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늦은 밤, 한국축구가 잠 대신 축구를 선택한 팬들에게 낭보를 전해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 대표팀은 1일(이하 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8차전 경기에서 시리아를 2-0으로 꺾었다. 이로써 한국은 오는 3월로 예정된 이란, UAE와의 남은 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시작으로 무려 10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최종예선 8경기에서 6승2무, 그리고 작년 3월 한일전 0-3 패배 이후 13경기 무패행진을 이끌며 한국의 본선 조기진출을 견인했다. 한국은 지난 9번의 월드컵에서 한 번도 빠짐 없이 본선진출에 성공했지만 언제나 이번처럼 여유 있게 본선티켓을 따낸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기까지 가슴 조렸던 위기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이라크 선수가 영웅이 된 '도하의 기적'

한국 야구에게 카타르 도하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지난 2006년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손민한(NC다이노스 투수코치) 등으로 구성된 야구 대표팀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대만과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 덜미를 잡히며 동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1993년 한국 축구에게 도하는 월드컵 3회 연속 진출이라는 기쁨을 안겨준 '기적과 축복의 땅'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일본, 북한을 만난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란을 3-0으로 꺾었지만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며 1승2무를 기록했다. 그리고 4번째 상대로 '숙적' 일본을 만나 미우라 카즈요시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하고 말았다. 한국은 무려 40년 만에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에 패했고 이 패배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한국은 북한과의 최종전에서 3-0으로 여유 있게 승리했지만 아무도 웃지 못했다. 동시간에 열린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에서 일본이 2-1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일본은 역대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고 한국의 월드컵 출전은 좌절된다(당시엔 대륙간 플레이오프도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과 축구팬들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일본과 이라크전 후반 추가시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기 종료를 앞둔 마지막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의 수비수 움란 자파르가 시도한 헤더가 그대로 일본의 골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과 이라크는 2-2로 비겼고 한국은 일본을 골득실에서 앞서며 극적으로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졸지에 한국의 영웅(?)이 된 움란 자파르는 훗날 귀빈 대우를 받으며 한국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비기고 독일을 궁지에 몰아 넣으며 크게 선전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자진사퇴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진짜 영웅' 차범근 감독을 앞세워 비교적 여유 있게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4년 후 2002월드컵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직행해 4강신화를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의 4강신화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바로 축구팬들의 눈높이가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4강을 만들어 놨으니 후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성과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한국축구 대표팀은 코엘류 감독 부임 후 2003년10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베트남과 오만에게 연패를 당했고 2004년3월에는 독일월드컵 2차예선에서 몰디브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에 축구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결국 코엘류 감독은 14개월 만에 경질됐다. 코엘류 감독 경질 후 한국 축구는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 국적의 조 본프레레 감독을 후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3-1 승리를 이끌며 축구팬들의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실전이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심한 기복을 드러내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은 2002년 4강신화의 주역들이 대거 출전했음에도 6경기에서 3승1무2패를 기록하며 A조 2위로 힘들게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물론 3위 우즈베키스탄보다 승점 5점이 앞서 있었지만 B조 1위였던 일본이 5승1패를 기록했던 것을 고려하면 본프레레호의 성적은 만족하기 힘들었다. 결국 본프레레 감독은 한국의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을 이끌고도 계속되는 비난 여론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한국 축구는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역시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선임해 출전했고 1승1무1패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최종예선 도중에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을 앞세워 최초의 원정16강을 달성한 한국축구는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을 통해 토종감독의 성공사례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1무2패)이었다. 그렇게 다시 외국인 지도자의 필요성을 느낀 한국축구는 2014년 9월 홍명보 감독의 후임으로 레알 마드리드CF의 수비수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대표팀 부임 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을 이끌며 침체에 빠졌던 한국 축구의 새로운 구세주로 떠오르는 듯 했다. 하지만 슈틸리케호는 중국, 시리아, 카타르,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한 조가 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리아 원정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한 슈틸리케호는 이란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그리고 2017년 3월 이탈리아의 독일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이끈 중국에게 0-1로 패하며 지도력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축구팬들에게 신뢰를 잃어가던 슈틸리케 감독은 3개월 후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원정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한국에서의 감독생활을 초라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한국은 2016년 리우올림픽 감독이자 슈틸리케호의 수석코치를 지냈던 신태용 감독(인도네시아 감독)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이란과의 홈경기와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각각 0-0으로 비겼고 승점 15점으로 3위 시리아를 2점 차이로 제치고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1득점10실점으로 골득실이 +1에 불과했을 정도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아 축구팬들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다행히 본선무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꺾으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월드컵 도하의 기적 조 본프레레 울리 슈틸리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