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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맞춰'라는 말이 딱 오늘을 두고 한 말일까. 설날인 줄 알아서 제때 눈과 추위를 내려주었다. 날을 여는 새벽, 그것도 설날 새벽인지라 한번 깨어난 잠을 다시 청하자니 왠지 어제 지나간 까치에게 염치없을 것 같아 지나간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작년에 필사했던 시 노트였다. 자작시를 쓸 재주가 없어서 핑계 김에 어느 시인이 어떤 글로 설날을 전했을까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를 읽었다.

시 구절 중에서도 나는 이 부분을 참 좋아한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

- 김종길<설날 아침에> 중에서

사실 결혼 24년 만에 남편 없이 설을 맞이하기는 처음이다. 다른 날도 아닌 설날을 앞두고 지극히 가족사랑이 남다른 남편이 어디 갔을까. 안타깝게도 병원에 있다. 오늘 아침 떡국 역시 병원에서 먹을 것이다. 어제는 친정엄마가 만들어준 달콤시원한 식혜를 가지고 갔더니 연거푸 두 잔을 마시면서 '역시 이 맛이 어머니 맛이지'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3주 전 남편과 나는 3차 백신접종을 했다. 오미크론까지 가세하고 학원이라는 공공현장에서 우리 부부와 학원 선생님들의 백신접종은 늘 다른 사람보다 빨랐다. 5년 전 뇌졸중과 연이은 뇌경색으로 인해 지병을 가지고 있던 남편 역시 백신접종을 의무적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1차와 2차에 특별한 이상 반응없이 지나갔기에 의심없이 3차접종을 했다.

3차 접종 후 남편에게 이상반응이 왔다. 접종 첫날에는 머리가 좀 아프다는 정도였지만 둘째 날에는 왼쪽 눈이 빠질 것처럼 통증을 느껴서 단순히 안과만 찾았다. 그런데 원인은 편두통에 있었고 그 근원은 백신 부작용이었음을 3일째 들었다. 접종을 했던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지금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고, 일단 링거 한 대 맞고 이 약(타이레놀 포함) 드시면서 차츰 상황을 보시게요"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어서 생겼다. 뇌경색으로 생겼던 복시(사물이 두 개로 보임) 현상이 다시 생긴 것이다. 병원문을 나서면서 걸음걸이에 엇박자를 느끼고, 자동차 문의 위치가 두 개로 보인다고 했다. 당연히 내 모습은 두 개, 왼쪽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다고 했다.

지난 4년간에 걸쳐 남편은 스스로 복시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뇌경색으로 인한 안과질환이기 때문에 눈 만을 위한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다는 말을 수 백번 들어왔었다. 그래서 겨우 작년에야 조금씩 운전도 하게 되고, 자신감도 얻게 되었는데, 다시 또 같은 상황이 생기니 남편은 급속도로 침울해졌다.

게다가 이번 질환이 코로나 3차 접종과 직접 연관되었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다. 후배의 조언으로 일단 보건소에 신고하고 지역의료원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복시 현상을 백신부작용이라고 정의해주지 않았다. 나도 역시 기다려보자고, 방송에서 나오는 부작용 중의 하나일지 모르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말로만 위로했다.

방학중이어서 집에 있는 아들이 학원 차 운행을 맡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3차 백신을 앞둔 아들이 접종을 거부했다. 방송에서 떠도는 3차 부스터 샷에 대한 갖가지 말을 두고 정부방역지침에 부정적 입장이었는데 남편의 부작용을 보더니 단호하게 접종하지 않겠다고 선회했다. 이를 두고서도 나와 한차례 실랑이가 벌어졌고 가족 모두가 처음으로 코로나로 인한 백신접종과 그 부작용에 대해 여러 각도를 바라보게 되었다.

눈이 불편하니 외출을 할 수도 없던 남편이 혈압상승과 기타 이유로 결국 병원행을 선택했다. 복시 발생 직후 나를 바라보던 남편의 눈동자 위치는 위 아래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간격이 다소 좁혀졌다. 며칠 전 한 방송인도 3차 백신 부작용으로 안과 질환이 생겼다고 했단다. 그걸 본 가족들은 남편도 부작용 맞네 라며 정부에 무슨 조치를 해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의 말을 전했다.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 보며 사위 걱정하는 친정엄마. 생선을 찜 솥단지에 넣을 때마다 병원에 있는 사위 얘기를 하셨다. '우리 김서방이 좋아하는 건디.'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 보며 사위 걱정하는 친정엄마. 생선을 찜 솥단지에 넣을 때마다 병원에 있는 사위 얘기를 하셨다. "우리 김서방이 좋아하는 건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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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와 달리 이번 설 전날에는 시댁 대신 친정집에서 엄마를 도왔다. 남편이 좋아하는 부침전, 찜 생선과 다른 음식을 보면서 엄마가 먼저 말했다. "우리 김서방이 잘 먹는 건디. 내일 아침 병원에 갖다줄 수 있겄냐? 식혜도 좀 더 갖다가 마시라고 하고. 본인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오냐오냐 챙기겄냐. 이런 설날에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것이 큰 복 받는 거지."

남편은 매일 약속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2월까지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열심히 물리치료도 받고 눈 운동도 하면서 이겨내겠다고. 수업하랴, 중간중간 학원 차량하랴 바쁜 나에게 염치가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살아가는 것 그 모두가 우리가 일부러 만들어서 불행한 것은 없다고. 살아있으니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는 것이라고. 내 맘 하나 다스리면 세상에는 행복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니 남편의 눈가에 물기가 젖어들었다.

아마도 오늘 설날은 아주 오랫동안 추억될 우리 부부의 사진이 될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더욱더 존중하고 아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화가 오히려 약이 되는 시간을 얻었구나 생각하면 특별히 억울할 것도 괴로울 것도 없다고 말해주니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설날 새벽을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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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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