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0년 11월 19일부터 1월까지 '두 여자가 다시, 같이 삽니다'라는 제목으로 15개의 글을 연재하였다. 30년 넘는 육지생활, 15년 가까운 지리산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물 건너 이사를 했던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떤 내용의 글이 나오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된 글쓰기였다. 나로서는 무거웠던 결정의 무게를 글을 통해 좀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이런저런 건네고픈 말과 나누고픈 감정들이 생겨났고, 그것이 글이 되었다.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며 나를 바라보는 시간,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감정과 생각들을 보듬으며 정리하는 시간, 나의 글을 읽으며 함께 공감해주는 독자들의 시간들이 내 삶에 소중한 가치를 더해주었던 것 같다.
 
흐린 하늘, 검푸른 바다,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이 좋았던 날. 옥색의 고요한 바다와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주었다.
▲ 흐린 겨울날의 바닷가 흐린 하늘, 검푸른 바다,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이 좋았던 날. 옥색의 고요한 바다와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주었다.
ⓒ 이진순

관련사진보기

 
이제 제주 귀향살이 2년차에 접어든 지도 몇 달이 지나간다. 제주의 그림과 글들이 정겹게 어우러진 '열두 달 제주'라는 작년 다이어리를 쭉 다시 넘겨 보았다. 마치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는 듯, 포근한 에세이를 읽는 듯한 시간이었다. 매일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있던 직장생활 때와는 달리 나의 메모는 듬성듬성 들쭉날쭉이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맞는다.

제주에 내려오던 초기에는 머리카락을 들춰봐야 보이던 흰머리가 이젠 굳이 들추지 않아도 보인다. 그리고, 노안의 초입에 들어서서 아주 작은 글씨들은 안경을 벗어야 더 잘 보이는 낯선 경험도 하고 있다. 자신의 나이가 93세임을 알고는 "아이고"라며 고개를 젓는 어머니와 함께 이렇게 한 땀 한 땀 나이 들어간다.

신기하게 보이던 초록의 겨울밭, 섬 전역에서 붉게 아우성치는 겨울의 동백꽃도 2년차에 접어드니 여전히 신기하고 반가우면서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흐리고 바람 센 날, 검푸른 바다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오감으로 느끼며, 맑고 고요한 날의 옥빛 바다와는 또 다른 진한 맛을 느끼게도 되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로컬 푸드 매장에서 빌려온 제주 음식 관련 책을 보며, 앞으로 도전해볼 제주 음식 레시피를 적어두는 일도 가끔씩 하고 있다. 아주 느리지만 꾸준하게 제주와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와 1년 넘는 시간을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가면서도 치매, 늙음, 아픔, 죽음 등 무겁고 어두운 삶의 문제들과 매일 만나는 느낌이다. 피할 수 없음을 알기에 제대로 바라보려 한다. 무겁고 어둡고 아파도 그 역시 소중한 우리네 삶이므로.

역사상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이토록 비좁은 궁지에서 곤혹스러워한 적은 없었다는 글을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성장과 발전에는 병적으로 매달리는 데 반해 상실과 쇠락에 대한 소화 효소는 아예 메말라버린 듯한 이 불균형한 선진 문명이 나는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삶을 좀 더 깊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이제 제주살이 1년차 이야기에 이어 2년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전 연재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는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삶의 소소한 순간과 풍경들을 그리려 한다. 이전의 연재가 어머니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면, 이번 연재에서는 점점 친해지고 있는 제주의 이야기들도 쓰고 싶어질 것 같다.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주요 이야깃거리가 되겠지만, 아주 어설프지도 그렇다고 딱히 익숙하지도 않은 제주살이 2년차의 소소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도 내 마음이 서서히 이곳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고, 어느새 조금씩 사랑을 나누는 중인가 보다.

이전 연재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글을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미루지 말고 써야지라고 새해스러운 다짐도 해본다. 지난 설날에는 아들이 기타치고, 손자가 풀룻을 불고, 어머니와 며느리와 딸과 손녀가 함께 '등대지기'를 부르며 놀았다. 그 여파로 그 노래가 계속 입가를 맴돈다. 섬집아기, 오빠생각, 등대지기 등 동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저릿하면서도 평온하다.

태그:#어머니, #제주살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