복잡하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제주에 있는 오빠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식으로 먹거리를 준비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어머니와 나, 막내 오빠네 가족 네 명, 이렇게 여섯 명이 가족 모임의 고정 멤버가 되었다. 어머니 생신이나 어버이날, 명절 등에 만나서 먹고 노는 멤버들이다. 명절에는 주로 전날 모이고, 명절 당일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의 집에 가서 한나절을 보내고 오신다.

'가족'이라는 것이 따스하고 포근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알 것이다. 전 국민들이 알게 된 유명인들의 끔찍하고 아픈 가족사,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집집마다 크고 작은 싸움으로 몸살 중인 분쟁의 섬 제주도 등. 가족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우리 주위에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집은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부모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덟 명의 자식들을 온 힘을 다해 키워주셨고, 가난한 목회 생활을 마칠 즈음 작은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지어서 자신들과 할머니의 노후를 준비하고 가꾸셨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문제가 생겼고, 이 과정에서 몇 명의 형제들과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어졌다. 어머니에게는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일 수가 없어서 명절 때도 이렇게 따로 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언뜻언뜻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형제들이 우리 집에 오지 않고 나 역시 그들의 집에 가지 않는 지금의 상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시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역시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자식들의 불화는 부모로서는 가슴 아픈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화해를 원하는 말을 나에게 계속 하셨더라면, 아마도 나는 어머니에게 벌컥 짜증을 내고나서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족 모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가족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와 버렸다. 가족은 단란해야만 하고 우애가 넘쳐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지 않기에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도 부담은 없다.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관계들에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하여튼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가족들이 모이고, 음식 준비 스트레스 없이 식당에 가서 먹기도 한다. 또 집에서 먹더라도 메인 반찬 한 가지만 준비해서 맛있게 먹자고 결의(?)했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나는 밥과 국, 기본 밑반찬을, 올케는 갈비찜을 준비해서 단순하면서도 만족도 높은 밥상을 차렸다.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한참을 정자에서 놀았다. 몸을 말리려고 돌 위에 올라와있는 거북이 구경도 하고, 살랑거리는 가을바람도 상쾌했다.
▲ 작년 추석 우리들의 놀이터 연못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한참을 정자에서 놀았다. 몸을 말리려고 돌 위에 올라와있는 거북이 구경도 하고, 살랑거리는 가을바람도 상쾌했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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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는 주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내 마음의 명소인 연못 정자에 앉아서 따뜻한 햇볕과 기분 좋은 가을바람을 즐기며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와서 같이 노래 부르며 놀았다.

모두에게 교회 문화가 익숙한 편이라 같이 노래하는 것 역시 비교적 자연스럽다. 아마도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을 주로 불렀던 것 같다. 이번 설에는 '등대지기'를 불렀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노래 선곡이 계절과 너무 잘 맞는다. 그리고, 등대지기는 섬사람인 우리들에게 참 어울리는 노래였네 싶다.

이렇게 맛있는 밥, 농담과 웃음, 함께 하는 노래 속에서 나이 한 살을 먹어간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한 기사에서 뇌의 노화에 대해 뇌 과학자가 한 이야기를 보았다. 그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저하되는 것은 단지 노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보니 특정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나이가 들어갈수록 '직감력'은 더 높아진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생겨나는 연륜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늙어가면서 피할 수 없는 많은 상실의 아픔들이 있긴 하겠지만, 보통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매우 편협한 정의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도 있을 직감력과 연륜의 힘을 믿으며, 또 한 해를 기꺼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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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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