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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편집자말]
내 힘으로 날 수 있다는 엉뚱한 믿음,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살고 싶다는 모험심 가득한 욕망은 내 유년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 소설 <좀머 씨 이야기>의 주인공 "나" 내 힘으로 날 수 있다는 엉뚱한 믿음,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살고 싶다는 모험심 가득한 욕망은 내 유년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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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하는 책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다. 첫 장을 읽을 때 깜짝 놀랐다, 주인공 '나'가 너무 나 같아서. 우선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고, 높은 나무에 기어올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모습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책을 펼쳐보니, 이 아이 역시 ADHD 스펙트럼에 속하는 아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최근에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이나 집중력 부족도 따지고 보면 전나무에서 떨어질 때 생긴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주제에 계속 매달린다거나, 어떠한 분명한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되어서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좀머 씨 이야기>, 11쪽) 

헉, 이거 완전히 ADHD 얘기잖아. 내 일기장에 있던 글이라 해도 믿겠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좋았나? 자극적이고 위험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에 주의력 부족 증상까지 가진 이 아이가 남 같지 않다.

학생시절 내내 활공을 꿈꾸다 대학 때는 행/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내 중년을 상상하면 글라이더를 타고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다니는 모습, 내 최후를 상상하면 마구 방랑하다 길에서 지쳐 죽는 모습이 떠올랐다. 꿈이 객사라니? 그 정도로 나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고 쏘다니는 데에 목이 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ADHD인이 뭔가에 꽂혔을 때는 엄청난 실행력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대학에 들어가자 해외에 나갈 방법들이 보였다. 당장 가능한 것부터 붙잡기로 했다. 나는 대학은 물론 대학원 수업에서도 교수님 말씀을 반도 귀에 넣지 못했다. 하지만 20대 내내 방랑에 살짝 미쳐 있어서, 계획을 위해서라면 성실하게 울며 겨자를 먹을 수 있었다.

노잣돈 없이 방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았다. 교환학생, 봉사단원, 외국인 노동자, 파견교사, 숙박교환을 통한 장기체류. 한두 번 여행으로 성에 차지 않아 갖가지 신분을 이용해 외국과 한국을 옮겨 다녔다. 굳이 내 몸집만 한 이민가방을 끌고 3개국을 돌아 귀국할 때도 힘들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가 3개월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전에 다녀간 호스텔에 무작정 숙박교환을 요청했다. 호스텔 내 다락방을 얻어 지내며 객실 청소와 아침식사 제공을 도왔다.

그곳 말을 모르는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니 매일 무시를 당했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공부도 안 하고 온 게 나인데 누굴 탓하리. 그보단 숙박비를 제하면 남는 생활비가 너무 적고, 언어능력이 없어 다른 일을 못 구하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한국에 돌아갔다가 몇 달 뒤 또 다른 나라로 떠났다.

나는 마치 온몸으로 "보아라, 이것이 역마살이다!"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먼 곳으로 훌쩍훌쩍 떠나는 내가 멋지다고 했다. 잘나 보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도 그 평가에 살짝 취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면은 불안과 초조로 가득했다. 더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더 자주 떠나지 못할까 봐.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였다면 좋은 곳을 찾아 정착하려 했을 텐데. 나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하늘을 날 때처럼 탁 트인 기분으로 사는 생활.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다양성에 열려 있는 문화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나'라는 사람

어딜 가나 내 상태는 비슷하게 흘러갔다. 초 단위로 상황을 따라잡기 위해 뇌에 120%의 힘을 주는 건, 자존감 문제에 앞서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기 초엔 의욕에 불타다 금세 무기력이 드러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사람들의 작은 표정 변화와 수군거림도 칼날처럼 날아왔다. 범죄라도 저지른 양 '여기서도 내 실체가 드러났군' 하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새 삶을 시작했다.

원하던 생활을 하는데 왜 행복한 줄 모를까? 왜 아무리 돌아다녀도 채워지지 않지? 땅 끝까지 가 봤자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좋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과 관계 맺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교사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른 문화가 주는 신선함보다 더 뚜렷하게 마주한 것도 바로 자신의 문제다.

첫 화에서 '유리상자'라는 표현을 썼다. 투명한 유리에 갇혀 현실과 유리된 느낌.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아득하고, 천장을 밀어보려 해도 키가 안 닿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내 뜻과 따로 놀아서다.

나만 떠올리는 줄 알았던 이 낱말을 ADHD 관련 책에서 '상봉'했다. 그 후 수시로 환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같은 감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았다. 숨 쉴 때마다 공기 속 바늘에 심장을 찔리던 느낌이 '불안장애'라는 것도 그제야 보였다.

내가 찾던 자유는 몸의 자유가 아니었다. 나는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넘어서고 싶었던 거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알고 보면 어느 쪽으로든 분류되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왔다.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속되고 싶었다.

그런 것치고는 많은 걸 누렸다. 이국 생활에는 반짝이는 순간들도 분명 많았다. 부족한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기 위한 증상일지언정,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는 쾌감에 중독됐던 것도 소중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한편 괴로움이 기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채웠던 것도 사실이다. 자리와 이름에 날 맞춰넣어야 한다는 강박은 내가 고이 모시고 다닌 짐이었다.

내 세상의 매트릭스에서 '자유'란
 
내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로부터 도망다닌 내 청춘은 장자가 쓴 <어부>의 한 구절과 닿아있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자취가 남는 것이 싫어서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내달린 사람이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을수록 발자취는 점점 많아졌고,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그림자는 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 돌아다녀야만 살 수 있는 사람 내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로부터 도망다닌 내 청춘은 장자가 쓴 <어부>의 한 구절과 닿아있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자취가 남는 것이 싫어서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내달린 사람이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을수록 발자취는 점점 많아졌고,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그림자는 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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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한국에서도 잘 살 수 있을까? 후에 한국학을 공부하고 내 병에 대해 알아가며 깨달았다. 사람 사이가 나이로 쉽게 서열화, 권력화 되는 한국에서 권력자의 기분을 살피며 형성된 눈치 문화가 개인의 특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상황 파악이 더디고 충동적 언행이 많은 ADHD 환자 그리고 많은 소수자들이 그 문화 안에서 자신을 아끼며 산다는 건 쉬운 목표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세상이 나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 모른 채 세상의 틀 안에서 허우적대며 외치는 자유는 공허했다. 세계가 나를 다루는 방식과 자기 내면의 욕망을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내가 그렇게도 찾아다닌 자유의 조건이었다. 정신병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다중소수자로 산다는 건 그 '틀'의 경계를 끝없이 더듬어 만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시나마 모든 한계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만진 세상의 경계에 대해 얘기할 때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까지도 잘 때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꿨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잘 꾸지 않는다. 이전의 나는 문장 속 명사처럼 장소만 옮겨 다닐 뿐 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든 내가 바뀌어가는 것 같다. 나로부터 주변에 가 닿는 사소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답답하지 않다. 동사로서의 나다.

<좀머 씨 이야기>로 돌아가 글을 마치려 한다. 주인공 '나'에 대한 내 감정이입은  사실 소설 중반부터 '나'가 지켜보는 '좀머 씨'로 옮겨 간다. 그는 날마다 정처 없이 걷기만 하는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폐소공포증일 거라고 수군거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는 걷는다. 그리고 '그러다 죽겠다'며 말리는 이웃에게 외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

'그러니'라니. 죽음을 향해 걷게 하는 그 방랑벽은 정말 폐소공포증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을 알 수 없지만, 그도 달아나고 싶은 만큼 어딘가에 편안히 머물고 싶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 이번 주부터는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를 매주 연재합니다.
-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ADHD인들이 게으르다는 오해와 동시에 호기심과 열정이 많다는 모순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도파민의 양면적 기능 때문입니다. <도파민형 인간>에 따르면 도파민은 욕망회로(중변연계 회로)와 통제회로(중피질 경로)의 두 가지 회로로 작동합니다. 무언가를 한없이 원하게 하는 욕망회로가 폭주할 때, 통제회로는 제동을 걸어주고 전략 구상으로 '계획'을 가능하게 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평소 도파민 분비가 원활하지 않기에 부주의하고 불성실해 보이는 한편(욕망회로 작동 이상), 충동적이며 감정조절에 어려움(통제회로 작동 이상)을 겪습니다. 새롭고 신기한 것, 모험과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는데, 정신의학계에서는 이것이 부족한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한 보상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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