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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시민들이 망원경으로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남북 최전방 초소 등을 살펴보는 모습.
 지난해 7월,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시민들이 망원경으로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남북 최전방 초소 등을 살펴보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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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해방되면서 분단상태가 되었고, 해방 후 77년이 되었다. 그냥 두면 1세기도 훌쩍 지나쳐버릴 기세다. 통일을 원한다면서 너무 주변국에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원해서 분단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를 국제협조로 이해를 구하면서 해소시킨다는 수동적인 자세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먼저 분단을 허문 다음 통일을 이루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수순으로 복원시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한 계몽과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분단을 제안한 나라도 조선이 식민지로 들어설 때 조연 역할을 한 미국이다. 미국은 조선을 해방시킨 나라지만, 조선이 식민지 나락으로 빠질 때, 옆에서 방관하면서 필리핀을 챙긴 나라였고, 군사전략상의 이유라며 분단선을 그은 나라다.

이 때문에 통일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합의를 구한다는 방향에는 한계가 있다. 흔히 독일통합 과정을 볼 때, 국제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전범국이었던 독일의 예를 우리와 비교하려는 자체가 넌센스라고 본다. 오히려 먼저 이렇게 국제사회에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영원히 통일을 포기하고 분단을 지속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은 중국에서 이익을 구한다는 목적에서 시작하여, 현재도 중국으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지킨다며 대중압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에 대해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적대정책을 펼쳐왔다는 것도 우리의 통일정책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비핵화와 인권문제를 거론하지만, 이미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전개해 왔다. 마땅히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적대정책은 협의하여 동시에 제거시켜야 할 과제다.
 
2019년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2019년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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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장

미국 삼성조정위원회SWNCC는 국무부와 육군성, 해군성의 참모가 협의를 통해 전쟁정책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2차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인 해방 직전 한반도에서 미군의 작전 범위를 협의하는 중, 미국방부 회의실에 걸려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피가 출판한 조선지도를 바라보면서 대충 38도선이면 수도 서울이 포함되면서 인구가 많은 남쪽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사고를 소련에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된다.

협의에 참석한 딘 러스크(1909~1994)는 다른 참모들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후, 미국의 대외전략은 윌슨주의에 입각하여 그리스와 터키, 동남아시아와 조선에 이르는 지역을 공산주의로부터 방어하는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분단이라는 발상이 이렇게 미국 중심의 전략적인 사고와 조선에 대한 무책임한 결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에 의존하여 통일을 이루려는 속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일러가 저술한 러스크평전(2000)
 자일러가 저술한 러스크평전(2000)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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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통일

2차대전을 전후로 미국은 새로 창설되는 국제연합을 통해 조선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국제연합이란 모든 나라의 의사가 반영되어 형평성 있게 조절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탄생부터 부서의 역할과 기능부터, 미국이 구상한 국제의사결정기구로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다. 때로는 국제연합 안보리 이사국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21세기 이라크전쟁과 같은 미국이 주도하는 침략전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합의보다 대한민국의 의지와 북한과의 합의가 중요하고, 이를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국제사회 또는 미국의 의사를 반영시킨다고 해도, 이제까지 경험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통일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 나타나는 형태론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추론이 가는 이유다. 미국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모습이 될 것이다. 어떠한 청구서가 날아올 지 알 수 없으며, 둘로 나뉘어진 것도 모자라 엄청난 희생에 더해 사분오열된 모습을 상상해 보라.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분열의 시작이기 쉽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중대결과 적대국인 북한을 억압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 미국과 주변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함도와 사도광산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킬 때, 한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징용이 있었던 장소라며 부적합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을 둘러싸고 한일간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은 사도광산인데, 마찬가지로 조선인 강제징용이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TF에 TF로... 한국 정부,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저지 '맞불').

앞으로도 한일 간에는 이렇게 유사한 갈등이 예상되는데, 왜 이러한 문제가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사실에는 틀림이 없지만, 일본 국민은 연합국에 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패한 것으로 기억하고 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포함한 여러 조건을 받아들여 전후 질서를 내세우며, 경제부흥을 꾀하면서, 선진국으로 우뚝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 패했지만 따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조선에 대한 인식은 미지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일 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전후 한일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매듭지워진 것으로 여기고, 한일 간의 문제도 모두 해결되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대한 침탈의 역사적인 관계는 미일관계에 가리워져 소외당한 것이 한일간의 역사인식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이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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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잡은 성숙도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일본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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