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들어 방송가에 '패밀리십 예능'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찰예능의 주류는 MBC <나 혼자 산다> 등으로 대표되는 1인 가구와 싱글라이프의 독립적인 자기성취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 들어서는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에 기반을 둔 가족 이야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MBC <호적메이트>, 채널A <슈퍼 DNA-피는 못 속여> KBS2 <우리끼리 작전타임> <갓파더>, MBC 에브리원 <맘마미안>, iHQ <결혼은 미친짓이야>, EBS <누구세탁소>,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우리 식구 됐어요> 등이 최근 몇 달 사이에 방송가에 새롭게 등장한 패밀리십 예능들이다. 실제 혈육관계인 유명인 가족들이 함께 출연하여 일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혹은 의부자-의형제 등으로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일상적인 관찰예능에서 먹방, 육아, 자기 개발, 스포츠, 고민상담 등 소재의 범위도 다양해졌다.
 
형제-자매 예능에 가상현실 활용까지...
 
 MBC <호적메이트>의 한 장면.

MBC <호적메이트>의 한 장면. ⓒ MBC

 
새해들어 방송을 시작한 <피는 못속여>나 <작전타임>은 거의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봐도 무방할 만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스포츠 스타의 가족들을 전면에 내세운 관찰예능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피는 못속여>에는 이형택, 이동국, 김병현 <작전타임>에는 이종범, 여홍철, 유남규 등 한국 스포츠의 전설과 그 2세들이 출연했다. 부모와 함께 출연하는 이정후(이종범의 아들, 야구), 여서정(여홍철의 딸, 체조), 이재아(이동국의 딸, 테니스), 유예린(유남규의 딸, 탁구) 등도 모두 선대에 이어 한국 스포츠의 톱스타 혹은 유망주로 활동중인 스포츠 2세대들이다.
 
스포츠 스타가족들이 등장하는 예능들은 기존 연예인이나 셀럽 가족들이 출연하여 평안하고 즐거운 일상만을 보여주던 것과는 달리, '2세대'들의 치열한 노력과 애환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각 분야 스타였던 선친들의 우월한 DNA를 이어받은 덕에 비슷한 길을 걷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하여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관심을 끌 수밖에없는 스포츠 2세대들의 숙명은 많은 안타까움과 공감대를 자아낸다.

또한 경기장에서 최고의 영웅이었던 선수들도 자식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부모와 다를 것 없는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피는 못속여>와 <작전타임>은 스포츠 1-2세대의 각기 다른 노력과 성공철학, 자녀 교육방식 등을 새롭게 조명해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호적메이트>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요즘 형제-자매들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동거동락하는 친구인 '하우스메이트'처럼, 태어나보니 의도하지 않게 핏줄로 이어져 한 집에서 사는 가족이 되어있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9월 명절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아 정규편성에 성공하며 배우 김정은-인플루언서 김정민 자매, 농구 선수 허웅-허훈 형제, 가수 홍지윤 자매, 유도선수 조준호 형제 등이 출연했다.
 
방송은 다양한 스타일의 호적메이트들 통하여 가까운 듯 멀고, 닮았지만 다르며, 친하면서도 어색해지기 쉬운 복잡하고 양면적인 형제자매들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1인가구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남의 집 형제자매들이 형성하는 각기 다른 관계성을 엿보는 '대리체험'으로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부모나 어른으로서의 가족들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나와 같은 시간를 살아가고 함께 늙어가며 동시대의 경험과 인생을 공유할 수 있는' 형제자매라는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시간이 된다.
 
<갓파더>나 <우리 식구됐어요>는 모두 유명인들이 가상 가족을 이루는 콘셉트를 표방했다. 애초에 가족의 시작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던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생관, 성격도 제각각인 스타들이 모여 가상의 부자-모녀-부부-남매들을 형성하며 보여주는 이색적인 케미, 오히려 실제 가족에서는 보여주기 힘들었던 가족간의 깊은 정과 숨겨둔 속마음을 서로를 통해 알아가는 색다른 과정이 돋보였다.
 
심지어 <누구세탁소>는 자식이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복원한 부모와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눈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줬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가상현실을 활용하여 나이, 성별, 직급, 외모를 뛰어넘는 세대간의 소통을 이끌어낸 콘셉트는,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각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가족의 역할과 추억을 재조명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선사했다.
 
편안한 예능이지만... 특혜-진정성 의구심은 계속
 
 채널A <피는 못속여>의 한 장면.

채널A <피는 못속여>의 한 장면. ⓒ 채널A

 
이러한 패밀리십 코드가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일상화된 비대면과 거리두기 속에 소통과 공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모든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가족이란 구성원들에게 가장 친근한 소속감을 주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의미를 지닌다. 치열한 사회속 경쟁과 자극 코드에 지친 시청자들의 시선에서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은 '착한 예능'으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하지만 패밀리십 예능이 흔히 빠지기 쉬운 단점은 역시 '특혜'와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단지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방송에 출연하여 혜택을 누리는 것에 대하여 대중들의 거부감도 여전히 적지 않다. 이정후나 여서정, 허웅-허훈 형제처럼 가족의 후광이나 특수한 관계성이 아니어도 충분히 스스로 주목받을 만한 출연자들도 있었지만, 냉정히 말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아직 전문적인 체육인의 길을 걷는 게 아닌 그저 취미로 운동을 배우는 수준에 불과한 유소년들, 혹은 부모형제와 상관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이른바 '가족 찬스'를 등에 업고 방송에 나와 유명세를 누리는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자연스러운 일상의 공감대보다 작위적인 에피소드를 억지로 끌어내려는 진정성없는 연출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갓파더>의 경우, 배우 이순재와 농구인 허재부자는 평생을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느라 별다른 공감대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방송에서도 내내 이렇다 할 케미를 보여주지 못했다.

주현과 문세윤은 부자간의 이야기보다는 언제부터인가 먹방여행으로 내용이 변질됐다. 결국 이들은 새로운 출연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소리소문없이 방송에서 사라졌다. 또한 새 출연자로 나이차가 19살에 불과한 데다 미혼인 KCM을 최환희와 의부자로 엮은 구성도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대거 넘쳐나면서 출연자만 바뀌었을 뿐 구성 자체가 천편일률적인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명인 출연자들이 여러 방송을 넘나들면서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써먹었던 비슷한 토크나 에피소드를 재활용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현재 대부분의 패밀리십 예능이 사실상 관찰예능에 치우쳐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출연진들의 단발적인 화제성과 캐릭터에만 의존하고 새로운 점을 찾아볼 수 없다면, 그 유행은 금새 식상해지기 쉽다.
 
유명인들의 실제 라이프스타일과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패밀리십 예능은 예전부터 꾸준히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다만 패밀리십이 그저 소수 유명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거나, 미리 짜여진 연출로 남다른 일상을 '과시'하는 데 그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숙제다.
패밀리십 가족예능 호적메이트 우리끼리작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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