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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편집자말]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 (중략) …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솔개>, 시인생각, 2013. 16~17쪽


설 연휴입니다. 어떤 시를 소개할까 하다가, 김종길 시인의 시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화자가 말하는 설날의 아침은 참 편안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점, 마음에 쌓였던 묵은 지난해의 짐들을 마지막 해에 묻어버리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많은 분이 동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종길 시인의 시집
 김종길 시인의 시집
ⓒ 시인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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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설날 아침을 언제나 시골집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도시보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낯선 바람은 아닙니다. 상쾌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당하죠. 항상 이와 같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런데 올해 설의 아침 바람은 다르게 느껴질 듯합니다.

명절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명절뿐만이 아니죠. 연말연시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중심의 삶을 보내는 저로서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바뀐 것이 없고, 회식과 술자리를 꺼리기에 한편으로 마음 편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삶을 생각할 때 코로나19는 어서 종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몇 년 더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명절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을 듯합니다.

한 해, 한 해 명절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육형제의 맏이인 아버지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이 있는데요 이제 명절에 찾아오는 형제도 몇 되지 않습니다. 찾아온다고 해도 명절 아침에 잠깐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가 버립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이면 큰 형 집을 찾아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삼촌의 자녀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자 뜸해지고 흩어지더군요. 꼭 오라고 전화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던 아버지도 언제부터인가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합계 출산율 0.8명인 시대, 만약 10년이 더 지난 2030년쯤이면 우리의 설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적잖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 사촌이 함께 모였던 명절 문화는 완전히 소멸하고 부모와 자식이 모여 단란한 식사를 하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것이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인 가구의 수가 31.7%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더 증가하겠죠. 1인 가구란 '나 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취업, 생계, 사별 등의 이유로 혼자 살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듯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절의 유명무실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계속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명절이 있어서 가족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형식에 얽매이는 명절이라면 반대합니다. 그 누구도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죠.
 
주영헌 시인의 시집
 주영헌 시인의 시집
ⓒ 주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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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주영헌

하루를 마친 가족들 밥상머리 둘러 앉습니다.
숟가락 네 개와 젓가락 네 벌
짝을 맞추듯 앉아 있는 이 가족
조촐합니다.


(중략)

변변한 찬거리 없어도
이 밥상,
숟가락과 젓가락이 바쁩니다.
숟가락 제때 들 수 없는 바깥세상
시간을 쪼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둘러앉게 한 것은
모두 저 밥상의 힘이었을까요.

어린 날 추억처럼 떠올려지는
옹기종기 저 모습,
참으로 입맛도는 가족입니다.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시인동네, 2016. 106~107쪽


명절이 뭐 특별할 필요가 있습니까. 격식이라는 것에 맞춰 아이들 손이 가지도 않는 제사상 차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 시 '밥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소박하지만 맛있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밥상이 있는 명절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형식과 격식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원래 마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이 형식입니다. 마음이 없으니 형식이라는 습관이라도 유지하려고 한 것이죠.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https://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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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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