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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이런 슬픔
- 장적

20xx년 3월, 비…
중앙선을 넘어온 30대 무면허 운전자의 차에
일곱 살 된 두 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어제와 다른 오늘
방금 전과는 다른 지금

조심해서 차를 몰던 아빠
즐거운 우리집을 노래하던 엄마
이제는 모든 게 달라졌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우리집
달라진 공기
달라진 세상
달라진 우주

두 딸 아빠인 나, 나라면…
이런 슬픔, 이런 절망, 죽음보다 깊은 죽음이다

하루 종일 생각했다
일 년 내내 생각했다
평생 생각했다
생각을 잊었다

주여 자비를

- <골짜기를 지나는 이에게>, 이음스토리, 2021, 21쪽


'가슴 아프다'고 해야 하나요. 이런 슬픔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하나도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이겠지만, '내 세상'만큼은 수천수백 번 더 무너진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그악스러운 상황이 있다면, 바로 '이런 슬픔'과 만나는 것일 겁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인 것입니까. 내 일이 아니라고 눈 감고 귀 막으며 회피하면 끝나는 일입니까. 당장은 괜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누구든 언젠가 '역-로또'에 당첨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시인이 된 까닭은 화자가 말하고 있는 '이런 슬픔'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첫 시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얘기들이 '피할 수 없는 슬픔'과 관련되어 있는 까닭도 동일합니다.
 
장적 시인의 시집
 장적 시인의 시집
ⓒ 이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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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로 아이를 잃은 이후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보다 세상엔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요. 아주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옛 직장 동료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나도 그랬다고. 같은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시는 원장님도 그런 분이셨습니다. 밝은 모습만 봐서 상상도 못했는데 저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분이었습니다.

왜 몰랐던 것일까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내가 슬프지 않으면, 슬픔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사고로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흔하디 흔한 뉴스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 '휙' 하고 지나가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슬픔과 고통의 상흔을 가슴에 음각하는 일입니다. 십수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아픔입니다.

첫아이를 잃었을 때 십 년만 견디자 생각했다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가슴에서 지우는 일은 딱 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당신은,
사랑이 그리 쉽게 떠나갔는가?

- 주영헌 시 '첫' 중에서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고라면, 가슴에 묻어보려고 노력하겠지만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은 인재(人災)입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어간 세월호 사건, 최근 발생한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도 그러합니다.

화자가 말하는 도로 위는 최악입니다. 과속·난폭·음주 운전에 의해 애꿎은 가장과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떠들썩했던 몇몇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힙니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을 것입니다.

경찰에 단속되더라도 사람이 상하지 않았다고 해서 몇 백만 원의 벌금이나 운전면허 취소로 그 죗값을 대신할 것입니다. 얼마 후 면허를 다시 따면, 또 술을 마실 것이고, 자신과 타자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질주를 시작하겠지요. 기막힌 사건과 마주할 때까지.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누구나 '이런 슬픔'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얘기들, 소설처럼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 현실의 한 부분입니다. 가족의 삶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지독하게도 잔혹한 현실.

생각해 보면, 조금만 더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던 원칙만 지키면 되는 일입니다. '조심해서 차를 몰던 아빠 / 즐거운 우리집을 노래하던 엄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일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인재(人災)로 인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올 한해 모두에게 축복만 가득한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장적 시인은...

오래전 사회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현재는 북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장차 북핵문제가 잘 해결되고 남과 북이 평화롭게 넘나들 날을 소망한다. 시집으로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이에게』(이음스토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https://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이에게 - 장적 시집

장적 (지은이), 서지영 (사진), 이음스토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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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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