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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인 2003년 새해 벽두, 쌀집아저씨로 유명했던 MBC 김영희 PD가 기획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온 나라를 도서관에 대한 열기로 들썩이게 했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수줍었던 유재석씨와 김용만씨가 나란히 진행하였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전국에 어린이도서관을 지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어린이들이 마음껏 뒹굴며 책을 읽고 꿈꿀 수 있는 공간. 대도시에 살지 않는 가난한 아이라도, 부모가 책을 사줄 형편이 못 되어도 아이들이 언제든 뛰어 들어와 환대받고 머물 수 있는 곳. 이제 우리도 아이들에게 그런 도서관 하나쯤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대표 도정일 교수의 간곡한 목소리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때는 2003년. 노란 풍선을 날리며 열광하던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참여정부 임기 첫해.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사회에 가득하던 때였다. 느낌표가 기적의 도서관을 선정하고, 지어 주겠다고 밝힌 후 MBC 방송국 게시판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 동네에 도서관을 꼭 지어주세요'라는 간절한 요청의 글들. 언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이토록 열심히 책을 읽었던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갖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마음속에 품어온 것인가.

방송에서는 매달 한 권의 책을 선정하였고, 그 책을 판 수익금으로 전국에 어린이도서관을 지어 줄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같은 책들이 선정되었고, 그 책들은 바로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딱지를 붙인 채 재판을 찍어내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적의 도서관에 대한 열광과 사회적 환기
 
 책을 읽히고 꿈을 꾸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환기야말로 기적의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안겨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책을 읽히고 꿈을 꾸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환기야말로 기적의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안겨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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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그저 지어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지어진 뒤 도서관을 운영해나갈 지자체의 의지가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자체는 도서관을 지을 땅과 도서관 건립 이후 운영비를 부담하기로 하고, 방송국은 도서관을 지어주기로 약속이 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곳이 너무 많아 방송국과 시민단체는 지자체에 도서관 건립비용 일부를 부담할 것을 추가로 요청하였다. 기적의 도서관에 선정된 전국 각 지역의 시민들과 어린이들은 환호하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멋진 어린이도서관이 들어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매주 일요일 밤 진행된 느낌표에서는 기적의 도서관에 대한 각계각층의 기대와 찬사, 실무를 담당한 책사회 측과 건축을 담당할 건축가들이 어떤 도서관을 짓겠다고 하는 꿈에 가득한 이야기들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짓기로 한 지역을 방문하여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떤 도서관이 들어섰으면 좋겠다고 하는 지역 시민과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방송되었다. 당연히 도서관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부지와 운영비를 내놓기로 한 단체장들의 인터뷰도 방송되었다.

당시 건립된 기적의 도서관들은 요즘 지어지는 공공도서관 규모에 견주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민들과 전국 지자체에서 그렇게 열렬히 호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선거로 선출되는 단체장 입장에서는 유명 연예인이 진행하는 전국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지역에 어린이들을 위해 유명 건축가가 설계하는 도서관을 짓는다는 명분과 실리를 두루 챙길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적의 도서관을 통해 시민들뿐 아니라 정치인들 역시 도서관과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경제발전을 통해 물질적으로 잘 살기에만 열중하느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꿈을 꾸고 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환기, 이제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을 안겨주어야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

그런 환기야말로 기적의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안겨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대한 그 특별한 환호와 열광을 우리 사회는 제대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아이들 책읽기와 도서관을 포함한 책 읽는 환경 마련을 위해 준비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었다.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남긴 것

우리나라에서 온 국민이 도서관에 대해 간절하게 열망하고 고대하였던 유일무이한 사건, 그것이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그 사건은 도서관사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연구될 만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종료된 지 2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기적의 도서관이 우리 도서관과 사회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기적의 도서관에 대한 책은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기적의 도서관> 단 한 권만이 있을 뿐이다. 정기용 선생의 책은 기적의 도서관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축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왜 이토록 중요한 사건이 도서관 학계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을까? 전국의 그 많은 도서관학과 교수들은 한 방송국 PD와 시민단체가 이룬 이 놀라운 성과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여 연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지자체장들이 열광하였던 대사건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기록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도서관학계의 연구라면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들에 의한 학위논문 수준의, 기적의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 같은 것들이 몇 편 생산되었을 뿐이다.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한 첫 방송 이후, 책사회 측과 건축가, 전국 선정지역 추진위원장을 맡은 이들, 민간도서관 운영자들이 참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서울 종로 YMCA 호텔에서 어떤 도서관을 지어야 하는가 하는 성격규정부터, 어떤 책을 들여놓을 것이며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하루종일 길고도 긴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는 지금은 정치인이 된 도종환 시인과 이철수 판화가, 이이효재 여성학자 같은 분들도 계셨지만, 나처럼 지역에서 오랫동안 민간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며 아이들을 만나온 도서관운동가도 있었다.

어쩌면 다분히 제도권 도서관 바깥의 노력에 의해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진행되었고, 도서관이 지어졌다. 순천, 제천, 진해, 청주, 제주, 서귀포, 울산, 금산. 처음 선정되었던 10개 지역 중 대구, 고양 2곳을 제외하고 8개 지역에 기적의 도서관이 지어졌다.

기적의 도서관은 우선 건립 과정부터 개관까지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 속에 지어졌다는 점, 정치인들뿐 아니라 시민들이 도서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 도서관 운영방식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은 도서관 운영과정에서 자원봉사와 열렬한 이용으로 이어져, 도서관 운영에서 시민들의 자원봉사가 커다란 역할을 하는 사례를 만들게 된다.

정치인과 시민들의 도서관에 대한 인식 전환의 결과, 기적의 도서관 이후 전국에서 활발한 도서관 건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수만 세대 대단지아파트가 들어설 때에도 도서관 건립은 도시계획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던 관행을 깨고, 공공도서관이 도시계획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곳곳에 어린이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기존 공공도서관 어린이실도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단장되었다.

기적의 도서관 이후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젊은 부모들의 필수유행이 되어 저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한 관심, 주말에 피로에 지쳐 있는 아버지들을 일으켜 세워 도서관으로 데리고 오는 어머니들의 열성 같은 것이 가득했다.

온 사회에 가득한 책읽기에 대한 열성들, 그 에너지들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겠다는 열성, 책을 통해 밝은 미래를 그리는 건강한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활력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서관 운영방식의 새로운 모델인 시민 참여형 운영모델을 일부 기적의 도서관은 보여주었다. 기적의 도서관은 건립 이후 지자체에 바로 기부 채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는 도서관 운영은 결국 지자체의 몫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후 운영에 대한 부분은 지역사회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선정되어 건립된 대부분 지자체는 도서관이 완공된 이후에는, 기적의 도서관을 기존의 다른 도서관과 별 차이 없이 운영함으로써 애초 건립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순천과 제천, 진해 등 일부 기적의 도서관만이 독특한 운영모델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해당 지역 단체장이 기적의 도서관 취지를 이해하고 도서관장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어 소신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다.

도서관들을 지지해주는 지역사회의 든든한 뒷받침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하여 이 도서관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고 훈련하여, 기존 도서관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색다른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실시하면서 시민들의 이용을 활성화하였다.

물론 지자체 입장에서는 적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큰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고, 도서관을 보러 오는 외부인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지역을 홍보하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또한 기적의 도서관 건축은 기존 도서관 건축에 크게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어 전국 곳곳에 아름다운 도서관 건축물들이 지어지는 부대 효과도 낳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영향을 미쳤던 기적의 도서관 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3년 1차 기적의 도서관 이후 계속해서 기적의 도서관들이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어린이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사회에 일깨워준 것이 기적의 도서관의 의미라면, 지금 지어지는 기적의 도서관들은 어떤 의미에서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직 우리 사회에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의 기적은 충분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중랑구 대표도서관장입니다. 이 글은 '다함께 행복한 공공도서관' 단행본과 <기획회의>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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