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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호주를 국빈 방문했을 때 기자회견이 끝나가는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당신(텀불 호주 총리)과 당신의 맛있는 부인(delicious wife)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던 것이다.

'맛있는 와인'을 말하려다 실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었지만, 프랑스어 delicieuse(델리시으즈)를 무심코 옮겨쓰다가 나온 실수로 결론이 났다. 영어 delicious(딜리셔스)와 프랑스어 delicieuse(델리시으즈)는 어원이 같고 뜻도 거의 겹치긴 하지만, 딜리셔스는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반면 델리시으즈에는 딜리셔스에 없는 '사랑스러운' '매력적인'의 뜻이 있어서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
 
'맛있는' 와인을 말한 건데... 거짓짝의 예, delicious(딜리셔스)와 프랑스어 delicieuse(델리시으즈).
 "맛있는" 와인을 말한 건데... 거짓짝의 예, delicious(딜리셔스)와 프랑스어 delicieuse(델리시으즈).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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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같은 어원의 단어들이 미묘하게 혹은 완전히 뜻이 달라진 경우를 거짓짝이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faux-ami 포자미, 영어로 false friend라고 하며 거짓친구, 가짜친구라고도 번역한다. 즉 이해에 도움을 주는 척 하지만 사실은 거짓 정보를 주는 짝이라는 뜻이다. 같은 어원이고 비슷하게 쓰인다고 해서 거짓짝을 지레짐작으로 일대일대응 번역했다가는 마크롱 대통령처럼 민망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같은 어원의 단어이나 뜻이 다른 경우

한국어 애인, 중국어 아이런(爱人), 일본어 아이진(愛人)은 어원이 같고 뜻도 얼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뜻이 서로 다르다. 한국어의 애인은 우리가 알듯이 연인, 사귀는 사람인데, 중국어의 爱人은 배우자라는 뜻이고, 일본어의 愛人은 바람피우는 상대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에 뜻을 모른 상태로 넘겨짚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민망하게 될 수 있다.

예)
한국인: 이쪽은 제 애인이에요.
중국인: 언제 결혼하셨어요? 결혼생활은 어떠세요?
한국인: ...네?

예)
중국인: 제 아이런이에요.
일본인: 아... 네... (뭐지. 이 사람은 불륜 상대를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개하네.)


한국어의 정인(情人), 중국어의 칭런, 일본어의 죠닌도 어원이 같고, 한국어의 연인(戀人), 중국어의 리앤런, 일본어의 코이비토도 어원이 같고 뜻도 '애인'으로 거의 같지만 어감이 미묘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연인은 거의 문어에만 쓰이지만 일본어의 코이비토는 일상어로 쓰인다.

한국어 총통과 중국어 쫑통(总统)도 언뜻 비슷하지만 뜻이 다르다. 한국어의 총통은 히틀러의 자리였던 Führer, 또는 대통령 겸 총리를 뜻한다. 그런데 중국어의 쫑통은 그냥 한국어의 대통령이다. 한자 표기도 같고 발음도 비슷하고 뜻이 언뜻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같은 라틴어 또는 그리스어 어원의 단어들이 있는 유럽 언어들에서도 딜리셔스-델리시으즈 같은 거짓짝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영어 constipated와 스페인어 constipado는 닮았지만 전자는 변비라는 뜻이고 후자는 감기라는 뜻이라, 의미가 전혀 다른 거짓짝이다. 스페인어로 '나 열흘 동안 constipado(감기 걸렸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영어 constipated(변비)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열흘이나 응가를 못해서 어쩌니...' 하면 분위기 이상해질 것이다.

스페인어 rico는 영어 rich와 어원이 같고 '부유한'이란 뜻은 겹치지만 '맛있는'이란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스페인어로 embarazado는 임신했다는 뜻인데 영어 embarrassed(당황한, 난처한)와 비슷하게 생겨서, 다국적 인터뷰 도중 난처하다고 말했다가 급 임신부가 되어버리는(?) 난처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철자까지 똑같은 autista는 이탈리아어로 운전사, 스페인어로 자폐증환자라는 뜻이다.

이처럼 '거짓짝'은 어원이 같으나 뜻이 달라진 것이다. 반면 똥-dung, 숯-soot처럼, 어원이 전혀 다른데 어쩌다 보니 우연히 뜻이 비슷해진 단어쌍을 '가짜동족어'라 한다. 거짓짝과 가짜동족어는 혼동되어 쓰이기도 하고 마카롱 대통령 기사에서도 잘못 쓰인 용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고 잠시만 숙고해보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가짜동족어'에 대해서는 이전 칼럼, 한국어가 다른 언어의 기원? '가짜 동족어'에 속지 말자 참고).

외래어가 다른 언어권에 자리잡으면 의외의 뜻을 갖게 되기도 한다. 샹송은 프랑스어에서는 그냥 '노래'의 뜻이다. 제네바의 한국어 학생들에게 '한국어 단어 샹송은 프랑스 가요라는 뜻이에요'라고 말해주면 배꼽 빠지게 웃는다. 프랑스어 단어 크레용은 굵은 왁스 색연필이 아니라, '연필'이다. 망토는 프랑스어에서는 그냥 '외투'의 뜻이며, 마법사들이 걸치고 다니는 소매 없고 기다란 그 망토가 아니다. 한국어의 망토는 프랑스어의 'cape'이다!

코스튬은 한국어나 영어에서는 특수 의상, 무대 의상의 뜻이지만 프랑스어의 costume(꼬스뜀)은 가장 많이 쓰이는 뜻은 남자 양복(정장)이다. 한국인이 망토나 코스튬 사오라는 프랑스인의 부탁에 지레짐작으로 사갔다가 난처해질 수 있겠다.

인사에도 거짓짝이 있을까?

스위스에서는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며 'Bonjour' 하고 인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길에서 인사를 하지 않으며, 오직 등산객들만 산에서 마주칠 때 인사를 주고받는 것 같다. 모르는 이와 눈이 불가피하게 마주쳐도 그냥 눈인사 또는 고개를 살짝 까딱 하는 정도가 최대한이다.

그래서 Hi, bonjour는 실제로는 한국의 눈인사 정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는 사이에 가볍게 하는 인사는 '안녕하세요'인데, 스위스에서는 아는 사이에 마주칠 경우에는 Bonjour에 더해 Ça va?(싸 바? 어떻게 지내? 영어의 How are you?에 해당)를 붙인다.

그러니까 hi, bonjour는 '안녕하세요'와 거짓짝이며, 실제로는 hi, bonjour는 한국의 까딱 눈인사에 대응하고, Ça va? How are you?는 한국어의 '안녕하세요'에 대응하는 것 같다. 따라서 답례로 나오는 'Ça va bien. Et toi?' 'I'm fine. Thank you. And you?'(잘 지내. 너는?)는 역시 받는 인사 '안녕하세요'와 대응한다. '싸 바?' 또는 '하우 아 유?'를 들으면 그냥 '안녕하세요' 들은 것처럼 자동 반응으로 '안녕하세요' 나가듯 '싸 바 비앙, 에 톼?' '아임 파인, 땡큐. 앤쥬?'하고 영혼 없이 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의 'How are you?'가 맥락상 한국어의 '안녕하세요' 정도인데도 '어떻게 지내?'라는 거짓짝 의미 때문에, 많은 한국인이 '하우 아 유?'를 들을 때마다, 각 잡고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 가면 쓰고 웃으며 무조건 좋다고 답해야 하나 순간 고민한다. 이제 하우 아 유? 들으면 고민하지 말고 저 소리는 '안녕하세요'라 여기고 가볍게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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