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미국, "나토 동진 포기" 약속 뒤집어 러시아 반발

미 조지워싱턴대가 2017년 12월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90년 1월 31일 한스-디트리히 겐셔 당시 독일 외무장관이, 2월 9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고르바초프에게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얻어 내기 위해 "나토를 동유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의 국가지도자들 역시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서방 지도자들은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하기 위해 고르바초프에게 "구 바르샤바 가입국가들을 나토로 가입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 붕괴 직후부터 나토의 동진을 추진하였고 1993년이 되면서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나토 가입이 구체화됐다.

미국 등 나토는 1997년 5월 '나토-러시아 상호관계, 협력, 안보에 관한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러시아에게 "신규 회원국의 영토에 군사력이나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1990년 통독합의 정신을 인용하며 동유럽의 나토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을 주장했지만 무시당했다.

서방은 러시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2002년 나토와 러시아의 안보협력을 제도화한 '나토-러시아이사회(NRC)'를 창설했다. 1999년의 폴란드·헝가리·체코, 2004년 불가리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의 나토 가입이 성사됐다.

나토와 EU에 결합해 서방과 공존하려는 러시아를 배척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면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단극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미국의 고압적인 자세는 러시아인들의 반미성향을 자극했다. 미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양육하다시피 한 옐친까지도 나토의 동진과 미국의 1999년 유고슬라비아 개입 이후 미국의 이런 태도에 반발했다.

옐친시대 러시아는 쇠퇴한 자신의 국력을 자인하고 미국 및 서방과 공존하는 것을 모색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직무대행 겸 총리는 나토 가입을 타진했으나 러시아의 유럽 영향력 증대를 우려한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했다.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경제위기를 겪은 러시아가 경제발전을 위해 유럽연합에 가입할 의사를 비쳤으나 역시 거부당했다.

미국의 대러 강경책과 이에 따른 러시아 내부의 반미성향은 푸틴을 강경파로 만들었다. 고르바초프와 엘친의 무기력에 실망한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푸틴에게 장기집권의 길을 만들어주었다. 미국이 중동에서 수차례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고, 북과의 대화를 거부해 핵무장 사태를 초래한 것도 이러한 미국의 오만이 빚은 결과라고 본다. 

미국, 러시아 국경에 핵무기 배치해 군사적 굴복을 노리다

미국은 러시아의 인접 국가를 나토에 가입시킴으로써 러시아의 국경에 러시아가 대처할 여유시간을 주지 않는 핵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했다. 그러한 목표가 실현된다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부카레스트 나토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의 인접국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미국의 구상이 공개됐다.

미국은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조지아를 부추겨 러시아와 전쟁을 하도록 하는데 성공해 조지아는 미국과 서방의 군사지원이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나토-러시아 관계 악화를 우려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나토 가입을 반대했다. 이후 미국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을 부추겼듯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악화시키고자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크라이나 공산당 최고지도자 출신의 니키타 흐루쇼프는 소련의 수상이 된 직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호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양도했을 정도이다. 크림반도 주민 중 러시아인이 과반수인 반면, 우크라이나인은 25% 수준이었기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1992년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크림반도는 독립공화국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까지 마련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합의를 통해 독립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에 남았다. 1994년 러시아, 미국, 영국은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자국에 배치된 1,900개의 러시아 핵탄두를 러시아로 보내는 대신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전쟁설 유포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파탄을 종용

미국이 과거 소련연방에 속했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개입을 증대시키고, 나토가 이를 위해 동진함으로써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됐다. 미국은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시켜 미국의 위성국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미국은 이를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 등 미국의 가치를 무기로 활용했다.

2004년 친미세력은 오렌지혁명으로 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나 2010년에는 친러세력이 집권했다. 2014년 친미세력은 부패와 독재를 이유로 무력시위를 감행해 친러세력과 충돌했으나 친러 대통령이 러시아로 망명함으로써 쿠데타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의 민족 구성이나 역사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위성국가로 만들려는 시도는 우크라이나를 내분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러시아계가 다수인 크림반도는 2014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했으며, 친러 성향의 동부지역도 독립공화국을 선포했다. 이들 지역은 우크라이나와 이미 내전 상태로 돌입하였으나 현재는 2014년 민스크협정에 따라 불안정한 휴전이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러시아로부터 이탈해 미-러 사이의 완충국가가 됐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최소한의 목적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러시아가 전면전을 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을 줌으로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반러 정서는 러시아로부터 안보불안을 겪고 있는 동유럽의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고, 그 결과 러시아는 고립된다.

나토 가입 하면 미국과 나토는 자동으로 러시아와의 전쟁 개입

연일 전쟁설을 유포하고 있는 미국은 경제제재를 중심으로 하면서 제한적인 미군 파견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서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 제재를 통해 양자의 관계를 적대화시켜, 천연가스 수출 등 러시아의 유럽 진출을 봉쇄하고자 한다. 이미 냉전 직후 케넌이 지적하듯이 미국이 핵보유국과 전면전을 하기보다는 전쟁 위기 상태의 봉쇄정책을 유지하고 필요하면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대리전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론은 미국에 유리하고 러시아에 불리하다.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통해 자신의 앞마당에 다른 강대국의 진입을 거부하듯이 러시아 역시 동유럽에서 나토의 신규 가입 중단과 군사력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푸틴은 "쿠바사태에서 보듯이 미국 역시 자신의 현관에 러시아의 미사일이 배치된다면 가만히 있을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따라서 러시아는 자신과 무력분쟁을 겪고 있는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인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나토헌장 제5조 상호방위조항에 의해 미국과 유럽연합은 자동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전쟁 상태에 돌입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전쟁을 한다면 나토와 미국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나토 개입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신호를 서방에 보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예방하기 위한 전면전은 무리수다. 러시아는 소련의 아프가니탄 침공과 같은 점령전쟁으로 이미 많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대규모 정규군으로 우크라이나를 포위하여 미국과 나토의 군사적 개입을 최대한 막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친러세력을 지원하여 우크라이나를 내전상태로 유도하여 친미정권의 자멸을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하고 중립지대화 해야

물론 미-러의 가능한 절충안은 우크라이나를 중립지대화를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다수는 서방과 러시아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최근 친서방 성향의 정권조차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을 유포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할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설이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식량을 의존해왔으며,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의 75%, 석유의 50%를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러시아와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과거 친미정부는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삭제하는 등 탈러시아 정책을 강행하여 러시아계 주민의 반발을 초래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다른 동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서유럽처럼 잘 살고 싶어 한다. 미국과 서방은 그러려면 나토에도 가입하라는 입장이다. 즉 경제적 보상으로써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미국식 정치경제군사 체제를 확실하게 이식하겠다는 의도다.

친미와 친러의 운명의 갈림길, 한반도와 유사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미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예비전력을 확보했다고 해도 중국, 러시아, 북과 군사적 대결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 미국이 러시아와 군사적 대결을 한다면 미국은 그만큼 가용할 군사력에 공백이 생긴다.

중국은 그 공백을 이용해 타이완과 남중국해에서 좀 더 과감한 군사적 행보를 할 수 있다. 북은 중러북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구체화해 미국에 맞서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얻을 수 있다.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향한 미국의 예봉을 분산시키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핵전쟁 위기를 더 고조시켜 판돈을 키울 수 있다.

잘 살려면 미국과 유럽에 협력해야 하고, 안보 불안을 해소하려면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처지는 대한민국과 유사하다. 우리 역시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과 친해야 하고, 군사적 종속으로 보면 미국과 친할 수밖에 없다. 친미파와 친러파가 교대로 정권을 잡고 무력투쟁을 하는 것도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면 미국과 군사적 관계를 끊으라는 중국, 전쟁 위기를 원치 않으면 중국 대신 우리에게 충성하라는 미국 사이에서 우리 여론은 이미 갈라져 있다.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는 아예 친미반중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은 자기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능력이 없이 외세에 의존한다면 강대국들에 의해 나라가 갈라지고 형제 사이에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50년의 비극이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는 것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https://ohhangang.blogspot.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