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 출신의 황찬성과 EXO의 첸, 아이콘의 바비는 최근 결혼 발표를 한 아이돌 그룹 멤버다. <상속자들>과 <닥터스> 등에 출연했던 박신혜도 지난 22일 한 살 연하의 동료배우 최태준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결혼 전에 아빠 또는 엄마가 된다는 소식을 먼저 알렸다는 점이다. 흔한 말로 '속도위반'으로 불리는 혼전임신을 한 것이다.

과거에는 혼전임신이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엔 '혼수'라고 부를 정도로 혼전임신에 대한 시선이 많이 관대해졌다. 사실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데다가 두 사람 모두 아이를 원하고 있다면 굳이 일부 삐딱한 시선 때문에 결혼을 할 때까지 임신을 억지로 미룰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결혼 전, 대중들에게 혼전임신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혼전임신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관대해지면서 이를 소재로 삼은 코미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번의 혼전임신으로는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대를 이은' 혼전임신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뛰어난 흥행감각을 보유한 강형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박보영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렸던 가족 코미디 영화 <과속스캔들>이었다.
 
 <과속스캔들>은 강형철 감독과 박보영에게 여전히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다(차태현은 <신과 함께-죄와 벌>).

<과속스캔들>은 강형철 감독과 박보영에게 여전히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다(차태현은 <신과 함께-죄와 벌>). ⓒ 롯데 엔터테인먼트

 
8개 영화제 신인상 휩쓴 준비된 신인

잘 자란 아역 출신 배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된 박보영은 중학시절 영화동아리 활동을 통해 처음 연기를 접했다. 여기서 만든 단편영화 <이퀄>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현실도전상을 받으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 해 EBS의 청소년드라마 <비밀의 교정>에 캐스팅되면서 박보영은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널리 알려진 것처럼 박보영의 데뷔 동기가 바로 '한류스타' 이민호다).

드라마 <마녀유희>에서 한가인 아역과 <왕과 나>에서 구혜선 아역을 연기한 박보영은 드라마 <최강칠우>와 영화 <울학교이티>를 거쳐 2008년 영화 <초감각 거플>과 <과속스캔들>에 연이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2008년11월에 개봉한 저예산 영화 <초감각 커플>은 전국3700명의 관객에 그쳤지만 박보영은 일주일 후에 개봉한 <과속스캔들>을 통해 곧바로 아쉬움을 털어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8년12월에 개봉한 <과속스캔들>은 2008년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 연말, 2009년 설날 특수까지 모두 누리며 전국 8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이 작품은 여전히 강형철 감독과 박보영의 최고흥행작이고, 차태현 역시 2017년 <신과 함께-죄와 벌>을 만나기 전까지 <과속스캔들>이 생애 최고 흥행작이었다.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을 통해 무려 8개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며 한국영화계의 특급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이후 소속사와의 마찰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 2년의 공백을 가졌고 복귀작 <미확인 동영상>도 기대만큼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송중기와 함께 출연한 <늑대소년>이 전국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2015년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사랑스러운 연기를 통해 7%가 넘는 시청률을 견인하며 '역시 박보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보영은 영화 <돌연변이>와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jtbc 역대 드라마 최고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2017년8월말에 개봉한 <너의 결혼식> 역시 전국 282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보영 파워'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작년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를 마친 박보영은 최근 이병헌, 박서준 등과 함께 재난 스릴러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촬영을 마쳤다.

소재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유쾌하고 건전
 
 <과속스캔들>의 세 가족은 함께 지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동화된다.

<과속스캔들>의 세 가족은 함께 지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동화된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큰 고민 없이 지은 듯한 제목과 '마약, 성형, 섹스스캔들보다 무서운...'이라는 카피를 보면 <과속스캔들>은 온갖 치정이 난무하는 아침 드라마급 막장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순수하기 짝이 없는 세 주인공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전재가 펼쳐질 거란 생각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실제로 <과속스캔들>은 '혼전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만 사용했을 뿐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아주 건전한 가족드라마다.

실제로 <과속스캔들>에서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애틋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공연을 마치고 기동(왕석현 분)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제인(박보영 분)이 화장이 엉망이 된 채로 현수(차태현 분)에게 오열하며 매달리는 장면은 상당히 가슴 찡하다. 생방송을 진행하던 현수도 울부짖는 딸을 보고 방송사고를 감수하며 청취자들에게 기동을 찾아달라고 호소한다(하지만 정작 기동은 할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달라고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아빠와 딸을 연기한 차태현과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을 계기로 대단히 절친한 사이가 됐다. 지난 2013년에는 차태현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박보영을 위해 영상편지를 찍어 보냈고 2015년엔 박보영이 차태현의 영화촬영 현장에 간식차를 보내기도 했다. 박보영은 차태현의 여사친 자격으로 <1박2일 시즌3>에도 출연했고 작년에는 <어쩌다 사장>에서 알바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과속스캔들>은 현수가 라디오 DJ, 제인이 가수지망생으로 나오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음악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박보영은 OST를 직접 소화할 만큼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그건>과 <선물> 등 영화 속 주요 OST는 뮤지컬배우 홍민정이 대신 불렀다. 박보영은 제인의 첫사랑 상윤(임지규 분)이 제인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에서 부른 모자이크의 <자유시대> 한 곡만 직접 불렀다.

장편 데뷔작 <과속스캔들>을 통해 820만 관객을 모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강형철 감독은 2011년 두 번째 영화 <써니>로 7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보증수표로 떠올랐다. 2014년 <타짜: 신의 손> 역시 최동훈 감독이 만든 전 편만 못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400만 관객으로 선전했다. 강형철 감독은 2018년 147만에 그친 <스윙키즈>로 첫 흥행실패를 경험했지만 <스윙키즈>는 강형철 감독에게 백상예술대상 영화 감독상을 안긴 작품이 됐다.

절친한 동생에게 진심 어린 충고해주는 선배
 
 성지루는 차태현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절친한 선배를 연기했다.

성지루는 차태현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절친한 선배를 연기했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과속스캔들>은 제작 당시만 해도 검증되지 않은 신인감독이 연출한 영화였기 때문에 순 제작비 27억 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남현수 역의 차태현을 제외하면 화려한 배우진으로 라인업을 꾸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강형철 감독과 제작사에서는 황제인 역의 박보영과 황기동 역의 왕석현을 비롯해 적재적소에 영리한 캐스팅을 통해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남현수가 첫 눈에 반한 기동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 역은 <미쓰 홍당무>를 통해 엉뚱한 매력을 발산했던 신예 배우 황우슬혜가 연기했다. 황우슬혜는 <과속스캔들>에서도 조곤조곤한 말투로 남현수의 뼈를 때리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했다. <과속스캔들> 이후에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황우슬혜는 지난 2017년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노량진의 인기영어강사 황진이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남현수에게 전성기가 지났다는 '불편한 진실'을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밴드동료이자 절친한 선배 창훈 역은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성지루가 맡았다. <과속스캔들>에서도 주로 개그캐릭터를 담당했지만 남현수가 제인과 싸우고 창훈을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솔직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중요하냐. 뜬금 없이 찾아왔어도 네 자식이 중요하냐. 지들이 알아서 다 커서 왔으면 그게 땡큐지 임마"라며 남현수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다.

차태현,김종국,장혁과 함께 '용띠클럽 멤버'이이자 차태현과 '홍차'라는 듀오를 결성하기도 했던 가수 겸 배우 홍경민은 남현수의 라이벌 김준영 역을 맡으며 <과속스캔들>에 우정 출연했다. 악성 연예부 기자(임승대 분)의 폭로로 기자에게 앙심을 품고 남현수의 기자회견장에 찾아와 기자를 폭행하는 역할이었다. 덕분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관심은 모두 김준영의 기자폭행사건에 쏠리고 남현수의 과속스캔들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과속스캔들 강형철 감독 박보영 차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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