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막한다. 한국은 4년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이었고 베이징은 한국과 시차가 1시간 밖에 나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약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 다음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둔 국내외의 열기는 지금까지 열렸던 여러 동계 올림픽들과 비교해도 기대만큼 뜨겁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주요국가들은 중국과의 무역갈등과 홍콩, 대만을 향한 중국의 억압, 코로나바이러스 전 세계 확산에 대한 무책임 등에 대한 항의로 이번 올림픽에 대해 크고 작은 항의의 뜻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등 상당수의 나라들에서 이번 동계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무리 '반중(反中)'을 외치고 있는 나라들도 4년간 올림픽을 목표로 땀을 흘린 선수들의 참가의지까지 막을 순 없었다. 

캐나다나 네덜란드, 노르웨이처럼 눈과 얼음이 익숙한 나라에서는 동계스포츠가 발전했지만 좀처럼 눈을 보기 힘든 중남미나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에서 동계스포츠는 매우 낯선 종목이다. 사실 대한민국 역시 쇼트트랙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평창올림픽 전까지 동계스포츠가 크게 발전한 나라는 아니었다. 이는 국내 최초 스키점프 선수들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도전기를 그린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에도 자세히 표현돼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스포츠 영화 중에서 <국가대표>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없다.

현존하는 한국의 스포츠 영화 중에서 <국가대표>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없다. ⓒ (주)쇼박스

 
뛰어난 흥행감각 갖춘 '쌍천만' 감독

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김용화 감독은 2000년 16mm 필름으로 찍은 졸업작품이자 단편영화 <자반고등어>를 연출해 대한민국 영상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 이정재와 이범수가 형제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 <오!브라더스>를 만들었다. 김용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오!브라더스>는 전국 310만 관객을 동원했고 김용화 감독은 데뷔작으로 범상치 않은 흥행 감각을 과시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김용화 감독은 2006년 <별난 여자 별난 남자>로 주목 받기 시작한 신예스타 김아중을 캐스팅해 차기작 <미녀는 괴로워>를 선보였다. '전신성형'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담은 <미녀는 괴로워>는 전국 6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다. 2009년에는 일반 관객들에게 낯설기 짝이 없는 스키점프라는 종목을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84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김용화 감독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김용화 감독도 언제나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자비를 털어 시각효과 스튜디오까지 설치하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미스터고>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으며 전국 130만 관객에 그친 것. <미스터고>는 중국에서의 흥행을 바탕으로 손해를 어느 정도 만회했지만 실패를 모르던 김용화 감독의 질주에 처음 제동이 걸린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용화 감독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김용화 감독은 2017년 주호민 작가의 인기웹툰 <신과 함께>의 판권을 구입해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으로 이어지는 두 편의 대형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저승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가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았던 판타지 장르의 영화였던 <신과 함께>는 흥행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편으로 나눠 개봉한 <신과 함께>는 무려 2660만 관객을 동원하는 '초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김용화 감독이 <미스터고>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시각효과 업체 덱스터 스튜디오는 김용화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백두산>과 <모가디슈>는 물론이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승리호>의 CG작업에도 참여했다. 텍스터 스튜디오의 CG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그 기술력을 인정 받으며 한국영화의 CG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화 감독은 최근 김태곤 감독의 재난영화 <사일런스>의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낯선 동계스포츠였던 스키점프 알린 영화
 
 성동일(왼쪽)을 포함한 5명의 주역들은 한국의 첫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성동일(왼쪽)을 포함한 5명의 주역들은 한국의 첫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 (주)쇼박스

 
<국가대표>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되고 전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 코치(성동일 분)를 중심으로 오합지졸 선수들이 모여 올림픽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김용화 감독 특유의 흥행감각으로 버무려 웃음과 감동코드가 적절하게 녹아 있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실제로 <국가대표>는 일반 대중들에게 낯선 종목이었던 스키점프를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의 나가노 올림픽 도전기'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국가대표>는 사실을 기반으로 재창조한 '팩션'에 가깝다. 실제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될 당시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에 도전하지 않았고 영화처럼 코치의 딸(이은성 분)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일도 없었다(당시 한국 스키점프 코치는 독일인이었다). 김용화 감독도 영화 도입부에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임을 확실히 못 박았다.

지나친 애국주의 강요 등 비판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 영화로서 박진감 넘치면서도 웅장한 스키점프 경기 장면은 관객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대단히 실감나게 연출됐다. 실제로 <국가대표>가 세운 800만 관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스포츠 영화 최고 흥행기록으로 남아있다. SBS에서는 2010년 설 연휴 밴쿠버 올림픽 기간에 곧바로 감독판을 방영하기도 했다.

같은 동계스포츠를 소재로 하다 보니 <국가대표>는 어쩔 수 없이 '동계스포츠 영화의 바이블' <쿨러닝>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의 땀과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따라간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고민하는 선수가 나오고 술집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무명 팀이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는 등 <쿨러닝>과 비슷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국 820만 관객을 동원한 <국가대표>는 7년이 지난 2016년 종목이 스키점프에서 여자아이스하키로 바뀐 <국가대표2>가 개봉했다. 올림픽이 아닌 동계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헤어진 자매(수애와 박소담)가 남북대결을 벌인다는 극적인 설정을 추가했지만 억지스런 신파라는 비판 속에 전국 70만 관객에 머물렀다. 다만 여자 아이스하키가 소재였던 만큼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강칠구-최흥철 선수는 영화 속 캐릭터로 출연
 
 방종삼 코치의 딸 방수연을 연기했던 이은성(왼쪽에서 두 번째)은 <국가대표>를 끝으로 긴 공백기를 보내고 있다.

방종삼 코치의 딸 방수연을 연기했던 이은성(왼쪽에서 두 번째)은 <국가대표>를 끝으로 긴 공백기를 보내고 있다. ⓒ (주)쇼박스

 
<국가대표>는 실제 2010 벤쿠버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던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이 배우들의 코치 역할을 해줬고 영화 속에서 스키점프 장면의 대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강칠구 선수와 최흥철 선수는 각각 배우 김지석과 김동욱이 영화 속에서 선수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강칠구와 최흥철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실제 선수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김지석이 연기한 강칠구는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고 할머니(김지영 분), 동생 봉구(이재응 분)와 함께 살아간다. 할머니, 동생을 두고 군대에 갈 수 없어 스키점프를 시작한 것으로 설정됐다. <뭉쳐야 찬다2>에 출연하며 '손흥민 닮은꼴'로 유명세를 탄 강칠구는 부모님도 생존해 계시고 남동생이 아닌 여동생이 한 명 있다. 그리고 실제 강칠구 선수는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노멀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혜택을 받았다.

김동욱이 연기한 최흥철은 영화 속에서 최고의 트러블메이커로 나온다.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전전하다가 병역혜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스키점프를 시작하지만 사사건건 팀의 주장 차헌태(하정우 분)와 트러블을 일으킨다. 영화 속 최흥철은 약물사용으로 메달이 박탈된 전적이 있는 문제아로 표현된다. 하지만 실제 최흥철 선수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올림픽 6회 출전기록을 가진 한국 동계올림픽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영화 속에서 문제아 최흥철이 마음을 잡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은 방 코치의 딸 방수연이었다. 물론 다단계에 빠지고 사채를 쓰면서 아버지까지 곤경에 빠트리지만 수연은 스키점프 대표팀의 마스코트로 선수들의 훈련을 돕는다. <국가대표>의 흥행으로 배우로 자리를 잡는 듯하던 이은성은 갑자기 활동이 뜸해지더니 2013년 돌연 '문화대통령' 서태지와의 결혼소식을 알려와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국가대표 김용화 감독 하정우 성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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