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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두부는 대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등 찌개의 부재료로 들어간다. 이럴 때 두부는 그다지 필수적인 존재는 아니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식재료다. 두부는 가격도 저렴하고 구입하기도 쉬워서 매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존재다. 두부 만한 식재료도 없다.

어린 시절에 두부 심부름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처럼 팩 포장 상품이 나오지 않을 때였다. 두부 1모를 달라고 하면, 가게 주인은 '끙' 소리를 내며 노란 두부판을 들고와 칼로 십자를 쓱쓱 그어 두부 한 모를 떼어 비닐에 넣어주었다.

두부가 으깨지지 않게 집까지 잘 들고 오는 것이 관건이었다. 비닐봉지를 한손으로 달랑달랑 들고 오다가는 두부 모서리가 으깨지곤 했다. 한 손으로 비닐봉지 손잡이를 잡고 남은 한 손으로는 두부를 받쳐서 조심조심 들고와야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두부 한쪽 모서리가 뭉개져 있으면 그날은 괜스레 속상했다.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같았다.

두부는 조심조심 다뤄야 하는데
 
엄마가 해주신 두부조림. 저 연약하고 부드러운 두부들은 한참동안 저 뜨거운 열속에서 익는다. 온갖 맛이 자신에게 스며들 때까지. 많이 조릴수록 맛이 배어든다.
 엄마가 해주신 두부조림. 저 연약하고 부드러운 두부들은 한참동안 저 뜨거운 열속에서 익는다. 온갖 맛이 자신에게 스며들 때까지. 많이 조릴수록 맛이 배어든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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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는 두부조림을 자주 해주지 않으셨다. 그보다는 찌개에 넣는 부재료로 많이 사용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엄마도 두부는 조연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씩 두부조림을 해주시곤 했는데, 달콤짭짤매콤한 두부조림은 언제나 입맛을 당겼다. 두부가 비로소 주연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두부조림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약간 든다. 두부에 양념이 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하디 연한 두부의 속살로 맵고 달고 짭짤한 맛이 스며들기까지 두부는 뜨거운 열 속에서 한참을 부글대야 한다. 연한 두부가 그렇게 졸여지고 단단해지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맛있다며 좋아라했다.

엄마는 이제 무거운 것은 당분간 잘 들지 못하신다. 지난해 12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으셨다. 어깨 통증이 있었던 것은 꽤 되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병원에 간 것이었다. 단순히 오십견이라 생각했던 우리 가족들은 '회전근개파열'이라는 병명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끊어진 엄마의 힘줄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어깨가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의 어깨가 우리 가족의 지붕이었음을. 엄마의 힘줄이 우리 형제들의 동력이었음을.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왜 엄마의 어깨는 만년 단단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후회하며 자책해도 소용 없었다.

이제야 알게 된 두부 같았던 엄마의 어깨

의사는 '나이 들면 일어나는 노화 현상'이라지만, 그러기에 엄마의 어깨 힘줄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이제 회복과 재활만이 남았지만, 수술 자리가 너무 연하디 연해서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기본적인 재활 운동만 할 뿐, 여타 집안일이나 힘 쓰는 일은 금물이었다. 엄마의 어깨는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조심조심 집으로 가져왔던 두부 1모보다 더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약한 생물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어깨가 멈추고 나서야 가족들의 어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을 하고, 빨래를 널고, 빨래를 개고, 아빠의 병원에 동행하고, 시장을 가고, 쓰레기를 치우고... 엄마의 어깨는 이 많은 일들을 그토록 쉴 새 없이 해오셨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반강제로나마 쉴 수 있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었다.

엄마가 수술을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주신 음식이 두부조림이다. 아직 두부를 자를 힘은 있다면서 기어코 엄마가 칼을 드셨지만, 두부조림을 먹고는 끝내 가슴이 먹먹하였다. 두부가 이렇게 연약한 음식이었다니. 그동안 단단한 팩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그 사실을 잊고 살았구나. 원래 부드럽고 연약했던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무심하게 대했다. 양념이 밴 두부처럼 온갖 고통과 슬픔을 어깨로 다 받아낸 엄마. 이제 두부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날 것 같다.

[정선환 여사의 두부조림]                                                                      
1. 두부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키친타올을 이용해 살짝 수분을 뺀다.
2. 양념장을 만든다 (진간장 3큰술, 조선장 1큰술, 물 1큰술)
3. 계절이 계절인 만큼 잘 다진 달래와 다진 청양고추, 참기름을 양념장에 넣는다.
4. 살짝 수분을 뺀 두부는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다.
5. 냄비나 우묵한 프라이팬에 두부를 넣고 양념장을 뿌린 뒤 졸인다. 

태그:#일흔의 레시피, #엄마요리탐구생활, #두부조림, #어깨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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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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