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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은 높이고 노동시간은 줄이는 최선의 노력으로 일하는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월 26일 발표한 노동 공약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의 뒤에는 "노동존중 제대로"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많은 언론이 노동 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으며, 보수 언론은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은 1월 28일 칼럼 <노동개혁 외면하며 청년 표 달라고?>에서 "민주노총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친노동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작 민주노총은 1월 26일 입장문을 통해 "실망스럽다"는 총평을 내놓았다.

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 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좋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동 시간 단축만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이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일하는 시간 줄이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내용적 범주가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간-노동강도-시간배치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트로 인식해야 한다."
(<노동분할시대, 노동시간 유연화에 맞서는 노동시간 단축운동 방향>, 199쪽) 
"강도와 배치에서 노동의 권리가 약화되는 것은 길이 단축을 통한 긍정적 변화를 축소시키며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부정적 결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노동분할시대, 노동시간 유연화에 맞서는 노동시간 단축운동 방향>, 200-201쪽)
 
민주노총이 2016년 6월 정책연구원 기획으로 펴냈던 <노동분할시대, 노동시간 유연화에 맞서는 노동시간 단축운동 방향>(이혜은, 김경근, 김영선, 전주희, 이이령)의 결론 일부이다.

"생산성은 높이고 노동시간은 줄이는"이라는 이재명 후보의 짧은 표현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이미 5년 전에 민주노총이 제기한 노동 시간 단축과 관련된 문제 의식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다. 노동자와 경영진 표를 모두 얻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노동 정책이라면 말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은 OECD 평균보다 높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노동 강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강화된 노동 강도는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해치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시간 단축을 통한 긍정적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시간-노동강도-시간배치'와 노동자들의 다양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 상황 속에는 성별과 나이도 들어 있다.
 
이소진이 쓴 책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표지 이소진이 쓴 책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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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노동자들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노동 시간 단축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글쓴이 이소진이 2019년에 썼던 석사학위논문 <표준노동시간 단축이 중년여성의 일과 생활에 미친 영향 – B대형마트 캐셔를 중심으로>를 재구성하고 보완해 펴낸 책이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계산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에 시간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신세계 이마트는 2017년 12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1시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임금 감소 없는 노동 시간 단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노동자들은 1시간의 여유로운 삶을 선물받았을까?
 
"노동시간 단축이 생활에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시행된 정책임에도 노동시간이 불규칙하게 배치되면서 노동자들은 시간을 더 활용하기가 어려워졌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260쪽) 
"노동시간 단축 이전, 중년여성에게 노동은 소득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했다. … 그러나 노동시간이 단축된 이후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노동력 및 노동시간 배치가 파편적으로 변화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노동과 노동현장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일터가 더 이상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삭막한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244쪽)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노동자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 '노동 시간 단축'이 노동 강도 강화와 불규칙한 시간 배치로 인해 시간 단축 이전에 누리던 여유마저 빼앗아간 재앙임을 보여준다.
 
2017년 12월 신세계 그룹은 노동 시간을 하루 1시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 노동 시간 단축 발표 기사 2017년 12월 신세계 그룹은 노동 시간을 하루 1시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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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H그룹 B대형마트는 노동 시간 단축 이후에도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아파도 휴가를 내지 못했다. 일이 줄어들지도 않아 노동력 부족이 훨씬 심해졌다. 회사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준비 시간을 줄이고, 노동 시간을 무작위로 배치했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휴식도 건강도 계획할 수 없는 조각난 시간"만 남게 됐다(<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245쪽).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여성 노동자, 특히 중년 여성 노동자의 노동 현실이 지니는 차이와 복잡한 의미도 세심하게 들여다 보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여성들에게 노동은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일할 권리를 위한 투쟁의 대상이다.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한 이후에도 임금과 승진 기회에 차별이 존재하고, 노동 과정과 결과에 대한 편견과 평가절하가 따라다닌다. 중년 여성들에게는 '아줌마'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추가적인 선입견과 부담이 덧붙여진다.
 
"남성노동자에게 마트에서 바라는 자질이 물리적인 힘과 고객에게 주는 신뢰라면, 여성노동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엄마의 자질'이다. 마트는 여성노동자가 남편과 자녀를 상냥하게 뒷바라지했던 것처럼 고객에게 상냥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집을 언제나 깔끔하게 청소하고 유지했던 것처럼 매대를 깔끔하게 정리하기를 기대하며, 이를 강조한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94-95쪽)

중년 여성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일은 '가정 중심형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위한 디딤돌이며, 동료들과 직장에서 이야기하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중년여성 노동자들은 동료들과의 사회생활과 노동조합에서의 주체적 활동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한다. 친구로 인식하면서도 '사회생활'로 의미화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개인적인 친목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의 정보를 공유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노동 현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163쪽)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업의 일방적인 노동 시간 단축은 대형마트 중년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갔다. 실질 임금 하락과 노동 강도 강화는 물론이고, 일터를 매개로 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무너뜨리고 일터 너머의 생활 시간마저 파편화시켜 버렸다.

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그런데 노동 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제대로' 높이려면, '생산성'이 아닌 일터와 노동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미 너무도 열심히,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 상상되지도, 계산되지도 않는 여성의 일과 시간에 대하여

이소진 (지은이), 갈라파고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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