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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선후보 TV 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선후보 TV 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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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며, 한국수화언어(이하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다.

어제(3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4명이 모두 참여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이 처음 열렸다. 나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이 궁금해 시간에 맞춰 TV를 켰다.

4명 후보자 발언을 한 명의 수어 통역사가 전달한 이번 TV 토론은 후보자의 공약이나 내용을 보기 전에 '지금 저 발언은 누구의 발언일까?'를 맞춰야할 만큼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TV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화면과 작은 원통 속의 수어 통역 화면을 동시에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지난 19대 대선 TV토론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2인 이상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라"라는 권고를 내린 만큼 '이번에는 바뀌었겠지'하는 기대감으로 TV를 켠 지 30분 만에 나는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의 징검다리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자 두 사람 중에 누가 발언하고 있는 거지? 오른쪽? 왼쪽?' 그러다가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4명이 동시에 나오면 내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갑자기 왜 4명이 동시에 나오지?' 그렇게 나는 TV 토론회가 진행되는 120분 동안 어느 쪽일까를 계속 맞추면서 TV토론을 시청했다. 

씁쓸했던 '한국 수어의 날' 인사 장면 

그렇게 끝나버린 TV토론 직후 나온 뉴스 화면에서는 때마침 이날(2월 3일)이 '한국수어의 날'이라며 앵커와 수어 통역사가 일대일로 나타나 수어 인사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TV토론의 작은 수어 통역 화면만 보다가 갑자기 수어 통역사가 커다랗게 나타난 훈훈한 장면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좋은 취지로 보여준 장면이지만 앞서 보았던 '대선TV토론에서도 이런 배려가 돋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난 2016년 2월 3일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인정하고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언어권보장과 삶의 향상을 위해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다. '한국수어의 날'은 이를 기념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하고 농인의 권리 확대를 기여하고자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법일 뿐이다. 법에 있는 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인 나는 현실에서는 여전히 힘겹게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을 시청할 수밖에 없다. 

단 하루, 보여주기식의 이벤트나 문서 속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법이 아닌, 정말 나의 언어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싶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대통령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후보자 1명에 수어통역사 1명' 배치가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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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다수 매체 인터뷰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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