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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7일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등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4명과 고 이재권씨의 부인 박천희씨, 5.18유공자인 장두석씨가 2020년 4월 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있는 고 이재권씨의 묘소에서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읽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해전씨.
 2009년 5월 27일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등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4명과 고 이재권씨의 부인 박천희씨, 5.18유공자인 장두석씨가 2020년 4월 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있는 고 이재권씨의 묘소에서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읽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해전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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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사건이 있고 26년이 지나서야 국가 범죄 진실이 규명됐다. 1기 과거사 진실화해위원회가 '피해자와 유족에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정부에 밝혔다. 과거사법도 피해와 명예의 원상회복을 의무로 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10년 간 이를 완전히 짓밟았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15년 간 원상회복은 물론 사과조차 없었다. 가해자 처벌, 국가보안법 폐지 등 재발방지책도 없다. 과거사 청산은 된 적이 없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나." (박해전씨)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간첩조작·고문 사건 '아람회' 피해자가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그는 최근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함께 각종 국가 범죄 사건의 피해 원상회복을 가로막는 농단을 벌였단 주장이다.

아람회는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대전지역 고교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학생, 교사, 경찰, 검사, 대학강사 등 10여 명이 '아람회'란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며 일으킨 공안 사건이다. 한 피해자의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에 모여 변란을 모의했다며 이름을 따왔다. 피해자 대부분 폭행, 물 고문 등 각종 가혹 행위와 감금에 시달렸고 실형까지 살았다. 2007년이 돼서야 1기 진화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고, 일부 피해자들이 곧바로 재심을 청구해 2009년부터 무죄 판결이 났다.

아람회 사건 피해자인 박해전씨는 지난 10일경 황교안 전 장관이 "진실화해위원회 결정과 관련 법에 역행해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를 하면서 고소인의 국가배상을 불공정하고 부당하게 짓밟은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라며 공수처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는 황 전 장관이 "2015년 2월 26일 법무부장관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로서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아람회 사건 피해자의 국가배상을 부당하게 가로막았고, 박근혜 정권 시기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면서도 피해 및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사법농단에 패소 확정... 구제 수단 사라진 피해자들

박씨는 "1기 진화위의 진실 규명과 재심의 무죄 판결 외에는 어떤 과거사 청산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 원상회복,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까지 마련돼야 과거사가 청산된다고 할 것인데, 피해 원상회복 책임조차 국가가 제대로 지고 있지 않다"며 "군사정권의 간첩조작·고문 사건이 1기 진화위에서 진실 규명이 됐음에도 국가가 사과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를 거치면서 '역행'도 벌어졌다. 2011~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연이어 나온 과거사 관련 판례들이다. 국가가 선제적으로 피해 회복·구제에 나서지 않는 동안 일부 피해자들은 직접 법원을 찾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박해전씨가 지난 10일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했다.
 박해전씨가 지난 10일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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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은 이에 국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소멸시효' 기간을 3년에서 6개월로 대폭 단축하거나, 국가로부터 생활지원금 등 보상을 받은걸 '재판상 화해'로 간주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례를 연이어 냈다. 1·2심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대법원에서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패소하는 사례가 거듭된 시기다. 배상 기산점(기간계산 시작점)도 바꿔 국가의 위자료가 2심에 비해 3분의 1로 줄면서 위자료를 반환하느라 피해자 자택이 압류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아람회도 이 중 하나다. 박씨가 고소장에 '2015년 2월'을 특정한 이유다. 1·2심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모두 인정받은 아람회 피해자 20여 명은 2015년 2월 8일과 26일 두 번의 대법원 판결에서 모두 패소했다. '소멸시효 기간을 넘겼다'는 이유다. 김용덕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대법원 1부는 소멸시효를 지킨 일부 피해자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 증명이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보다 두 달이 지난 2015년 4월 서울고등법원은 김지하 시인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5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대한민국 법무부는 이 사건 패소에 항소하지 않았다. 박씨는 "김지하 시인은 (2012년) 박근혜 지지 선언을 했던 자"라며 당시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치보복을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박씨는 이에 아람회 피해자들의 패소가 "황교안, 김기춘, 양승태의 사법농단 직권 남용"이라며 황 전 장관을 고소했다.

실제로 양승태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을 정부와의 거래 대상처럼 다룬 흔적은 이후 발견됐다. 2015년 7월 기획조정실 대외비 문건 중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는 내용 아래 "과거 정권의 '적폐 해소' ⇨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했음"이라고 적힌 사실이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특별조사단 결과 확인됐다.
     
"박정희·전두환 국가범죄엔 사과 한 마디 없다"
 
2009년 아람회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 모습
 2009년 아람회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 모습
ⓒ 진실화해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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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고소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15년 넘게 멈춘 '과거사 청산 시계' 때문이다. 사과, 피해 회복, 치유와 화해 등 국가 과제는 과거사정리기본법과 1기 진실화해위원회 권고 사항으로 이미 정해진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부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 폭력 후유증으로 수십 년을 살아 온 피해자들이 부정의한 과정으로 국가에 피해 회복을 요구할 권한까지 짓밟혔다. 그럼 진상을 규명하고 바로 잡아야 하지 않느냐. 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느냐."

박씨는 억울한 마음에 2020년 12월 발족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과 함께 '정부의 과거사 해결 직무 유기를 해결해달라'는 신청서도 냈다. 2기 진화위는 '진실규명 대상은 김영삼 정부 이전의 인권침해·국가폭력 사건'이라며 최근 각하 결정을 냈다.

박씨는 "황 전 장관은 과거사정리기본법 제36조 '정부는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에 역행해 5공 국가범죄 청산과 나의 원상회복을 가로막았다"며 "5공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황 전 장관을 엄정하게 단죄해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고, 국가범죄 청산과 원상회복 책무를 방기하는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기 바란다"고 공수처에 밝혔다.

태그:#아람회 사건, #국가폭력, #황교안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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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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